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정 등이 차자를 올려 사찰에서 부녀자와 여승에 의한 풍기 문란을 논하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서거정(徐居正)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부녀자(婦女子)가 절에 올라가는 일은 다만 부녀자의 죄만을 다스리도록 하고 그 중과 여승[僧尼]은 논하지 아니하는데, 신 등이 생각하건대, 고려[前朝]의 말년에 기강(紀綱)이 크게 무너지고 법령(法令)이 엄하지 아니하니 사족(士族)의 부녀자들이 절에 올라가도 금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왕래하기를 때없이 하고 잠자는 곳도 일정한 곳이 없어서, 승려(僧呂)와 속인(俗人)이 뒤섞이고 남녀가 구별이 없는 습속(習俗)이 이미 이루어지니, 태평스레 부끄러운 것을 알지 못하였으며, 여승들은 과부로서 더욱 금방(禁防)할 길이 없으니, 마음대로 행동하고 거리낌이 없었으며, 혹 어떤 자는 사찰(寺刹)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삼아서 음란하고 방종하며 추하고 더러운 소문이 서로 잇달아 높이 귀에 들렸으며, 예속(禮俗)이 날로 그릇되어 나라가 드디어 망하게 되었으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로(父老)에게 들어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노한 머리털이 고슴도치처럼 곤두서게 합니다. 우리 조정에서도 조종(祖宗) 이래로 부녀자가 절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하는 조령(條令)이 나타나 있으며, 또 《대전(大典)》에서도 금제(禁制)하기를 거듭 밝히고 있으니, 그 예(禮)를 삼가서 절의(節義)를 지키는 것이 세도(世道)의 가문에서 해야 할 지극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법이 비록 엄하더라도 관리(官吏)가 능히 거행하지 못하여, 절에 올라가는 풍습을 갑자기 쉽게 바꿀 수가 없으니, 어찌 깊이 한탄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윤씨(尹氏)는 비록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하나, 본래는 벌족(閥族)의 집안에서 훈신(勳臣)의 아내이었으니, 어찌 절에 올라가는 금령(禁令)을 알지 못하고서 그 무리들을 거느리고 사족(士族)의 과부들을 유인하여, 성불사(成佛寺)·정인사(正因寺) 등의 절을 왕래하면서 머물러 이틀 밤을 자고 불법한 일을 수창(首倡)하였겠습니까? 혜사당(惠社堂)·정각(正覺) 등과 같은 무리들이 수종사(水鍾寺)에 유숙(留宿)하면서 7, 8일을 지냈고, 또 도성사(道成寺)에 왕래하였는데, 그 수종(隨從)하는 여승과 그 시비(侍婢)의 수가 얼마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들이 나라의 법을 감히 어기고 방종하며 무법(無法)한 것이 이와 같았으므로, 추단(推斷)하여서 그 죄를 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정인사(正因寺)는 두 임금의 침원(寢園)438) 에 가까이 있어서 조석(朝夕)으로 정근(精勤)하고 향화(香火)하며,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니, 음란하고 더러운 부녀자들을 모아서 혼잡하게 뒤섞여 떠들고 싸우는 곳이 아닙니다. 주지(住持)인 설준(雪俊)은 비록 승행(僧行)이 없다 하더라도 문리(文理)를 조금 아는데, 간사하고 교활하기는 남보다 지나치니, 어찌 부녀자가 절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과 능침(陵寢)을 함부로 더럽힐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여승과 과부들을 깊이 유혹하여 수일 동안 맞이하여 머무르게 하고, 심지어는 승도(僧徒)들로 하여금 그 문(門)을 지키게 하고 노복(奴僕)들의 출입을 금방(禁防)하게 하여, 안팎으로 하여금 격조(隔阻)하게 하였습니다. 흉악하고 간휼함이 이와 같았고, 방종함이 이와 같았으니, 일찍이 국가에 법령이 있었다고 하겠습니까? 수종사(水鍾寺)·성불사(成佛寺)·도성사(道成寺) 등의 주지승(住持僧)이 설준(雪俊)과 같은 무리라고 아니할 수가 없으니, 모두 추단(推斷)하여 죄를 정(定)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데도 좌죄(坐罪)하지 않는다면, 중[僧]이라 하고 여승[尼僧]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깎고 장삼을 입은 사악한 무리들이 어찌 징계되겠으며, 어찌 기탄(忌憚)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신 등은 그윽이 고려(高麗) 말년의 풍속이 금일에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은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천청(天聽)을 번독(煩瀆)하오니, 빌건대 위의 항목의 중과 여승들을 추국(推鞫)하여 죄를 정하여서 그 기미를 막으소서."
하니 전지(傳旨)하기를,
"《대전(大典)》에는 다만 부녀자(婦女子)가 절에 올라가는 것만을 금지하였고, 여승들은 금지한 것이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32권 5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7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신분-양반(兩班) / 윤리(倫理) / 풍속-풍속(風俗) / 사상-불교(佛敎)
- [註 438]침원(寢園) : 임금의 무덤.
○乙巳/司憲府大司憲徐居正等上箚子曰:
婦女上寺事, 只令治婦女之罪, 其僧尼勿論。 臣等謂, 前朝之季, 紀綱大壞, 法令不嚴, 士族婦女上寺無禁, 往來不時, 寢處無常, 僧俗混淆, 男女無別, 習俗已成, 恬不知恥, 尼僧寡婦, 尤無禁防, 恣行無忌, 或以寺刹爲第舍, 淫縱醜穢之聲, 相繼騰聞, 禮俗日非, 國隨以亡, 至今聞諸父老, 令人怒髮如蝟。 我朝自祖宗以來, 婦女上寺之禁, 著在條令, 又於《大典》, 申明禁制, 其爲謹禮防存節義, 爲世道計至矣。 然法雖嚴, 而官吏未能擧行, 上寺之習, 未易猝變, 豈不深可歎歟? 今尹氏, 雖剃髮爲尼, 本閥閱之家勳臣之妻, 豈不知上寺之禁, 而率其徒屬, 誘引士族寡婦, 往來成佛、正因等寺, 淹留信宿, 首倡不法之事? 如惠社堂、正覺等輩, 留宿水鍾寺, 經七八日, 又往來道成寺, 其隨從尼僧、侍婢之數, 不知其幾, 其敢冒邦憲, 放縱無法如此, 不可不推斷, 以定其罪也。 正因寺密邇兩聖寢園, 朝夕精勤香火, 淨密之處, 非聚集淫穢婦女雜遝喧鬨之地也。 住持雪俊, 雖無僧行, 稍解文理, 奸黠則有餘, 豈不知婦女不可上寺, 陵寢不可瀆褻? 顧乃濃誘尼僧、寡婦, 邀留數日, 至令僧徒把直其門, 禁防僕隷出入, 使內外阻隔。 兇譎如此, 放縱如此, 曾謂國家有法令乎? 水鍾、成佛、道成等寺住僧, 無非雪俊之儔, 皆不可不推斷, 以定其罪。 此而不坐, 曰僧曰尼, 髡緇陰邪之輩, 何所懲艾, 何所忌憚乎? 臣等竊恐高麗衰季之風, 未必不復於今日也。 臣等不勝憤鬱, 敢瀆天聽, 乞將上項僧尼, 推鞫定罪, 以杜漸微。
傳曰: "《大典》只禁婦女上寺, 尼僧則無禁。"
- 【태백산사고본】 5책 32권 5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7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신분-양반(兩班) / 윤리(倫理) / 풍속-풍속(風俗)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