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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1권, 성종 3년 8월 23일 정해 4번째기사 1472년 명 성화(成化) 8년

근검하고 절용할 것을 의정부에 전지하다

의정부(議政府)에 전지(傳旨)하기를,

"재물을 생산하는 것은 근본을 힘쓰는 데에 있고, 재물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절용(節用)하는 데 있다. 만일 절용을 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검약(儉約)해야 하는 것이다. 대개 사치(奢侈)를 하게 되면 쓰는 것이 넓어지고, 쓰는 것이 넓어지면 재물이 반드시 바닥이 나게 된다. 우리 나라를 생각해 보건대 산(山)이 험준하고 물살이 세며, 토지가 돌이 많고 척박하여, 근검(勤儉)하고 절용(節用)하더라도 오히려 재용(財用)이 넉넉지 못할 것을 근심하게 되는데, 하물며 근본을 버리고 끝을 따라 살아가는 데에 법도[道]가 없이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다투어 숭상하여 절제없이 쓰는 것이겠느냐? 내가 이것을 염려하여 끝을 따르는 것을 금하기를 엄하게 하고 백성을 부리는 법을 정하여, 이들로 하여금 농상(農桑)에 전력(專力)하도록 할 것이며, 또 급하지 않은 역사를 그만두고 무익(無益)한 비용을 제(除)하며, 안으로는 궁중(宮中)에서 밖으로는 백사(百司)까지 모두 다 조도(調度)를 살펴서 장차 횡렴(橫斂)696) 으로 인하여 백성을 요란(擾亂)케 함이 없게 하라. 백성을 위하는 것은 또한 각각 스스로 도모하여 농상(農桑)에 힘을 다하도록 하여 타만(惰慢)697) 하지 말고, 검박과 절약을 숭상하여 사치하는 데에 휩쓸리지 말게 하며, 재물을 헤아려 절용(節用)토록 하여 함부로 소모(消耗)시키지 말게 하는 것이 옳겠다. 한 가정과 나라가 크고 작은 것은 비록 다르더라도 그 체(體)는 하나이니, 진실로 능히 절약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면, 쓰임새를 넉넉하게 하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삼국(三國) 이래로 백제(百濟)가 가장 사치(奢侈)함을 일삼아 군장(軍長)이 된 자가 올바른 방법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교사(驕奢)하고 음탕하며 술을 좋아함이 상하(上下)가 비덕(比德)698) 하여 재물이 바닥이 나고, 힘이 고갈되어 마침내 망하는 데에 이르렀다. 지금의 전라도(全羅道)는 곧 그 옛땅으로서 그 연회(燕會)와 상장(喪葬)에서 그 예도(禮度)를 따르지 않고, 완악한 기풍과 흐려진 풍속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남아있다. 신라(新羅)는 풍속이 근검(勤儉)을 힘쓰고 화려하게 꾸미기를 일삼지 아니하여, 집안이 넉넉하고 나라가 부(富)하였으며, 상하(上下)가 서로 편안하여 천여 년을 계속했으니, 지금 경상도(慶尙道)가 곧 그 구지(舊地)로서 순후한 기풍과 질박한 풍속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로 전한다. 그래서 이름하여, ‘다스리기가 쉽다.’ 한다. 안동(安東) 사람의 경우는, 부지런함을 힘쓰고 고생을 참으며, 가을과 겨울에는 죽을 먹으면서 농사지을 달에 쓸 것을 저축하므로 범백(凡百)의 비축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집집마다 서로 본받고 사람마다 스스로 노력한다. 이렇기 때문에 안동(安東)은 영남(嶺南)에 있어서 그 땅은 더욱 박(薄)하지만 비록 흉황(凶荒)을 만나더라도 백성이 유리(流離)하지 아니하니, 어찌 복근(服勤)과 절용(節用)의 효과가 아니겠느냐? 중국(中國)은 물이 깊고 땅이 두터워서 지력(地力)이 우리 나라에 비하여 현절(縣絶)하지마는 음식의 소비가 지극히 검약(儉約)하다. 일본(日本)의 풍속은 검박하고 인색함이 더욱 심하고, 야인(野人)의 완고함에 이르러서도 또한 멀리 생각할 줄 알아서, 가을에 벼를 이미 거두고 나면 열두 개의 움[窖]을 나누어 만들고, 달을 계산하여 써서 한 해의 계획을 삼는다. 오직 우리 나라 사람은 마음대로 쓰고 입에 맞는 대로 먹으며, 다투어 과미(誇靡)699) 를 숭상하여 다른 사람에게 빌려서라도 또한 술과 밥을 만들어 다만 눈앞의 즐거움만을 도모하므로, 한갓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자식을 기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혹은 유리(流離)하고 사망(死亡)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데, 더구나 흉년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서로 보전하여 살아갈 것인가? 그 모두를 중외(中外)에 유시하여, 위로는 공경 대부(公卿大夫)로부터 아래로는 제민(齊民)에 이르기까지 각각 내 뜻을 본떠서 근검(勤儉)하고 절용(節用)하여 생업(生業)을 이루고 함께 태평(太平)을 누리게 하라."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임금이 풍속이 사미(奢靡)700) 한 것을 숭상하기 때문에 근검(勤儉)하라는 하교(下敎)를 내린 것이니, 이는 임금이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사미의 습속은 모두 다 의복과 음식의 아름다움을 귀하게 여겨 가까이한 데 연유한 것으로 참람하게 본뜨는 것이 절도가 없어서 드디어 풍속을 이루었으니, 탄식할 따름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2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82면
  • 【분류】
    풍속-풍속(風俗)

  • [註 696]
    횡렴(橫斂) : 마음대로 거두어 들이는 일.
  • [註 697]
    타만(惰慢) : 게으르고 느림.
  • [註 698]
    비덕(比德) : 사리 사욕(私利私慾)으로 기울어지는 악덕(惡德)을 말한 것으로, 《서경(書經)》 홍범(洪範)에서 온 말.
  • [註 699]
    과미(誇靡) : 허세와 사치.
  • [註 700]
    사미(奢靡) : 사치와 허세.

○傳旨議政府曰: "生財, 在於務本, 裕財, 在於節用, 如欲節用, 必先儉約。 蓋奢侈則用必廣, 用廣則財必竭。 念我東方, 山峻、水駛, 土地磽薄, 勤儉節用, 猶患財用之不裕。 況乎棄本逐末, 生之無道, 爭尙華侈, 用之不節哉? 予爲是慮, 嚴逐末之禁, 定役民之法, 使之專力於農桑。 又罷不急之役, 除無益之費, 內而宮中, 外而百司, 悉省調度, 將無橫斂, 以擾於民。 爲民者亦各自謀盡力農桑, 勿爲惰慢; 崇尙儉約, 勿爲奢靡; 量財節用, 勿爲橫耗, 可也。 家之與國, 大小雖殊, 其體則一, 苟能存心省約, 於裕用乎何有? 自三國以來, 百濟最爲忲侈, 爲君長者, 不能道之以方, 驕奢淫酗, 上下比德, 財殫力竭, 竟至於亡。 今之全羅道, 卽其舊地, 其燕會、喪葬, 不循禮度, 頑風、淆俗, 至今猶在。 新羅俗務勤儉, 不事華飾, 家裕國富, 上下相安, 千有餘年, 今慶尙道卽其舊地, 淳風樸俗, 至今相傳, 號爲易治。 如安東之人, 服勤忍苦, 秋冬食粥, 以儲農月之用, 凡百畜備, 無所不至。 家家相効, 人人自力, 以故安東在嶺南, 其土尤薄, 而雖遇凶荒, 民不流離, 豈非服勤節用之效歟? 中國, 水深土厚, 地力比我國懸絶, 而飮食之費, 至約; 日本之俗, 儉嗇尤甚。 以至野人之頑, 亦知慮遠, 秋禾旣穫, 分爲十二窖, 計朔而用, 以爲一歲之計。 惟我國人, 縱意而用, 恣口而食, 爭尙誇靡, 稱貸於人, 亦爲酒食, 只圖眼前之樂, 非徒無以仰事、俯育, 或至流離、死亡。 況値凶歉, 何以相保爲生哉? 其亟告諭中外, 上自公卿大夫, 下至齊民, 各體予意, 勤儉節用, 以遂生業, 以共享太平。"

【史臣曰: "上以俗尙奢靡, 下勤儉之敎, 聖慮勤矣。 然奢靡之習, 皆由於貴近服食之美, 僭擬無節, 遂成風俗, 可嘆也已。"】


  • 【태백산사고본】 4책 2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82면
  • 【분류】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