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서 신하들과 《통감강목》의 강독·수리 도감 혁파·백성의 구휼에 대해 논의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을 마치자 영사(領事)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
"듣건대 《춘추(春秋)》의 강독(講讀)을 마친 뒤에 《예기(禮記)》를 강하려 한다 하니 신(臣)은 생각건대, 《예기》는 진실로 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나, 《통감강목(通鑑綱目)》118) 은 고금(古今)의 치란(治亂)이 갖추어 실려 있으므로 인주(人主)가 마땅히 먼저 강해야 할 것입니다. 청컨대 주강과 석강에는 《강목(綱目)》을 겸하여 강독(講讀)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예기》와 《강목》은 권질(卷帙)이 많아서 동시에 강독할 수 없다. 내가 마땅히 《강목》을 강하겠다."
하였다. 대사간(大司諫) 정괄(鄭佸)이 아뢰기를,
"올해는 흉년으로 백성의 생활이 곤궁하여 혹 굶어 죽은 자가 있으니, 구황(救荒)하는 정책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축적(蓄積)한 곡식이 적어서 비록 진휼(賑恤)하여 구제하려고 하여도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백성을 구제함에는 일을 생략하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근래에 부역이 그치지 아니하였는데, 이제 경복궁(景福宮)의 근정문(勤政門)·홍례문(弘禮門)·광화문(光化門)에 청기와를 덮기 위하여, 백성을 역사시켜 구워 만들게 하니 그 공(功)이 갑절 내지 다섯 갑절이나 듭니다. 인군(人君)은 마땅히 검소한 행실과 덕(德)을 숭상(崇尙)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첫 정사(政事)이겠습니까?"
하니 대사간(大司諫) 이예(李芮)가 아뢰기를,
"예전에 소하(蕭何)119) 가 미앙궁(未央宮)을 지을 때 장엄하고 화려하게 하였는데, 고제(高帝)가 이를 책망하니 소하가 대답하기를, ‘이와 같이 하지 아니하면 천하(天下)를 진압하여 복종시킬 수 없다.’고 하였는데, 선유(先儒)가 이를 그르게 여겼습니다. 띠[茅]로 지붕을 잇고 흙으로 계단을 쌓는 것은 비록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궁궐(宮闕)을 화려하게 꾸며서 사치스럽고 아름답게 함을 일삼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지금 경회루(慶會樓)의 역사를 이미 마쳤는데도 수리 도감(修理都監)의 역사하는 군인이 1천 인을 내려가지 않고 있습니다. 무릇 궁궐(宮闕)을 수즙(修葺)하는 것은 선공감(繕工監)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원컨대 도감(都監)을 파하고, 오로지 선공감(繕工監)에 위임하여 점차로 수즙(修葺)하게 하소서."
하고, 정괄이 아뢰기를,
"보병(步兵)·정병(正兵)으로서 번상(番上)한 자가 대개 토목(土木) 역사(役事)에 지쳐서 혹은 재산을 팔아 사람을 사서 대신 세우고, 혹은 자신이 그 일에 복역하며 굶주려서 뼈가 앙상하니 청컨대 이를 파하여 그 수고를 쉬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사치하고 화려한 것을 숭상함이 아니고, 또 백성을 고달프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궁궐(宮闕)이 장차 무너지게 되어 부득이 수즙(修葺)하게 한 것이다."
하므로 정괄이 아뢰기를,
"청기와를 구워 만드는 데는 물가의 비용이 적지 않으니 청컨대 이를 정지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이예(李芮)가 또 아뢰기를,
"듣건대 유민(流民)이 모두 개성부(開城府)로 향한다 하니 대개 저자[市]에서 구걸을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유시(諭示)를 내려 이를 진휼(賑遹)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감사(監司)로 하여금 유민을 진휼하게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40권 1장 B면【국편영인본】 9책 94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 건설-건축(建築) / 호구-이동(移動) / 구휼(救恤) / 역사-고사(故事)
○戊子/御經筵。 講訖, 領事韓明澮啓曰: "聞《春秋》畢講後, 欲講《禮記》, 臣謂《禮記》固不可不講, 然《綱目通鑑》則備載古今治亂, 人主所當先講也。 請於晝夕講, 兼讀《綱目》。" 上曰: "《禮記》、《綱目》, 卷帙多, 不可竝讀。 予當講《綱目》。" 大司諫鄭佸啓曰: "今歲荒民窮, 或有餓莩者, 荒政不可緩也。 然蓄積少, 雖欲賑救, 不可得也。 救民莫如省事, 比來力役不息, 創又景福宮 勤政、弘禮、光化門, 欲蓋靑瓦, 役民燔造, 其功倍蓰。 人君宜崇尙儉德, 況初政乎?" 大司諫李芮啓曰: "昔蕭何治未央宮壯麗, 高帝責之, 何對以 ‘不如此, 無以鎭服天下’, 先儒非之。 茅茨土階, 縱不可能, 而不宜崇飾宮闕, 以事侈美。 今慶會樓之役已畢, 而修理都監役軍, 不下千人。 凡宮闕修葺, 繕工監足以辦之。 願罷都監, 專委繕工監, 漸令修葺。" 佸曰: "步、正番上者, 多困於土木之役, 或賣産業, 雇人自代, 或身服其勞, 飢餓骨立, 請罷之以休其勞。" 上曰: "予非尙侈麗, 又非欲困民也。 宮闕將圮, 不得已修葺之也。" 佸曰: "靑瓦燔造, 糜費不貲, 請停之。" 上曰: "可。" 芮又啓曰: "聞流民皆向開城府, 蓋欲行乞於市也。 請下諭以賑之。" 上曰: "其令監司, 賑恤流民。"
- 【태백산사고본】 6책 40권 1장 B면【국편영인본】 9책 94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 건설-건축(建築) / 호구-이동(移動) / 구휼(救恤)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