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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46권, 성종 5년 8월 23일 을사 4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석강에서 이맹현이 승도의 군역 기피·토지의 등급 규정·친경에 대해 말하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강(講)하다가 조조(晁錯)의 상서(上書)에 이르기를, ‘곡식을 낼 땅을 다 개간하지 못하고 노는 백성을 다 농사에 돌아가게 하지 못하였다.’ 함에 이르러, 시강관(侍講官) 이맹현(李孟賢)이 아뢰기를,

"신은 지금도 역시 이와 같다고 여깁니다. 승도(僧徒)가 군역(軍役)을 규피(規避)하며, 놀고 앉아 먹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 군액(軍額)690) 이 날로 줄고 농민이 날로 곤궁해집니다. 비록 다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청컨대 중이 되는 것을 금하는 법을 거듭 밝히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사헌부(司憲府)로 하여금 규찰(糾察)하게 함이 가하겠다."

하였다. 이맹현이 또 아뢰기를,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즉위한 2년 만에 전조(田租)691) 의 반(半)을 면제하고 12년에 이르러 또 농민에게 조세(租稅)의 절반을 내려 주었는데, 특히 백성들의 걱정을 부지런히 구휼한 것만 아니고 농사를 중히 여기는 뜻이 실제로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경인년692) 이래로 수재와 한재가 서로 잇달았는데, 지난해에 하삼도(下三道)693) 가 조금 풍작이 되었던 바, 감사(監司)가 정한 연분(年分)694) 의 등제(等第)를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에서 모두 한 등을 더하였습니다. 대저 연분(年分)은 수령이 처음 조사하여 감사에게 보고하면 감사가 심핵(審覈)695) 하여 등(等)을 더하여 계달하는 것이 상례(常例)이며, 만약 적중하지 않으면 사람을 보내어 검핵(檢覈)하여 감사와 수령을 논죄(論罪)함이 가한 것인데, 어찌 풍작의 사실을 조사하지도 않고 예사(例事)로 등급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문제(文帝)와 같이 조세를 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청컨대 등급을 더하지는 말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알았다."

하자, 이맹현이 또 아뢰기를,

"예로부터 제왕이 친히 밭을 갈아서 자성(粢盛)696) 을 제공하고 왕후가 친히 누에를 쳐서 의복을 제공하는 것은 제사를 중히 여기고 근본을 힘쓰게 하는 소이입니다. 한(漢)나라 문제가의(賈誼)의 말에 감동하여 적전(籍田)을 친히 갈더니, 말년에 이르러 태창(太倉)의 곡식이 묵어서 쌓이고 해내(海內)가 부(富)하여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였으니, 이는 바로 문제가 농사에 뜻을 두어 근본을 힘쓰고 말리(末利)697) 를 누르므로, 아래 백성들이 보고 감동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조정은 조종(祖宗) 이래로 적전(籍田)이 예문(禮文)에 갖추어져 있으나 미처 실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궐전(闕典)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위에서 좋아하는 자가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더 심한 자가 있게 된다.’고 하였으니, 신은 원컨대 친히 적전을 갈아서 위로 자성(粢盛)을 제공하여 성경(誠敬)의 도(道)를 다하고 아래로는 모든 백성을 인솔하여 농사에 힘쓰는 뜻을 보이소서."

하니, 임금이 승지 김영견(金永堅)에게 명하여 몸소 적전(籍田)하는 의주(儀注)를 갖추어서 아뢰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46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4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재정-전세(田稅) / 농업-권농(勸農)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註 690]
    군액(軍額) : 군사의 수효.
  • [註 691]
    전조(田租) : 농지세.
  • [註 692]
    경인년 : 1470 성종 원년.
  • [註 693]
    하삼도(下三道) : 충청도·전라도·경상도.
  • [註 694]
    연분(年分) : 그 해의 농사의 풍흉에 따라 해마다 토지를 상상(上上)·상중·중상(中上)·중중·중하·하상(下上)·하중·하하의 아홉 등급으로 나누는 제도. 조선조 4대 세종 28년(1446)부터 실시하였음.
  • [註 695]
    심핵(審覈) : 일의 진상을 세밀히 조사함.
  • [註 696]
    자성(粢盛) : 제사하는 곡식.
  • [註 697]
    말리(末利) : 상업.

○御夕講。 講至晁錯上書云: ‘生穀之土, 未盡墾, 遊手之民, 未盡歸農’, 侍講官李孟賢啓曰: "臣謂今亦如此也。 僧徒規避軍役, 遊手坐食者, 不知其幾, 軍額日減, 農民日困。 雖未盡去, 請申明禁僧之法。" 上曰: "令司憲府糾察, 可也。" 孟賢又啓曰: " 文帝卽位二年, 除田租之半, 至十二年, 又賜農民半租, 非特勤恤民隱, 重農之意實寓焉。 我國自庚寅以來, 水旱相仍, 去年下三道稍稔, 監司年分等第, 政府六曹竝加一等。 大抵年分, 守令初審報監司, 監司審覈加等而啓例也, 如不得中, 則遣人檢覈, 罪監司守令可也,安可不覈豐稔之實, 例爲加等乎? 縱不如文帝減田租, 請勿加等。" 上曰: "知道。" 孟賢又啓曰: "自古帝王親耕以供粢盛, 后親蠶以供衣服, 所以重祭祀而務本也。 文帝賈誼之言, 親耕籍田, 至末年, 太倉之粟, 陳陳相因, 海內殷富, 家給人足, 此乃文帝留意農事, 務本抑末, 下民觀感以致之也。 我朝自祖宗以來, 籍田禮文具存而未暇行之, 此闕典也。 《傳》曰: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 臣願親耕籍田, 上供粢盛, 以盡誠敬之道, 下率齊民, 以示務農之意。" 上命承旨金永堅, 具躬籍儀注以啓。


  • 【태백산사고본】 7책 46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4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재정-전세(田稅) / 농업-권농(勸農)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