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 대사헌 권감이 김지경 등에게 죄줄 것을 청하다
사헌부 대사헌 권감(權瑊) 등이 상소하여 이르기를,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임금은 구중(九重) 궁궐 위에 서 있으니, 어찌 능히 한 사람의 지려(智慮)로써 천하의 사실과 거짓을 두루 알 수 있으며, 어찌 능히 한 사람의 보고 들음으로써 여러 신하의 충성하고 간사함을 모두 살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지려(智慮)를 부탁하여 사실과 거짓을 두루 알고, 보고 듣는 것을 부탁하여 충성한 자와 간사한 자를 다 살피는 것은 대간(臺諫)에 지나지 아니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대간을 대우하는 데 중하게 하지 아니할 수 없고 대간을 다스리는 데 또한 엄하게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대간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면 직언(直言)을 들을 수 없고, 대간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소인들이 사특함을 팔[售] 것입니다. 근자에 김지경(金之慶) 등이 김국광(金國光)·오백창(吳伯昌)을 탄핵함에 있어서 그를 지극히 비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아니하고 봉장(封章)607) 과 정주(庭秦)가 두세 번에 이르렀습니다. 김국광은 나라를 담당한 대신이요 오백창은 한 도의 감사인데, 그들의 숨은 간특함을 지적하여 회피하지 아니하였으니, 진실로 대간의 직책을 다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박시형(朴時衡)이 원상(院相)을 파할 것을 아뢰었다는 말을 들음에 이르러서는 구연(瞿然)히 얼굴빛이 변하여 이르기를, ‘만약 오늘이 지나면 원상(院相)이 피혐(避嫌)하여 반드시 사고가 날 것이다. 원상이 어찌 우리가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하다가, 곧 박시형을 핍박하여 자기 홀로 계달한 죄를 자수하게 하였습니다. 김지경이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대신을 훼척(毁斥)한 것이 성심에서 나왔다면, 원상은 어떠한 대신이기에 박시형이 한 마디 말을 하자 정신이 다 없어서 곧 〈박시형으로〉 하여금 대궐에 나아가게 하여 자기들은 과실이 없는 곳으로 나가고 박시형만 홀로 그 허물을 담당하게 하려고 했겠습니까? 그의 뜻은 반드시 김국광과 오백창은 비록 대신이라 할지라도 그 세력을 가히 공격할 만하나, 원상의 대신은 그 세력이 무서워 동요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김지경의 마음이니, 신의 말을 기다릴 것 없이 전하께서도 또한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김계창(金季昌)은 오랫동안 경악(經幄)608) 에서 모시어 친히 덕음(德音)을 받들었고 나와서 헌신(憲臣)이 되었으니, 적심(赤心)으로 보은(報恩)할 것을 도모해야 하는 것인데, 이에 이르기를, ‘경연은 일을 계달하는 곳이 아니요 원상을 두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니 비록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파하지 아니하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또 들으니, 박시형이 일찍이 김계창의 집에 가서 원상을 파하자는 일을 의논하였는데 김 계창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이 일은 그대의 하는대로 맡기겠다. 나는 스스로 말을 하지 않은 지 오래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김계창은 더벅머리 유생[竪儒]으로 우연히 문귀(文句)의 적은 기예(技藝)로써 근신(近臣)이 되었는데, 그 말이 이와 같으니 그의 뜻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김지경은 형세를 보아 외축(畏縮)하여 대신의 화를 두려워하였을 뿐이지만, 김계창은 그 곧은 말을 돕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말을 꾸짖고 또 이르기를, ‘나는 말을 하지 아니한 지 오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구차히 용납하여 매진(媒進)609) 할 계획을 하고, 국가의 일을 보기를 진(秦)나라 사람이 월(越)나라 사람을 보는 것610) 과 같이 한 것으로, 이것은 이른바 비부(鄙夫) 중에서도 심한 자입니다. 전하께서 항상 시종(侍從)은 강독(講讀)하고 임금의 뜻을 받들어서 잘못을 광구(匡救)하고 덕을 보필하는 것으로써 김계창을 대접하였는데, 그의 뜻이 이와 같으니, 전하의 덕에 무엇이 도움이 되며 국가의 일에 무엇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배맹후(裵孟厚)는 또 김지경·김계창과 단합하고 박시형을 독촉하여 이르기를, ‘이 일은 원상이 반드시 우리들이 함께 의논하여 계달하였다고 할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오직 화환(禍患)이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미 대간이 되어 전하에게 직언(直言)을 하고자 하지는 않고 대신에게 거스르지 않고자 하며, 국가에 힘을 다하고자 하지는 않고 오직 몸을 편안하게 할 꾀만 부리면, 전하의 이목(耳目)을 부탁한 뜻에 어떠합니까? 김지경으로 하여금 다만 김국광·오백창을 탄핵하게 하고 박시형의 일을 핍박하지 아니하였다면, 김지경이 순수한 충성을 위한 것이 되고 거짓을 꾸미며 명예를 구하는 자취가 나타나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김계창과 배맹후로 하여금 외축(畏縮)한 말이 없었다면, 입을 다물고 구차하게 용납하는 무리가 됨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그의 거짓을 알지 못하고 잘못 은혜를 베풀었다면 오히려 가하다 하겠으나, 이제 이미 그의 거짓을 알고서도 오히려 김지경을 수 중추 지사(守中樞知事)로 삼고 김계창을 예문 전한(藝文典翰)으로 삼으며 배맹후를 제용 첨정(濟用僉正)으로 삼으니, 지사는 대사헌보다 아래가 아니고 전한은 집의(執義)보다 아래가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그의 관작(官爵)을 거두고 전리(田里)로 내쳐 돌려보낸다면, 온 나라의 신민들이 전하의 지극히 밝음을 우러러보지 아니할 사람이 없고 사기(士氣)가 진기(振起)할 것이며 대간이 더 중(重)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소가 들어오자, 입직(入直) 승지(承旨) 유지(柳輊)·이숭원(李崇元)을 불러서 보이고 이르기를,
"김지경은 과실이 없고 김계창만 문초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2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7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607]봉장(封章) : 상소(上疏).
- [註 608]
경악(經幄) : 경연(經筵).- [註 609]
매진(媒進) : 진급(進級)하기 위하여 엽관 운동(獵官運動)을 하는 것.- [註 610]
국가의 일을 보기를 진(秦)나라 사람이 월(越)나라 사람을 보는 것 : 중국 춘추 시대(春秋時代)에 진(秦:섬서성(陝西省)에 있던 나라)이 월(越:절강성(浙江省)에 있던 나라)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런 관심이 없이 본다는 뜻으로, 아무 이해 관계가 없이 무심하게 보는 것을 말함.○司憲府大司憲權瑊等上疏曰:
臣等竊惟, 人主立於九重之上, 安能以一人之智慮, 而周知天下之情僞? 安能以一人之視聽, 而盡察群下之忠邪? 人主所以寄之以智慮, 而欲周知於情僞, 寄之以視聽, 而欲盡察其忠邪, 不過臺諫而已。 人主待臺諫, 不可不重; 而治臺諫, 不可不嚴。 不重臺諫, 則直言無所聞; 不治臺諫, 則小人得以售其詐。 近者, 金之慶等彈射金國光、吳伯昌, 極其醜詆, 曾不少貸, 封章庭奏, 至再至三。 國光, 當國大臣; 伯昌, 一道監司。 而指其隱慝, 無所回避, 誠可謂盡臺諫之職矣。 至聞朴時衡啓罷院相之語, 則瞿然失色曰: "若過今日, 院相避嫌, 而生事必矣。 院相, 豈以吾曹爲不知乎? 如之何? 如之何?" 卽逼時衡, 自首其獨啓之罪。 使之慶毁斥大臣, 不畏權勢者, 出於誠心, 則院相何等大臣, 而時衡一言及之, 魂膽俱喪, 立使詣闕, 欲自出於無過之地, 而使時衡, 獨當其咎乎? 其意, 必國光、伯昌, 雖曰大臣, 而其勢可攻; 院相大臣, 其勢可畏, 而不可搖。 是其之慶之心, 不待臣言, 而殿下亦已知之矣。 金季昌久侍經幄, 親奉德音, 出爲憲臣, 宜其赤心圖報, 而乃曰: "經筵非啓事之所, 院相美事, 雖久不罷, 可也。" 臣等又聞, 時衡嘗訪季昌家, 議罷院相之事, 季昌答云: "此事, 任君爲之。 我則自分無言久矣。" 季昌竪儒, 偶緣文句微技, 承乏得爲近臣, 其言如此, 其志可知。 然之慶, 不過觀勢沮縮, 畏其大臣之禍己而已; 季昌非惟不能助其昌言, 反爲之辭以責其言。 且曰: "我則無言久矣。" 是以苟容爲媒進之計, 視國家事, 若秦人之視越人, 此所謂鄙夫之甚者也。 殿下, 常以侍從講讀, 將順匡輔待季昌, 而其立志如此, 則何補於殿下之德, 何裨於國家之事乎? 裵孟厚, 又與之慶、季昌等環揖, 而促時衡曰: "此事, 院相必以爲, 我輩同議而啓之。" 惟恐禍患之及己。 旣爲臺諫, 不欲直言於殿下, 而欲無忤於大臣, 不竭力於國家, 惟欲爲容身之計, 其於受殿下耳目之寄何? 使之慶, 只彈國光、伯昌, 而無逼時衡之事, 則之慶爲純忠, 而飾詐釣名之跡不見矣; 使季昌、孟厚, 無畏縮之語, 則不過爲緘默苟容之徒矣。 若殿下不識其詐而誤恩, 則猶云可矣。 今旣識其詐, 而猶以之慶爲守中樞知事, 季昌藝文典翰, 孟厚濟用僉正, 知事不下於大司憲, 典翰非左於執義。 伏望收其官爵, 永歸田里, 則一國臣民, 莫不仰殿下之至明, 而士氣爲之振起, 臺諫爲之增重矣。
疏入, 召入直承旨柳輊、李崇元, 示之曰: "之慶無所失也。 季昌其問之。"
- 【태백산사고본】 4책 2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7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