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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49권, 성종 5년 11월 22일 계유 2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이승소의 건의에 따라 《후한서》등 여러 사서를 간행하게 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동지사(同知事) 이승소(李承召)가 아뢰기를,

"일찍이 듣건대 세종께서 여러 가지 사서(史書)를 다 인쇄하고자 하였는데, 《사기(史記)》《전한서(前漢書)》는 인쇄하였고, 그 나머지 사서는 마치지 못하고 파하였기 때문에, 《사기》《전한서》는 요즈음 사대부(士大夫)들의 집에 더러 있으나, 그 나머지 여러 사서는 겨우 비각(秘閣)에만 간직하고 민간에는 없기 때문에 배우는 자가 볼 수 없으니, 청컨대 《후한서(後漢書)》 등 여러 사서를 간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우부승지 김영견(金永堅)에게 이르기를,

"요즈음 무슨 주자(鑄字)를 써서 책을 인쇄하는가?"

하자, 대답하기를,

"갑인1012) ·을해1013) 두 해에 주자(鑄字)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쇄는 경오자(庚午字)보다 좋은 것이 없었는데, 이용(李瑢)1014) 이 쓴 것이라 하여 이미 헐어 없애고, 강희안(姜希顔)에게 명하여 쓰게 해서 주자를 하였으니, 을해자(乙亥字)가 이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김영견에게 명하여 여러 사서(史書)를 인쇄해서 반포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4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6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출판-인쇄(印刷) / 출판-서책(書冊)

○御晝講。 講訖, 同知事李承召啓曰: "嘗聞世宗欲盡印諸史, 而《史記》《前漢書》則印之, 其餘史則未畢而罷, 故《史記》《前漢書》則今士大夫之家稍有之, 其他諸史則僅藏於秘閣, 而民間絶無, 故學者不得覽焉。 請印頒《後漢書》等諸史。" 上謂右副承旨金永堅曰: "今用何鑄字印書?" 對曰: "甲寅、乙亥兩年所鑄字也。 然印書莫善於庚午字而以之所寫, 已毁之, 命姜希顔寫之而鑄成, 乙亥字是也。" 上命永堅印頒諸史。


  • 【태백산사고본】 7책 4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6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출판-인쇄(印刷)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