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31권, 성종 4년 6월 4일 계해 3번째기사 1473년 명 성화(成化) 9년

평안도 절도사 정문형에게 북쪽 변경의 방어에 대해 유시하다

평안도 절도사(平安道節度使) 정문형(鄭文烱)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이제 경(卿)의 장계(狀啓)를 보니, 저들 오랑캐가 북쪽으로 강계(江界)·만포(滿浦)로부터 남쪽으로 의주(義州) 수구(水口)에 이르기까지 포열(布列)하여 출몰(出沒)한다고 하니, 반드시 휼계(譎計)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물이 바야흐로 불어서 염려할 바는 없으나, 만약 적(賊)이 오래 머물면 농민들이 출입할 수가 없어서 반드시 농사를 폐하게 될 것이다. 적은 본래 들판에서 사냥을 행하기 때문에 진실로 거리낄 것은 없으나, 반드시 갑자기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가만히 헤아려 보건대 중국(中國)의 장장(長墻)은 바로 우리 삭주(朔州)구령 구자(仇寧口子)에서 연대(煙臺)가 서로 바라보이므로, 오랑캐의 기병(騎兵)이 구령(仇寧)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와 방산 구자(方山口子)에 이르렀다면, 중국 장장(長墻)애양보(靉陽堡)도 이미 지나갔을 것이다. 이제 구령(仇寧)에 명령하여, 장장(長墻)에서 서로 바라보이는 연대(煙臺)에 여러 차례 직상화(直上火)를 놓게 하여서 장장(長墻)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적(賊)이 남하(南下)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면, 중국 백성들이 장내(墻內)에 포거(布居)하여 반드시 저들을 차단[遮截]할 계책이 있을 것이다. 이제 강 연안의 제수(諸戍)로 하여금 적(賊)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나무를 베어 선박을 만들고 뗏목을 만들어 장차 대군이 강을 건널 것처럼 하게 하고, 수장(戍將)은 형명(形名)을 벌여 놓고 순환(循環)하면서 출입하여 적으로 하여금 우리가 장차 도강(渡江)할 것으로 의심하게 하면, 반드시 돌아갈 계획을 할 것이다. 또한 의주(義州) 제도(諸島)에, 수심(水深)이 얕아서 건널 수 있는 곳으로 백성들을 들어가게 하여 적이 돌아가기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또한 옳을 것이다.

이제 또 통사(通事) 김저(金渚)가 압해관(押解官)으로 요동(遼東)에 가게 되었는데, 의주(義州)·창성(昌城)으로 하여금 체탐(體探)하고 후망(候望)하여 적(賊)이 모두 돌아간 것을 안 연후에 강을 건너가도록 하라. 적이 군사를 강변에 포치(布置)하여 우리로 하여금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고서 한편으로 군사를 나누어 팔참(八站)의 중국 거민(居民)을 노략질할 것도 또한 의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비록 강변의 적기(賊騎)가 이미 돌아갔다고 하지만, 깊이 팔참(八站)에 들어간 적이 돌아가지 않았으니, 만약 김저(金渚)의 일행을 만난다면 이것도 또한 염려해야 할 일이다. 모름지기 멀리 팔참의 길을 체탐(體探)하여 반드시 의심할 만한 것이 없어야만 이들을 보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경(卿)이 아뢴 바 만포(滿浦)에서 저들을 먹이고 줄 물품을 전례(前例)에 의거하여 갖추어 주는 일은 관찰사(觀察使)에게 하유(下諭)하였다. 그러나 적(賊)이 만약 무리를 이루어 올 것 같으면 접대하지 말도록 하고, 만약 1, 2인이 와서 의심할 만한 형세가 없을 경우는 곧 접대하도록 하되, 말하기를, ‘지난 겨울에 너희 건주 삼위(建州三衛)의 추장(酋長)들이 보낸 사람이 영안도(永安道) 길을 따라 이르렀으므로, 국가에서 자신(自新)할 것을 허락하였다. 전일에 입공(入攻)한 것은 우리가 사사로이 원수진 것이 아니고 중국에서 명(命)한 바이다. 너희들이 진실로 귀순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너희를 대접하기를 옛날과 같이 할 것이다.’ 하고, 저들이 만약 상경(上京)하고자 하면 곧 이르기를, ‘중국에서는, 우리가 너희를 초무(招撫)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희도 또한 아는 바이니, 이 길을 경유하여 상경하는 것은 불가하므로, 영안도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라. 이와 같이 개설(開說)하고 후대하여 들여보내라. 무릇 임기 응변하는 모든 일은 멀리서 헤아릴 수 없으니, 경이 기미를 보아서 조치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3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27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諭平安道節度使鄭文烱曰: "今觀卿啓, 彼虜北自江界滿浦, 南至義州水口, 布列出沒, 必有譎計。 然江水方盛, 宜無所慮, 若賊久留, 則農民不得出入, 廢農必矣。 賊本野處行獵, 苟無所憚, 必不遽還。 竊計, 中國長墻, 直我朔州 仇寧口子, 烟臺相望, 虜騎過仇寧, 而南至于方山口子, 則於中國 長墻 靉陽堡, 亦已過矣。 今令於仇寧, 長墻相望烟臺, 數放直上火, 使長墻之人, 知賊南下, 中國之民, 布居墻內, 彼必有遮截之計。 今令沿江諸戍, 於賊望見處,伐木, 若作船作桴, 將渡大軍然者, 戍將張形名, 循環出入, 使賊疑我將渡, 必有還計。 且義州諸島, 水淺可渡處, 令民疊入, 以待賊還, 亦可也。 今又通事金渚, 以押解往遼東, 令義州昌城, 體探候望, 知賊盡還, 然後使之越江而去。 賊布兵於江邊, 使我不得渡江, 而分兵以掠八站中國居民, 是亦可疑。 今雖江邊賊騎已還, 而深入八站之賊未還, 若遇金渚之行, 則是亦可慮。 須遠探八站之路, 必無可疑, 乃可遣也。 且卿所啓滿浦彼人饋遺等物, 依前例備給事, 下諭觀察使。 然賊若成群而來, 則勿令接待, 若一二人來款, 無可疑之勢, 則令接待語之曰: ‘去冬汝建州三衛酋長使人, 從永安道送款, 國家許其自新。 前日入攻, 非我私讎也, 乃中國所命耳。 汝苟歸順, 則我之待汝, 如昔日而已。’ 彼若欲上京, 則語之曰: ‘中國不欲我招撫汝等, 亦汝之所知也, 不可由此路上京, 從永安道而去可也。’ 如是開說, 厚待入送。 凡應變諸事, 不可遙度, 卿宜相機措置。"


    • 【태백산사고본】 5책 3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27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