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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51권, 성종 6년 1월 3일 계축 1번째기사 1475년 명 성화(成化) 11년

판중추부사 어효첨의 졸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봉조하(奉朝賀) 어효첨(魚孝瞻)이 졸(卒)하니, 철조(輟朝)하고 부조(賻弔)·치제(致祭)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어효첨(魚孝瞻)의 자(字)는 만종(萬從)이요, 함종현(咸從縣) 사람인데,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 어변갑(魚變甲)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영락(永樂)계묘년002) 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선덕(宣德)기유년003) 에 등제(登第)하여 예문 검열(藝文檢閱)에 선보(選補)되더니, 여러 관직을 거쳐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에 이르렀다. 당시에 서연(書筵)004) 에서 《예기(禮記)》를 강(講)하면서 어효첨(魚孝瞻)이 널리 제가(諸家)의 요설(要設)을 채집하여, 이름하기를 《예기일초(禮記日抄)》라 하니, 문종(文宗)이 보고 탄상(歎賞)하였다. 갑인년005) 에 지리설(地理設)을 하는 자가 의견을 드리기를, ‘궁성(宮城)의 북쪽 길에 담[堵]을 쌓아 사람의 왕래를 제한하고, 성내(城內)에 흙을 쌓아 산을 만들며, 명당(明堂)의 물에 더러운 물건을 버리는 것을 금(禁)하게 하소서.’ 하여, 세종(世宗)께서 군신(群臣)으로 하여금 회의(會議)하게 하니, 어효첨(魚孝瞻)이 상소(上疏)하여 그 옳지 못함을 극언(極言)하고, 고금(古今)의 학설을 증거로 인용하여 성현(聖賢)의 일로써 질정(質正)하되, 모든 이왕(已往)의 징험을 상고하고 반복(反覆)하여 논변(論辨)하니, 세종께서 가상하게 들으시고 마침내 술자(術者)의 말을 쓰지 아니하였다. 정통(正統)병인년006) 에 조봉 대부(朝奉大夫)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에 승수(陞授)007) 되고, 기사년008) 에 직전(直殿)에 올랐다. 경태(景泰)경오년009)문종(文宗)이 즉위(卽位)하자 탁용(擢用)하여 사헌 집의(司憲執義)로 삼았고, 판내자시사(判內資寺事)에 전직되었다가 또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에 오르고, 얼마 있다가 예조 참의(禮曹參議)에 배수되었다. 당시 세조(世祖)가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노산(魯山)을 위하여 납비(納妃)할 것을 의논하니, 어효첨이 소(疏)를 올려 상중(喪中)에 납비(納妃)함은 마땅하지 못하다는 것을 극력 말하였다. 세조께서 비록 그 말을 쓰지 않았으나 또한 가상히 여기었다.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천전(遷轉)되고 을해년010) 에 가선 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이조(吏曹)·호조(戶曹)·형조(刑曹)·공조(工曹)의 참판(參判)과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역임하고, 기묘년011) 에 가정 대부(嘉靖大夫)에 올랐다. 하루는 정부(政府)와 육조(六曹)에서 의논하여 잔치를 올리니, 세조께서 어효첨에게 술잔을 올리게 하고, 좌우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가 경중(敬重)012) 하는 바이며, 일찍이 세종(世宗)에게 천거된 자이다.’ 하고, 명하여 자헌 대부(資憲大夫) 중추원사(中樞院使)를 더하고 이어서 이르기를, ‘경(卿)은 정직(正直)한 사람이다. 대신(大臣)이 경의 아들 어세겸(魚世謙)을 천거하는 자가 있으니, 내가 가정(家庭)의 교훈이 있음을 안다.’고 하였다. 계미년013) 에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진배(進拜)되고 천전하여 중추원사(中樞院事)가 되었다. 성화(成化)병술년014) 에 정헌 대부(正憲大夫)를 더하고, 무자년015) 에 숭정 대부(崇政大夫)를 더하였다. 얼마 있다가 숭록 대부(崇祿大夫)를 더하고, 갑오년016) 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이때에 졸(卒)하였는데, 나이는 71세이다. 시호(諡號)를 문효(文孝)라 하였는데, 경직(敬直)하고 자혜(慈惠)로운 것이 문(文)이고, 덕(德)을 지니고 간사하지 않은 것이 효(孝)이다. 어효첨은 성품이 순박하여 번화함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성색(聲色)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어버이를 섬기어 효도하였다. 관직에 임하면 부지런하고 삼가하여 이단(異端)에 미혹(迷惑)되지 아니하고, 모든 음양(陰陽)·풍수(風水)·신불(神佛)·사벽(邪僻)하는 일은 일찍이 힘써 물리쳤다. 아들은 어세겸(魚世謙)·어세공(魚世恭)이다.


  • 【태백산사고본】 8책 5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7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

○癸丑/判中樞府事奉朝賀魚孝瞻卒, 輟朝、賻弔、〔致〕 祭如例。 孝瞻萬從, 咸從縣人, 集賢殿直提學變甲之子也。 幼好學, 永樂癸卯, 中生員試, 宣德己酉登第, 選補藝文檢閱, 累官至集賢殿校理。 時書筵講《禮記》, 孝瞻博採諸家要說, 名曰《禮記日抄》, 文宗覽之歎賞。 甲寅, 有爲地理說者建言: "宮城北路築堵, 以限人往來, 城內築土爲山, 明堂之水禁投穢物", 世宗令群臣會議, 孝瞻上疏極言其不可, 援據古今, 質以聖賢之事, 稽諸已往之驗, 反覆論辨, 世宗嘉納, 竟不用術者之言。 正統丙寅, 陞授朝奉集賢殿應敎, 己巳陞直殿。 景泰庚午, 文宗卽位, 擢爲司憲執義, 轉判內資寺事, 又陞成均大司成, 尋拜禮曹參議。 時世祖爲領議政, 爲魯山議納妃, 孝瞻抗疏極言喪中不宜納妃, 世祖雖不用, 亦多之。 遷吏曹參議, 乙亥陞嘉善, 歷吏ㆍ戶ㆍ刑ㆍ工曹參判、司憲府大司憲, 己卯陞嘉靖。 一日議政府六曹進宴, 世祖孝瞻進爵, 謂左右曰: "此人予所敬重, 嘗薦於世宗者也。" 命加資憲中樞院使, 仍謂曰: "卿正直人也。 大臣有薦卿子世謙者, 予知有家庭之訓也。" 癸未, 進拜吏曹判書, 遷知中樞院事。 成化丙戌加正憲, 戊子加崇政, 尋加崇祿, 甲午判中樞府事奉朝賀。 至是卒, 年七十一, 諡文孝, 敬直慈惠文, 乘德不回孝。 孝瞻性淳質, 不喜紛華, 不好聲色, 事親孝。 莅官勤謹, 不惑異端, 凡陰陽、風水、神佛、邪僻之事, 嘗力排之。 子世謙世恭


  • 【태백산사고본】 8책 5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7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