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서 신숙주가 조선과 왜국의 배를 비교하여 조선배의 우수함을 논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강(講)을 마치자 영사(領事) 신숙주(申叔舟)가 아뢰기를,
"이제 전교(傳敎)를 듣건대, 왜인(倭人) 진성행(秦盛幸)의 말에 따라 왜선(倭船)의 체제(體制)를 모방하여 병선(兵船)을 만들어서 쓸 만한지를 시험한다고 합니다. 예전 세종조(世宗朝)에 왜인 등구랑(藤九郞)에게 호군직(護軍職)을 제수하고 병선을 감독하여 만들게 하였으나, 공역(功役)과 비용이 배 이상 댓갑절 들었는데, 판자(板子)가 얇아서 쉽게 부서져 마침내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세조조(世祖朝)에는 유자광(柳子光)을 삼포(三浦)에 보내어 왜인(倭人)의 선장(船匠)으로 하여금 배를 만들게 하였으나, 또한 마치지 못하고 파(罷)하였습니다. 신이 왜선(倭船)을 관찰하니 판자가 매우 얇고 쇠못을 많이 쓴 데다가 몸체는 좁고 배 속은 깊으며 양끝은 뾰족하므로, 왕래하는 데에는 경쾌(輕快)하고 편(便)하지만, 동요(動搖)하면 못구멍[釘穴]이 차츰차츰 넓어져 물이 새게 되어 쉽게 부패(腐敗)합니다. 우리 나라의 병선(兵船)은 몸체가 비록 무겁고 크나 나무못[木釘]은 젖으면 더욱 단단하게 되므로, 견고하고 튼튼하여 10년은 쓸 수 있습니다. 또 병법(兵法)에 ‘높은 곳에 있는 자가 승리한다.’고 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병선은 왜선(倭船)에 비하여 3분의 1이나 높으므로 싸움에 유리합니다. 지난번 신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일본(日本)에 갔을 때 갑자기 적선(賊船)을 만났는데, 즉시 싸울 준비를 하여 돛을 달고서 간지 불과 수리(數里)도 못되어 적선이 모두 따라 오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의 병선이 빠르게 간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공역(功役)과 비용이 비록 배(倍)가 된다고 하더라도 오래 경과하도록 쓸 수 있다면 만드는 것이 가하지만, 만약 폐단이 있고 무익하다면 무엇하러 만드느냐? 다만 사람의 기교가 능란하고 서투른 것이 각기 다른데, 진성행이 등구랑보다 솜씨가 못하다는 것을 어찌 알겠느냐?"
하니 신숙주가 아뢰기를,
"진성행도 또한 선장(船匠)이 아니고 다만 삼포(三浦)의 왜인에게 물어서 만든다는 것뿐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3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9책 8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군기(軍器) / 외교-왜(倭)
○御經筵。 講訖, 領事申叔舟啓曰: "今聞傳敎, 以倭人 秦盛幸之言, 倣倭船體制, 造兵船試其可用。 昔在世宗朝, 授倭人 藤九郞護軍職, 監造兵船, 功費倍蓰, 而板薄易破, 竟未施行。 世祖朝遣柳子光于三浦, 令倭船匠造船, 亦未究而罷。 臣觀倭船, 板甚薄, 多用鐵釘, 本狹而腹闊, 兩端尖銳, 故輕快便於往來, 然動搖則釘穴浸闊而水漏, 易致腐敗。 本國兵船, 體雖重大, 然木釘濕而益固, 故堅緻牢實, 可用十年。 且兵法據, 高者勝, 我國兵船, 比倭船, 高三分之一, 故利於戰。 曩臣奉使日本時, 猝遇賊船, 卽爲戰備, 擧帆而行, 不過數里, 賊船皆不及。 是我國兵船, 疾行之驗也。" 上曰: "功用雖倍, 經久可用, 則爲之可也, 如有弊而無益, 則奚庸爲? 但人之工拙各異, 安知盛幸之非巧於九郞乎?" 叔舟啓曰: "盛幸亦非船匠, 但云問三浦倭人, 而造之耳。"
- 【태백산사고본】 6책 3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9책 8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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