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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51권, 성종 6년 1월 29일 기묘 2번째기사 1475년 명 성화(成化) 11년

주문사 김질, 부사 이계손이 북경에서 돌아오다

주문사(奏聞使) 김질(金礩), 부사(副使) 이계손(李繼孫)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오니,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고칙(誥勅)을 맞이하고, 창덕궁(昌德宮)에 돌아와 고칙(誥勅)을 받기를 의식(儀式)과 같이 하였다. 그 칙서에 이르기를,

"주문(奏聞)을 얻으니 왕(王)의 소생부(所生父) 휘(諱)는 먼저 세자(世子)에 봉(封)해졌으나 일찍이 죽고, 소생모(所生母) 한씨(韓氏)는 살아 있으나 모두 명호(名號)를 두지 못했다. 인후(人後)가 된 자는 의리에 사친(私親)을 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으나, 현양(顯揚)하려는 생각이야 스스로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인해서 왕의 효침(孝忱)181) 을 다 알았으므로, 이에 특히 죽은 세자(世子) 휘(諱)를 추봉(追封)하여 조선 국왕(朝鮮國王)으로 삼고, 시호를 회간(懷簡)이라 하며, 한씨(韓氏)를 봉(封)하여 회간 왕비(懷簡王妃)로 삼아, 현친(顯親)하는 뜻을 이르게 한다. 그리고 고명(誥命)과 아울러 비(妃)의 관복(冠服)을 반급(頒給)하니, 이르거든 흠념(欽念)하라."

하고, 그 추증(追贈)하는 고명(誥命)을 봉천 승운(奉天承運)이라 하고, 황제(皇帝)가 제서(制書)하기를,

"군자(君子)의 덕(德)이 상서로와 이미 후인(後人)에게 널리 남겨 주었으니, 이것은 조정(朝廷)에서 작명(爵命)을 아름답게 추존하여 영구히 두게 함이며, 인륜(人倫)을 두터이하고 특수한 예우[異數]를 밝히는 소이(所以)이다. 그러므로 조선국(朝鮮國) 세자(世子) 성(姓) 휘(諱)는 바로 조선 국왕(朝鮮國王) 휘(諱)의 부(父)로서, 타고난 자질이 청수(淸粹)하고 타고난 성품이 온순(溫純)하여, 일찍이 적사(嫡嗣)의 봉(封)함을 받았는데, 누가 선유(仙遊)182) 의 갑작스러움을 알았겠는가? 아들이 이제 종조(宗祧)183) 의 중함을 계승하였고, 그대 또한 포전(褒典)하는 영광을 올린 것이 마땅하므로, 이에 특별히 추증(追贈)하여 조선 국왕(朝鮮國王)으로 삼고, 시호(諡號)를 회간(懷簡)이라 하노라. 아아, 착한 이는 후사가 있으니, 어찌 수단(脩短)184) 을 족히 이르겠는가? 덕(德) 있는 이는 숙부(叔父)가 있으니 현영(顯榮)185) 이 간단함이 없음을 믿겠으며, 구원(九原)186) 에도 어둡지 않아, 이 아름다움을 느끼리라."

하고, 그 회간 왕비(懷簡王妃)를 봉(封)하는 고명(誥命)을 봉천 승운(奉天承運)이라 하고, 황제(皇帝)가 제서(制書)하기를,

"제왕(帝王)이 아들로 말미암아 추은(推恩)하여 이미 작위(爵位)를 그 부(父)에게 주었고, 반드시 그 영화로움이 그 모(母)에 미치는 것은 자훈(慈訓)의 어짊을 밝히고 어버이를 드러내는 원(願)을 이루려는 소이(所以)이다. 그대 한씨(韓氏)는 바로 죽은 조선국 세자(朝鮮國世子) 성(姓) 휘(諱)의 짝이며, 지금의 국왕(國王) 휘(諱)의 어머니이다. 현량(賢良)의 배필이 되어 일찍이 부도(婦道)를 도탑게 하여 독실하고 착한 아들을 낳아, 능히 모의(母儀)를 삼가하였다. 지아비[夫]를 이미 왕(王)에 추증(追贈)하였으니, 그대도 또한 마땅히 특별히 예우하여, 그대를 봉(封)하여 조선국 회간 왕비(朝鮮國懷簡王妃)로 삼으니, 더욱 능히 공경스럽게 이어받아 영구히 후륜(後胤)을 빛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51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8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註 181]
    효침(孝忱) : 효성(孝誠).
  • [註 182]
    선유(仙遊) : 선서(仙逝). 곧 죽음에 대한 존칭(尊稱).
  • [註 183]
    종조(宗祧) : 종묘(宗廟).
  • [註 184]
    수단(脩短) : 장단(長短).
  • [註 185]
    현영(顯榮) : 높은 지위에 올라 영화로움.
  • [註 186]
    구원(九原) : 구천(九泉).

○奏聞使金礩、副使李繼孫回自京師, 上幸慕華館, 迎誥勑, 還昌德宮, 受誥勑如儀。 其勑曰:

得奏, 王所生父諱, 先封世子, 早逝, 及所生母韓氏見任, 俱未有名號。 爲人後者, 義不可顧私親, 然顯揚之懷, 不能自已。 等因具悉王之孝忱, 玆特追封故世子諱, 爲朝鮮國王, 諡懷簡, 封韓氏懷簡王妃, 以遂顯親之志。 及頒給誥命幷妃冠服, 至可欽念。

其追贈誥奉天承運, 皇帝制曰:

惟君子德善, 旣以敷遺於後人, 斯朝廷爵命, 有以追賁於沒世, 所以厚人倫, 昭異數也。 故朝鮮國世子姓諱, 乃朝鮮國王諱之父, 天資淸粹, 賦性溫純, 早膺嫡嗣之封, 孰識仙遊之遽? 子今繼承宗祧之重, 爾亦宜進褒典之榮, 玆特追贈爲朝鮮國王, 諡曰懷簡。 嗚呼! 惟善有後, 何脩短之足云? 惟德有叔, 諒顯榮之無間, 九原不昧, 服此休嘉。

其封懷簡王妃誥奉天承運, 皇帝制曰:

帝王因子推恩, 旣錫爵於其父, 而必榮及其母者, 所以昭慈訓之良, 遂顯親之願也。 爾韓氏乃故朝鮮國世子姓諱之配, 今國王諱之母也。 作配賢良, 夙惇婦道, 篤生令子, 克愼母儀。 夫旣追贈於王封, 爾亦宜偕於異數, 特封爾爲朝鮮國(懷蘭王妃)〔懷簡王妃〕 , 尙克敬承, 永光後胤。


  • 【태백산사고본】 8책 51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8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