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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50권, 성종 5년 12월 24일 을사 1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정괄 등이 종친 이승은의 간통죄를 징계할 것을 청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고, 대사간(大司諫) 정괄(鄭佸)이 아뢰기를,

"이승은(李承恩)이 향화(向化)한 유온거(劉溫車)의 아내를 간통하여 광망(狂妄)함이 막심(莫甚)한데, 이를 그냥두고 죄주지 아니하면 무엇으로 징계할 것입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승은유온거를 상대하여 술을 마셨다고 하면 유온거도 귀와 눈이 있는데, 어떻게 그의 아내를 희롱할 수 있겠는가? 통간(通奸)은 잡힌 바가 아니면 의사(疑似)로써 죄를 줄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정괄이 아뢰기를,

"2품의 종친(宗親)으로서 군소배(群小輩)와 교결(交結)하여 여염(閭閻)에 모여서 술마시는 것도 옳지 못한데, 하물며 향화(向化)한 자는 우리 족속[族類]이 아닌데이겠습니까? 마땅히 함께 마시지 못할 터인데, 승은이 감히 이같이 하였으니, 그 아내를 통간(通奸)하고자 한 것이 분명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친족(親族)을 친애하는 길은 이를 온전히 하는 것이 귀(貴)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런데도 다스리지 아니하면, 뒤에는 큰 죄에 빠질 것입니다. 또 그의 수종(隨從)으로 성(姓)을 곽(郭)이라고 하는 자는 실로 불령(不逞)하고 간사하니, 또한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미 논하지 말라고 일렀으니, 다시 국문할 수 없다."

하였다. 영사(領事) 홍윤성(洪允成)이 아뢰기를,

"승은은 종친(宗親) 가운데 어리석고 완악(頑惡)한 자이니, 잠시 그대로 두어 논하지 말고, 그를 꾀어서 악하게 만든 자는 가히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이 곽(郭)이라고 하는 자는 곧 임영 대군(臨瀛大君)의 반인(伴人) 곽암석(郭巖石)인데, 본래 종친과 교결하여 불의(不義)를 많이 자행하였습니다. 전일에 강양군(江陽君) 이융(李瀜)이 기생(妓生) 자운아(紫雲兒)에게 미혹되었었는데, 그 수종(隨從)한 자들을 모두 치죄(治罪)하여 충군(充軍)하였습니다. 이제 곽암석도 청컨대 이 예(例)에 의하여 죄를 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정승(政丞)의 말이 옳다. 곽암석을 율(律)에 비추어 죄주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정괄이 아뢰기를,

"만약에 곽암석 만을 죄주고 이승은은 묻지 않는다면,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비록 불의(不義)를 행한다 하더라도 조정(朝廷)에서 또한 반드시 묻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더욱 거리낌이 없어서, 마침내 큰 죄에 빠질 것이니, 이것은 친족(親族)을 친애하는 방도가 아닙니다."

하였다. 홍윤성(洪允成)이 아뢰기를,

"법사(法司)로 하여금 그 무리들을 끝까지 국문하게 하여, 말이 이승은에게 미치면 역시 〈이승은도〉 죄를 주는 것이 옳습니다."

하고, 영사(領事) 조석문(曺錫文)이 아뢰기를,

"지금 이승은을 논하지 아니하면 광망(狂妄)한 무리들을 징계할 바가 없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이르기를,

"곽암석을 죄주는 것이 옳다고 하고, 또 어째서 이승은을 논하느냐?"

하고, 곧 승지(承旨)에게 하교하기를,

"곽암석강양군(江陽君)의 수종인(隨從人)의 예(例)에 의하여 충군(充軍)하라."

하였다. 시강관(侍講官)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신이 오진(五鎭)을 편력(遍歷)하면서 훈춘(訓春)에 이르렀더니, 성저(城底)의 야인(野人)들이 올적합(兀狄哈)의 침략(侵掠)을 당하여 가산(家産)이 탕진(蕩盡)되었으므로, 절도사(節度使)가 친히 가서 위로하고 겸하여 먹을 물건을 주었으며, 신도 또한 포화(布貨)와 염곡(鹽穀)을 넉넉하게 주고 위로하였더니, 야인이 성상(聖上)의 은혜에 깊이 감복하여 옛날과 같이 편안하게 살아서, 다시 유리(流離)할 근심이 없어졌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야인(野人)의 땅에는 본래 쇠[鐵]가 없어서 뼈로 화살촉을 만들었었는데, 지금 사로잡은 야인의 화살은 철촉(鐵簇)이 반이나 되었습니다. 신이 의아하여 이를 물어 보았더니 말하기를, ‘육진(六鎭)에서 공물(貢物)로 바치는 초서피(貂鼠皮)는 거의 다 저 사람들에게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소나 말이나 쇠로써 이를 바꾼다.’고 합니다. 그리고 변장(邊將)들도 또한 저 사람들의 모피(毛皮)를 받으면서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니, 청컨대 모름지기 엄하게 법을 세워서 이를 금하게 하소서."

하였다. 홍윤성이 아뢰기를,

"이른바 골전(骨箭)1091) 이라는 것은 곰의 다리뼈를 오래 피에 담가 두면 그 굳기가 쇠와 같기 때문에 활촉을 만들어 쓴다고 합니다. 야인의 땅에서도 역시 철(鐵)이 생산되므로, 다 철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종조(世宗朝)에 대개 야인에게 안장의 장식[鞍飾]과 등자(鐙子)를 하사하였었는데, 모두 황동(黃銅)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세조조(世祖朝)에 이르러 비로소 철로써 이를 만들도록 명하면서 말하기를, 왕자(王者)가 이적(夷狄)에게 주는 것을 어찌 조그마한 칼[鐵寸]로 혐의를 삼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로부터 구습을 따라 고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그 말단일 뿐입니다. 만약에 성상의 덕이 넓게 운용(運用)된다면, 변방[邊圉]은 저절로 무사해질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조그마한 칼은 진실로 혐의할 것이 없으나, 만일에 일이 있으면 철촉(鐵鏃)의 이(利)가 어찌 우리 나라의 해(害)가 아니겠는가? 매매(買賣)에 철을 금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법이 있으니, 변장(邊將)에 적당한 사람을 얻으면 자연히 이런 걱정은 없을 것이다."

하였다. 홍윤성이 아뢰기를,

"세종조(世宗朝)김종서(金宗瑞)·이징옥(李澄玉)·최윤덕(崔潤德)이 변장(邊將)이 되었을 때에도 저 사람들이 주는 것을 다 물리치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경진년1092)신숙주(申叔舟)와 더불어 북정(北征)하였을 때에 야인(野人)이 백호피(白狐皮)와 초서피(貂鼠皮)를 신숙주에게 주고, 나무로 만든 석장(錫杖)을 신에게 주므로, 신 등은 생각하기를, ‘저들이 주는 것을 굳이 물리칠 것은 없다.’고 하고, 이를 가지고 와서 헌납하였으니, 변장(邊將)에게 증여(贈與)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한 것입니다. 초서피가 비록 귀하다고 하더라도 어찌 소나 말로써 바꾸게까지 하겠습니까?"

하였다. 홍귀달이 아뢰기를,

"신이 전일에 영안도(永安道)에 봉명 사신(奉命使臣)으로 갔을 때에 회양부(淮陽府)신안역(新安驛)은 비록 조폐(彫弊)하기는 하였어도 심하지는 아니하였고, 안변(安邊)고산역(高山驛)은 부실(富實)하였었는데 지금은 조잔(彫殘)하기가 매우 심하여서, 신안역은 다시 겨우 한 사람만이 있게 되고, 고산역도 또한 2, 3호(戶)에 불과하여, 봉명 사신으로 내왕(來往)하는 자는 반드시 다른 역(驛)의 말[馬]을 타게 되고, 그 탄 말을 〈그대로 타고〉 바꾸지 아니하므로, 이로 인하여 방근(傍近)의 여러 역(驛)도 또한 따라서 조잔(彫殘)하게 되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강원도 여러 고을의 기인(其人)1093) 과 향리(鄕吏)들을 그 입역(立役)하는 일한(日限)에 준(准)하여 그들로 하여금 입마(立馬)1094) 하게 하면 거의 소복(蘇復)될 것입니다."

하고, 홍윤성이 아뢰기를,

"기인(其人)의 설립(設立)은 역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원방(遠方)의 사람들이 혹 막힐까 염려하여 여러 고을로 하여금 해마다 관리 한 사람씩을 서울에 보내게 하여, 통속(統屬)의 뜻을 보인 것입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역로(驛路)의 피폐는 오로지 야인(野人)의 왕래가 잦기 때문입니다. 세조께서 즉위(卽位)하신 처음에 야인 7백 30여 인이 내조(來朝)하였는데, 세조께서 그들이 덕화(德化)를 따라 향화(向化)한 것을 가상히 여기셔서 의복과 양식을 후하게 내려 주시어, 이로부터 이후로 왕래가 끊어지지 않아서 역로가 지탱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세조께서 일찍이 신에게 하교(下敎)하시기를, ‘마땅히 야인의 내조하는 숫자를 정하여서 분요(紛擾)하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왜(倭)와 야인으로서 내조하는 자가 전일의 갑절이 되어, 역로의 피폐(疲敝)함이 오로지 이로 말미암는 것이니, 청컨대 절도사(節度使)로 하여금 숫자를 정하여 올려 보내게 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5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74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중인(中人) /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윤리-강상(綱常) / 외교-야(野)

  • [註 1091]
    골전(骨箭) : 뼈로 만든 화살촉.
  • [註 1092]
    경진년 : 1460 세조 6년.
  • [註 1093]
    기인(其人) : 신라(新羅)의 상수리(上守吏)에서 유래하여, 고려(高麗)·조선(朝鮮) 때에 시행된 볼모 제도로서, 향리(鄕吏)의 자제 중에서 중앙에 뽑혀 와 볼모가 되어, 그 출신 지방 사정에 관한 고문(顧問) 구실을 맡아 하던 사람.
  • [註 1094]
    입마(立馬) : 각역(各驛)에서 말[馬]을 길러서 대기시키던 일. 나라의 관마(官馬)를 쓰기도 하였으나, 마전(馬田)을 경작하던 민간인이 세우기도 하였음. 역리(驛吏)가 도맡았으나, 때로는 향호(鄕豪)와 정병(正兵)에게 이 일을 맡기기도 하였음.

○乙巳/御經筵。 講訖, 大司諫鄭佸啓曰: "承恩奸向化劉溫車之妻, 狂妄莫甚, 置此不罪, 何所懲乎?" 上曰: "承恩溫車而飮, 則溫車有耳目, 安得挑其妻乎? 非奸所捕獲, 不可以疑似抵罪。" 曰: "二品宗親, 交結群小, 聚飮閭閻, 固爲不可, 況向化非我族類? 不宜共飮, 而承恩乃敢如是, 欲奸其妻明矣。 古云: ‘親親之道, 全之爲貴。’ 此而不治, 後將陷於大罪。 又其隨從姓者, 實不逞憸小, 亦不可不懲。" 上曰: "旣云勿論, 不可更鞫。" 領事洪允成啓曰: "承恩宗親之癡頑者, 姑置勿論, 其導之爲惡者, 不可不治。 姓者, 乃臨瀛大君伴人郭巖石也, 素結宗親, 多行不義。 前日江陽君 惑於妓紫雲兒, 其隨從者, 皆治罪充軍。 今巖石, 請依此例罪之。" 上曰: "政丞之言是也。 巖石照律罪之可也。" 曰: "若只罪巖石而不問承恩, 其意以爲: ‘雖行不義, 朝廷亦必不問’, 益無忌憚, 終陷大罪, 是非親親之道。" 允成曰: "令法司窮鞫其徒, 言及承恩則亦可罪之。" 領事曺錫文啓曰: "今不論承恩, 則狂妄之輩, 無所懲矣。" 上曰: "罪巖石可矣, 又何論承恩乎?" 仍敎承旨曰: "巖石, 依江陽君隨從人例充軍。" 侍講官洪貴達啓曰: "臣遍歷五鎭, 到訓春, 城底野人兀狄哈侵掠, 家産蕩盡, 節度使親往慰勞, 兼與食物, 臣又優給布貨鹽穀以慰之, 野人深感上恩, 安居如舊, 無復流離之患矣。" 又啓曰: "野人之地, 本無鐵, 以骨爲箭鏃, 今所虜野人之矢, 鐵鏃居半。 臣訝而問之則云: ‘六鎭所貢貂鼠皮, 率皆貿于彼人, 故以牛馬鐵易之。’ 邊將亦受彼人毛皮, 而不以爲怪, 請須嚴立法以禁之。" 允成啓曰: "所謂骨箭者, 以熊脚骨久沈於血, 則其堅如鐵, 故用以爲鏃耳。 野人之地亦産鐵, 非盡無鐵鏃也。 世宗朝, 凡賜野人鞍飾及鐙子, 皆以黃銅爲之。 至世祖朝, 始命以鐵爲之曰: ‘王者賜夷狄, 豈以寸鐵爲嫌乎?’ 自此因循不革。 然此特其末耳。 若聖德廣運, 則邊圉自爾無事。" 上曰: "寸鐵固無嫌, 萬一有事, 則鐵鏃之利, 豈非我國之害乎? 買賣禁鐵, 已有成法, 邊將得人, 則自無此患矣。" 允成曰: "世宗朝, 金宗瑞李澄玉崔潤德爲邊將, 彼人所贈亦皆不却。 臣於庚辰年, 與申叔舟北征時, 野人以白狐、皮貂鼠皮贈叔舟, 以木錫贈臣, 臣等以爲: ‘彼人所與, 不可固却’, 持以獻之, 其贈與邊將, 自古然也。 貂鼠皮雖貴, 何至以牛馬易之?" 貴達曰: "臣前日奉使永安, 淮陽府 新安驛雖彫敝, 未至甚也, 安邊 高山驛則富實, 今則彫殘太甚, 新安驛更僅存一人, 高山驛亦不過二三戶, 奉使來往者, 必乘他驛馬, 仍騎不遞, 因此傍近諸驛, 亦從而彫殘。 臣意謂, 江原諸邑其人、鄕吏, 準其立役日限, 使之立馬, 則庶可蘇復矣。" 允成曰: "其人設立, 非爲役之也, 遠方之人慮或梗化, 使諸邑歲遣吏一人于京, 以示統屬之意耳。 臣則以爲, 驛路之敝, 專以野人往來之數也。 世祖卽位之初, 野人七百三十餘人來朝, 世祖嘉其率德向化, 厚賜衣、廩, 自此以後, 絡繹不絶, 驛路難支。 故世祖嘗敎臣曰: ‘宜定野人來朝之數, 毋令紛擾。’ 當今野人來朝者倍於前日, 驛路疲敝, 專由此也, 請令節度使, 定數上送。"


  • 【태백산사고본】 7책 5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74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중인(中人) / 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윤리-강상(綱常)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