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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45권, 성종 5년 7월 27일 경진 3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일본국 방장섭천 4주 태수가 사람을 보내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방장섭천 4주 태수(防長攝泉四州太守) 대내 별가(大內別駕) 다다량 정홍(多多良政弘)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삼가 황제 폐하(皇帝陛下)592) 께서 명덕(明德)이 일월(日月)보다 빛나고 성수(聖壽)가 장래에 장구(長久)하시기를 빌고 빕니다. 상국(上國)593) 과 우리 선조(先祖)가 통호(通好)한 지 정홍(政弘)까지 26대째입니다. 상국과 대주(對州)와 아직 동맹(同盟)하기 전에 자주 전쟁하였는데, 그 때에 신(臣)의 선인(先人)이 상국을 위하여 구원병을 보내어 사졸이 죄다 전사하고 한 사람도 귀국하지 못한 것이 이제 8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게다가 존명(尊命)594) 을 받들어 수우(水牛) 암수를 바치기도 하였으니, 그렇다면 선인의 상국에 대한 충성이 적지 않았다 하겠습니다. 정홍은 그 후사(後嗣)로서 임진년595) 에 처음 사자(使者)를 보내어 선인이 맺어 온 구호(舊好)를 닦았는데, 그때 구례(舊例)에 어그러지는 일을 당하여 아껴 주시는 뜻이 매우 없었습니다. 집사(執事)가 옛 맹약(盟約)을 잊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또 사자가 변변치 못하였기 때문입니까?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존명에 따라 곧 거듭 사선(使船)을 보내어 명을 받고자 합니다. 따라서 유구국(琉球國)에서 보내 온 사향(麝香) 1필(匹)을 존명을 받들어 바칩니다. 정홍이 몇 해 전부터 산명 좌금오(山名左金吾)의 군사를 돕느라고 경사(京師)에 머문 지가 몇 해 되었는데, 지난해 3월 18일에 금오가 서거(逝去)하고 그달 28일에 세천 경조(細川京兆)도 서거함에 따라 두 집안의 자제들이 점점 화목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하(殿下)가 대명국(大明國)에 사선(使船)을 보내고자 하매, 신이 명을 받들어 배를 꾸미는데, 공사간(公私間)에 그 비용이 매우 많습니다. 상국의 풍부한 재물의 나머지로 은사(恩賜)를 굽어 내리시기를 바라며 앞으로 갈수록 옛 맹약에 따라 충절(忠節)을 지키고자 합니다. 대명국과 유구국에서는 신에 대하여 은문(恩問)이 더욱 후한데, 상국만이 옛 맹약을 잊으신 듯합니다. 교맹(交盟)이 보탬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보명(報命)에 따라 그 뜻을 알아서 엎드려 진정을 아뢰겠습니다. 변변치 않은 토의(土宜)나마 작은 뜻을 표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7책 45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33면
  • 【분류】
    외교-왜(倭)

  • [註 592]
    황제 폐하(皇帝陛下) : 조선 국왕을 가리킴.
  • [註 593]
    상국(上國) : 조선을 가리킴.
  • [註 594]
    존명(尊命) : 조선 국왕의 명을 가리킴.
  • [註 595]
    임진년 : 1472 성종 3년.

日本國 四州太守大內別駕多多良政弘遣人來, 獻土宜。 其書契曰:

恭惟皇帝陛下仰明德之超乎日月, 祝聖壽之富于春秋, 至禱至祝。 上國與我先祖通好, 至政弘, 二十有六代也。 因上國與對州, 未同盟之先, 屢及兵爭矣。 臣之先人, 爲上國遣救之兵, 士卒盡戰死而無一人之歸于國, 而今八十餘歲也。 加之承尊命, 水牛牝牡進之, 然則先人於上國, 其忠不少者歟? 政弘爲其後胤, 壬辰歲初, 以使者修先人之舊好, 寓合違舊而甚無愛惠之趣。 執事其遺忘舊盟歟? 抑又依使者之不肖者歟? 不審不審。 雖然猶依尊命, 卽又重遣使船, 伏聞命者也。 次自琉球國賜麝香一匹, 承尊命可進貢之。 政弘數歲之先, 救山名左金吾之戰而留京師者有年矣。 去歲三月十八日, 金吾已逝去, 同四月二十日細川京兆亦逝去, 因而兩家之子弟, 漸以和睦矣。 於玆我殿下將遣使船於大明國, 臣承命以粧船, 云公云私, 其費鉅多也。 偏仰上國之餘波, 俯垂恩賜, 自今以往, 愈以舊盟抱忠節者也。 其大明國琉球國之於臣也, 恩問尤厚矣, 上國獨似忘舊盟。 交盟若爲無所益者, 依報命以得其心, 伏布腹心。 不腆土宜, 聊表微志耳。


  • 【태백산사고본】 7책 45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33면
  • 【분류】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