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 신숙주가 무안 현감 권열과 화순 현감 권철영을 파직하지 말 것을 청하다
원상(院相) 신숙주(申叔舟)가 아뢰기를,
"무안 현감(務安縣監) 권열(權挒)과 화순 현감(和順縣監) 권철영(權哲英)은 모두가 차사원(差使員)으로서 영산창(榮山倉)의 전세(田稅)를 감수(監收)할 때에, 공리(貢吏)와 상인(商人)의 비행을 금지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행대(行臺)182) 에게 적발이 되어 파직(罷職)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공세(貢稅)는 농부(農夫)가 자진 납부하도록 하였었는데, 금년에 비로소 통납(統納)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통주(統主)와 공리(貢吏)들의 범법(犯法) 사실을 차사원(差使員)은 알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권철영 등은 관청으로 돌아온 뒤에 행대(行臺)가 거기에 이르니, 비록 상행위(商行爲)가 있었다 한들 어떻게 이를 금지할 수 있겠습니까? 권열(權挒)은 신진(新進) 인물이어서 신(臣)은 사실 그 사람됨을 모르오나 다만 들으니 고을을 다스린 업적은 전 도(道)에서 제일이라고 합니다. 또 지금은 바야흐로 농사철이어서 개차(改差)를 하려면 맞이하고 전송하고 하는 폐단이 적지 않을 것이오니, 모두 파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경(卿)이 만일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그 내용을 알 수 있었겠는가? 권철영 등의 직책을 파면하지 말라."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권철영의 사람됨은 청렴하고 겸손하였다. 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가 미천하였을 때에 친분이 아주 두터웠었는데, 그 뒤에 한명회가 세력을 잡게 되자 거마(車馬)가 문을 메꾸었으나 권철영은 한명회의 집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았다. 한명회가 미천할 때 사귀던 자들은 모두 등용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권철영에게, ‘우리들이 한명회와 교분을 맺었을 때 한명회가 가장 친근하게 대한 자는 그대였다. 그러니 그대가 만약 그 집에 한 번만 간다면 작록(爵祿)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니 권철영은, ‘세력이 있는 집안에 어떻게 경솔하게 간단 말인가?’ 하였다. 얼마 후에 한명회가 그의 집에 찾아가 서로 만나지 못하였음을 책망하고 뒤에 추천하여 별제(別提)를 삼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4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99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재정-전세(田稅) / 재정-창고(倉庫) / 역사-사학(史學)
- [註 182]행대(行臺) : 민간(民間)의 이해(利害), 수령(守令)의 치적(治績)·근만(勤慢)·향리(鄕吏)의 횡포를 조사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하던 사헌부(司憲府)의 감찰(監察)을 말함.
○院相申叔舟啓曰: "務安縣監權挒、和順縣監權哲英, 俱以差使員, 監收榮山倉田稅, 不能禁戢貢吏及商販之人, 爲行臺摘發見罷。 前此貢稅許佃夫自納, 今年始作統納之。 其統主貢吏犯法事, 差使員無由得知。 況哲英等還官後, 行臺乃至, 雖有商販, 何以禁之? 《挒》新進之士, 臣實不知其人, 但聞治邑爲一道最。 且今方農月, 迎送之弊不貲, 請皆勿罷。" 傳曰: "卿若不言, 予何得知? 其勿罷哲英等職。"
【史臣曰: "哲英爲人廉退。 上黨府院君 韓明澮微時, 交契款密, 後明澮執政, 車馬塡門, 獨哲英足不及其門。 明澮微時之交, 皆被薦用, 其人謂哲英曰: ‘我輩與明澮托契時, 韓之所獨厚者子也。 子若一至其門, 爵祿可得’, 哲英曰: ‘權門豈可輕進?’ 明澮至其家, 責其不相見, 後薦爲別提。"】
- 【태백산사고본】 6책 4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99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재정-전세(田稅) / 재정-창고(倉庫)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