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가 악병 원인에 대한 노인들의 견해를 올리니 예조에서 치료하는 절목을 올리다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 이예(李芮)가 아뢰기를,
"이제 하유(下諭)에 따라 순행(巡行)할 때마다 옛 노인을 불러 악병(惡病)의 원인을 방문(訪問)하고 겸하여 소견으로써 조목조목 기록하여 아룁니다.
1. 악병(惡病)은 전에 비하여 경하여졌지만, 그러나 황주(黃州)·봉산(鳳山)·재령(載寧)·문화(文化)·강령(康翎)·옹진(甕津)·장연(長淵)·풍천(豊川)·강음(江陰)·백천(白川)·평산(平山)은 가장 많고, 해주(海州)·연안(延安)·송화(松禾)·장련(長連)·은율(殷栗)·신천(信川)·안악(安岳)·서흥(瑞興)은 그 다음이며, 수안(遂安)·곡산(谷山)·신계(新溪)·토산(兎山)은 약간뿐이고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1. 악병(惡病)의 모든 증세는 전신이 마비되어 자유롭지 못하고, 허리 아래가 차고 습하며, 전간(癲癎)·골증(骨蒸)·종창(腫脹)·퇴산(㿗疝)·청맹(靑盲)·해소(咳嗽)·천만(喘滿)이 많습니다.
1. 악질(惡疾)이 일어난 연유는 사람들이 모두 극성(棘城)187) 의 옛 전장(戰場)으로부터 일어났다 하고, 또는 문화(文化)의 삼성당리(三聖堂里)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말하며, 혹은 악병(惡病)을 앓는 자는 남자가 많고 여자는 적다고 말합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남자는 반드시 기한(飢寒)이 극심한데다 풍상(風霜)을 무릅쓰고 새벽과 밤으로 노고하는 소치(所致)인가 합니다. 처음에 정신이 어지러움을 얻어 점점 청맹(靑盲)이 되었다가 황홀하게 전질(癲疾)을 이루고, 마침내 전시(傳尸)와 골증(骨蒸)이 되어 날로 점점 전염이 됩니다.
1. 송화(松禾)에 사는 72세 된 노인 최득호(崔得浩)의 말로는, ‘악질은 지난 갑인년188) ·을묘년189) 사이에 처음 일어났으며, 무오년190) 에 이르러 배환(裵桓)이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을 때 세종(世宗)께서 하서(下書)하여 악질(惡疾)이 일어난 원인을 물으시니, 배환이 아뢰기를, ‘봉산(鳳山) 사람 전 도승(渡丞) 전영(田榮)이 이르기를, 「악질은 근년에 비롯된 것이 아니고, 속담에 전하기는 예전에 황 천사(黃天使)가 올 때에 황주(黃州)의 월봉사(月鳳寺) 재목을 철거하여 관사(館舍)를 수즙(修葺)하고 또 성황당(城隍堂)의 고목을 벌채하여 흑교(黑橋)를 만든 뒤에 병의 기운이 비로소 싹텄다.」고 하나,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극성(棘城)에서 전망(戰亡)한 해골(骸骨)의 요기(妖氣)로 인하여 근래에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하고, 혹은 태조조(太祖朝)병자년191) ·정축년192) 사이에는 비록 악병(惡病)이 없었어도 극성의 해골을 수습(收拾)하고 수륙 대회(水陸大會)를 베풀었으니, 지금도 수륙(水陸)을 베풀면 악병이 그칠 것입니다.’고 하니, 세종(世宗)께서 전지하기를, ‘어찌 한 절을 헐고 한 나무를 벤 것이 빌미[祟]가 되었겠느냐? 특별히 수륙(水陸)을 성불암(成佛庵)에 베풀고, 또 별도로 의원 이복(李馥)을 보내어 병을 돌보아 치료하게 하라.’고 하였으나, 이 뒤에도 병기(病氣)가 끊어지지 않았었는데 병인년193) ·정묘년194) 기근(飢饉)이 이르른 뒤에는 그 병이 크게 성하였습니다."
하니, 예조(禮曹)에서 이것을 근거하여 아뢰기를,
"악병(惡病)을 돌보고 치료하는 절목(節目)을 상의(商議)하여 조목으로 기록하여 아룁니다.
1. 악병의 모든 증세를 치료하는 약재(藥材)는 경의(京醫)가 벌써 갖고 갔으니, 그 약(藥)을 사용한 허실(虛實)을 관찰사(觀察使)가 검핵(檢覈)하여 보고하게 하소서.
1. 대저(大抵) 악병(惡病)은 기한(飢寒)이 극진하고 풍로(風露)를 무릅쓰기 때문에 쉽게 발작하여 한번 이 병에 걸리면 마침내 죽는 데 이르니, 관찰사(觀察使)가 순행할 때에 여염(閭閻)에 출입하여 기한(飢寒)한 자를 곡진(曲盡)히 구료(救療)하게 하소서.
1. 전의 여제(厲祭)는 단지 12위(位)이었는데, 지난 정통(正統) 9년195) 에는 난산(難産)으로 죽은 자, 벼락에 맞아 죽은 자, 떨어져 죽은 자를 수교(受敎)에 따라 더 기록하여 모두 15위였으나, 그러나 여러 고을이 옛 그대로 단지 12위를 제사하는 것은 미편(未便)하니, 신위판(神位板)을 더 설치하게 하소서.
1. 도내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치병(治病)에 요긴하게 쓰이는 남(藍)·칠(漆)·고삼(苦蔘) 등 향약재(鄕藥材)는 의원(醫員)에게 급부(給付)하여 구료(救療)하고, 이 뒤로는 향약재를 반드시 많은 수를 채취하여 쓰게 하고, 침구(針灸)와 목욕(沐浴) 등의 일도 또한 증세에 따라서 조처하게 하소서.
1. 온정(溫井)은 소재관(所在官)으로 하여금 감고(監考)를 정하여 수치(修治)하고, 병인(病人)을 모아서 별도로 창고의 곡식으로써 인구를 계산하여 우선 제급(題給)하고, 가을에 병인(病人)의 소거관(所居官)에게 수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34면
- 【분류】보건(保健) / 의약-약학(藥學) / 사상-불교(佛敎) / 사법-치안(治安)
- [註 187]극성(棘城) : 황주군 주남면 정방리에 있는 산성(山城). 고려 때 여러 번 전쟁을 치루어 백골이 산야를 덮었으므로, 음산하고 비가 올 때면 여기(厲氣)가 확산하여 황해도 일대에 병이 발생하였다고 하며, 문종 때는 경기 지방까지 여기가 전염하므로 임금이 친히 제문을 지어 조관(朝官)을 보내서 제사를 지낸 일이 있었음.
- [註 188]
갑인년 : 1434 세종 16년.- [註 189]
을묘년 : 1435 세종 17년.- [註 190]
무오년 : 1438 세종 20년.- [註 191]
병자년 : 1396 태조 5년.- [註 192]
정축년 : 1397 태조 6년.- [註 193]
○黃海道觀察使李芮啓: "臣今因下諭, 每巡行, 招古老人, 訪問惡病根因, 兼以所見, 條錄以聞。 一, 惡病, 比前輕歇, 然黃州、鳳山、載寧、文化、康翎、瓮津、長淵、豐川、江陰、白川、平山最多, 海州、延安、松禾、長連、殷栗、信川、安岳、瑞興次之, 遂安、谷山、新溪、兔山僅有而不多見。 一, 惡病諸證, 則全身不遂, 腰下寒濕, 癲癎、骨蒸、腫脹、㿗疝、靑盲、咳嗽、喘滿爲多。 一, 惡疾所起之由, 人皆云: ‘起自棘城古戰場。’ 又言: ‘始於文化 三聖堂里。’ 或言: ‘惡病者, 男多女少。’ 竊料, 男人必是飢寒之極, 觸冒風霜, 早夜勞苦所致。 始得眩暈, 漸成靑盲, 恍惚以致癲疾, 遂爲傳尸、骨蒸, 日漸得染。 一, 松禾居七十二歲老人崔得浩言: ‘惡疾, 去甲寅、乙卯年間始起, 至戊午年, 裵桓爲觀察使, 世宗下書, 問惡疾所起之因, 桓啓: 「鳳山人前渡丞田榮云: 『惡疾非始於近年, 俗傳昔黃天使來時, 撤黃州 月鳳寺材木, 修葺館舍; 且伐城隍堂古木, 造黑橋後, 病氣始萌。』 然人皆言: 『因棘城戰亡骸骨之妖, 近來始作。』 或言: 『太祖朝丙子、丁丑年間, 雖無惡病, 收拾棘城骸骨, 設水陸大會, 今亦設水陸, 則惡病可息。』」 世宗傳曰: 「豈一寺之毁, 一木之伐, 爲之祟也? 特設水陸於成佛庵, 且遣別醫李馥救療。」 此後病氣不絶, 至丙寅、丁卯年飢饉後, 其病大熾。’" 禮曹據此啓: "惡病救療節目商議, 條錄以聞。 一, 惡病諸證治療藥材, 京醫已齎去, 其用藥虛實, 觀察使檢覈啓聞。 一, 大抵惡病, 因飢寒之極, 觸冒風露, 易致發作, 一中此病, 遂至於死, 觀察使巡行時, 出入閭閻, 飢寒者曲盡救療。 一, 前此厲祭, 只十二位, 去正統九年産難死者、震死者、墜死者, 受敎添錄, 合十五位。 然諸邑仍舊只祭十二位, 未便。 令加設神位板。 一, 道內産出治病切用藍、漆、苦蔘等鄕藥材, 給付醫員救療, 今後鄕藥材, 須令多數採取用之, 針、灸、沐浴等事, 亦令隨證爲之。 一, 溫井, 令所在官, 定監考修治, 聚病人, 以別倉米穀, 計口題給, 秋成, 於病人所居官收納。" 從之。
- 【태백산사고본】 4책 1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34면
- 【분류】보건(保健) / 의약-약학(藥學) / 사상-불교(佛敎) / 사법-치안(治安)
- [註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