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임사홍이 이숙·강의산·김정광 등에게 중하게 죄줄 것을 청하다
경연에 나아갔다. 강이 끝나자 집의(執義) 임사홍(任士洪)이 아뢰기를,
"요새 폭풍이 크게 일어나서 벼와 나무가 모두 뽑혔으므로 원통한 형옥이 체류되었을까 염려하여 곧 소결(疏決)할 것을 명하였으니, 하늘의 꾸지람을 두려워함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옛말에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항상 형벌이 적당하지 아니한 까닭이라고 하였는데, 이숙(李塾)·강의산(康義山)·김정광(金庭光)·이숭수(李崇壽)는 모두 큰 죄를 범하였는데, 종편(從便) 부처(付處)하여 농장(農庄)에서 편안히 살고 있거나 고신(告身)을 주고 심지어 일을 맡긴 사람도 있으니, 죄가 있는 사람은 비록 좋아하겠지만 인심(人心)이 반드시 결망(缺望)할 것이고, 인심이 따르지 않으면 하늘의 뜻을 가히 알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재변은 나의 부덕한 소치인데, 저들이 어찌 관여되겠는가?"
하니 임사홍이 아뢰기를,
"고식적(姑息的)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옛적에는 공장(工匠)들도 공예(工藝)의 일을 가지고 간(諫)하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아니하여 대간(臺諫)만이 말을 합니다. 대간만이 말을 하는데 임금께서 듣지 아니하면, 언로(言路)가 막히어 공(功)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사간(司諫) 김영견(金永堅)이 아뢰기를,
"난신과 역적은 천지에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좌(緣坐)된 사람도 공신(功臣)의 집에서 급부(給付)하는 것은 그의 죄를 중하게 하여 후래(後來)를 경계한 것입니다. 지난 번에 대간에서 박포(朴苞)의 죄가 종사(宗社)에 관계되었으므로 그 자손들을 너그럽게 용서하지 말도록 청하였을 때 전하께서 그대로 따랐습니다. 계유년627) 이후의 난신들은 죄가 박포보다 더하고 연대(年代)도 오래되지 아니하였는데, 그 연좌한 사람들을 모두 이제 놓아 보내도록 한 것은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생각하여 보겠다."
하였다. 김영견이 또 아뢰기를,
"신륵사를 이제 바야흐로 중창(重創)하고 있는데, 능침(陵寢)이 있는 곳에 반드시 절을 세울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선왕을 위하여 부득이한 것이라면 내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내수사(內需司)의 재물을 쓴다 하고 놀고 있는 무리를 역사시킨다 할지라도, 내수사의 재물도 또한 국가에서 저축한 것이요 중의 무리에게 역사한 값을 줄 것이니, 창름(倉廩)의 소비가 또한 많을 것입니다. 지금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데에 어떠합니까?"
하고 임사홍이 아뢰기를,
"이단(異端)의 그른 것은 성상께서도 이미 분변하실 것입니다. 신륵사의 수즙(修葺)은 새로 창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 강의산에게 명하여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강의산은 심지(心志)가 비루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불효(不孝)한 사람이므로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만약 부득이하면 선공감(繕工監) 관리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는 것이 편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신륵사는 선왕을 위하여 보수하는 것이니, 정지할 수 없다. 강의산의 일은 내가 마땅히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20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7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사법-재판(裁判)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인사-관리(管理) / 변란(變亂)
- [註 627]계유년 : 1453 단종 원년.
○御經筵。 講訖, 執義任士洪啓曰: "今者, 暴風大作, 禾木盡拔, 慮刑獄冤滯, 卽命疏決, 其警懼天譴, 至矣。 古云: ‘災變之作, 恒由刑罰不中。’ 李塾、康義山、金庭光、李崇壽俱以大罪, 或從便付處, 而安居農庄, 或給告身, 至有任事者。 有罪者雖喜, 人必缺望; 人心不服, 則天意可知。" 上曰: "災變, 是予否德所致, 彼何與焉?" 士洪曰: "姑息施恩, 實非美事。 古者, 工執藝事以諫, 今則不然, 獨臺諫言之。 臺諫獨言, 而人主不聽, 則言路塞, 而罔與成厥功矣。" 司諫金永堅曰: "亂逆, 天地所不容。 其緣坐人給付功臣之家者, 重其罪而戒後來也。 乃者, 臺諫以朴苞罪關宗社, 故其子孫請勿寬貸, 而殿下從之。 癸酉以後亂臣罪逾於苞, 年又未久, 而其緣坐人悉令放遣, 未便。" 上曰: "予當思之。" 永堅又啓曰: "神勒寺, 今方重創, 陵寢所在, 不必建寺。 如曰: ‘爲先王, 不得已焉。’ 則待來年, 未爲晩也。 雖曰: ‘費內需之財, 役遊手之徒。’ 內需之財, 亦國家所儲, 而僧徒償役, 廩費亦多, 其於裁省冗費何?" 士洪曰: "異端之非, 聖上已辨之。 神勒寺修葺, 何異新創? 又命康義山董役, 義山非唯心志鄙陋, 亦不孝人也, 不可任事。 如不得已, 令繕工監吏, 董役爲便。" 上曰: "神勒寺爲先王修補, 不可停也。 義山事, 當商量。"
- 【태백산사고본】 4책 20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7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사법-재판(裁判)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인사-관리(管理)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