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에서 사치를 금하는 조목을 기록해 올리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근자에 사치를 금하라는 전지(傳旨)를 받자옵고 삼가 조목을 기록하여 아룁니다.
1. 진상(進上)하는 의대(衣襨)는 11새[升]를 쓰고, 신서(臣庶)의 의복은 마땅히 차등(差等)이 있어야 하니, 이제부터는 사족(士族)의 의복은 10새[升]를 지나지 말게 하되, 철릭(岾裏)은 13폭(幅)을 지나지 말고, 속치마[裏裳]는 12폭을 지나지 말며, 겉치마[外裳]는 13폭을 지나지 말고 초립(草笠)은 30죽(竹)을 지나지 말며, 서인(庶人)의 의복은 8, 9새를 지나지 말되, 철릭(岾裏)은 12폭을 지나지 말고, 속치마는 10폭을 지나지 말며, 겉치마는 12폭을 지나지 말고, 초립(草笠)은 20죽(竹)을 지나지 말게 하소서. 다만 전부터 갖추어진 물건은 갑자기 금단할 수가 없으니, 계사년129) 1월을 한정하여 점차로 고치게 하소서.
1. 말을 탈 때[騎馬時]와 우구(雨具)를 갖추는 외에는 아동(兒童)이나 부녀(婦女)가 단화(短靴)를 신는 것은 한결같이 금지하게 하소서.
1. 서인 부녀(庶人婦女)가 안장 위[鞍上]의 좌자(坐子)에 채단(綵段)을 병용(竝用)하여 다투어 화려하게 함을 힘써, 실로 사치가 참람되니 아울러 금지하게 하소서.
1. 시사(市肆)130) 의 백공(百工)이 매우 교묘[淫巧]함을 경쟁하여 조수(鳥獸)와 인물(人物) 같은 유(類)를 조각(彫刻)하고 구워 내어,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기구를 만들어서, 부녀와 아동을 유인하여 간교하게 이득을 보고 파는데, 실용(實用)에는 보탬이 없고, 점점 부화하고 사치하는 습속만 열리니, 엄하게 더 금단(禁斷)하게 하소서.
1. 《속육전(續六典)》의 혼인(婚姻) 조목에, ‘금욕(衿褥)131) 은 모두 면주(綿紬)·면포(綿布)를 쓰고, 능금 단자(綾錦段子)는 쓸 수가 없다. 신부(新婦)의 의식(衣飾)은 집에 있고 없는 것에 알맞게 하고, 반드시 사라(紗羅)·능단(綾段)을 쓰지 않도록 한다. 혼석(昏夕)의 배석(拜席)은 계담(罽毯)132) 을 베풀 수 없으며, 단지 단석(單席)만을 베푼다. 신부가 처음 구고(舅姑)를 뵙는 날의 찬품(饌品)은 7기(七器)를 쓰고, 유모(乳母) 1, 시비(侍婢) 2, 노자(奴子)는 10명을 지나지 못한다.’ 하였는데, 근자에는 혼인(婚姻)의 제도가 지나쳐, 납채(納綵)를 하는 자는 반드시 채단(綵段)을 쓰고, 혼석(婚夕)에는 잔치를 베풀어 빈객(賓客)을 대접하며, 서가(壻家)133) 에서는 채단(綵段)·금은 기명(金銀器皿)을 함롱(函籠)에 담아서 먼저 가져가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아니하면 사람들이 모두 웃고 업신여기며, 구고(舅姑)를 뵙는 날은 연찬(宴饌)이 몇십품[幾十品]이나 되고, 지아비의 집[夫家]에서는 많은 포백(布帛)으로 갚으니, 다투어 화려하고 사치함을 숭상하여 남보다 이기고자 힘씁니다. 이 때문에 가난하여 판비(辦備)할 수가 없어 혼인(婚姻)의 시기를 잃는 자가 있으니, 금후로는 한결같이 《속육전》의 옛 제도에 의하여 금단(禁斷)하되, 만일 당상관(堂上官)의 여자(女子)는 시비(侍婢) 4명, 노자(奴子)는 14명을 넘지 못하게 하소서.
1. 《속육전(續六典)》의 공사 연탁(公私宴卓)에는 세 줄[三行]을 지나지 말고, 유밀과(油蜜果) 쓰는 것을 금지하며, 사대부(士大夫)의 혼례(婚禮)와 신부(新婦)가 구고(舅姑)를 뵙는 것도 또한 같다고 하였는데, 이제 사대부(士大夫) 집의 연품(宴品)이 제도에 지나쳐, 한 가지 맛[一味]을 베풀 때마다 아울러 별찬(別饌) 3, 4기(器)를 베풀고, 혹은 개아(蓋兒)134) 까지 사용하여 참람함이 비할 데 없이 심하니,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속전(續典)》의 구제(舊制)를 따라 시행(施行)하고, 어기는 자는 통렬히 징치하소서. 또 수령(守令)이 사객(使客)을 위연(慰宴)하고, 분묘(墳墓)의 요전(澆奠)135) 에 거의가 유밀과(油蜜果)를 쓰니, 엄히 더 금단(禁斷)하고, 헌수(獻壽)·혼인(婚姻)·제향(祭享) 같은 것은 《대전(大典)》에 의하여 허용하게 하소서.
1. 향촌(鄕村)의 부민(富民)은 상제(喪祭)를 성대하게 판비하여, 유밀과(油蜜果)를 유분(鍮盆)이나 큰 쟁반[大盤]에 담는 데에 이르고, 장사가 나가는 밤에는 주찬(酒饌)을 후하게 베풀어, 빈객(賓客)을 모아 풍악을 울리며, 주검을 즐겁게 하는데, 만약 기일을 좇아 판비하여 베풀 수가 없으면, 인하여 여러 해를 장사지내지 못하니, 풍교(風敎)를 상(傷)하고 교화(敎化)를 패(敗)하는 것이 이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제도를 어기는 자는 통렬히 징치하게 하소서.
1. 근래에 서인(庶人)의 집에서는 마시기를 숭상하여 절도가 없습니다. 심지어 의복(衣服)을 빨래한다든가 재계(齋戒)하고 제사(祭祀)하는 유(類)에도 겨우 이문(里門)136) 만 나가면 이웃 마을[隣里]을 불러 주찬(酒饌)을 가지고 길 위에서 맞이하여, 마냥 취하도록 마시고 도로(道路)에서 파사(婆娑)137) 하며, 남녀가 서로 희학(戲謔)하여 지극히 음탕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금후로는 20인 이상이 떼 지어 마시는 자는 엄하게 금단(禁斷)을 더하고, 또 사족(士族)의 부녀(婦女)가 혹 영전(迎餞)을 빙자하여 산간(山間)의 계곡(溪谷)에서 유연(遊宴)하고, 취한 뒤에 부축을 받으며 돌아와 방탕함이 막심(莫甚)하니, 또한 규찰(糾察)을 더하여 금법을 범한 자는 실행(失行)한 것으로 논죄하게 하소서.
1. 성균관(成均館)은 풍화(風化)의 근원[源]이니, 마땅히 검소(儉素)한 것을 돈독히 숭상하고, 삼가 수정(修整)138) 함을 신칙하여야 합니다. 옛적에 있던 유생(儒生)은 모두 마혜(麻鞋)139) 를 신고, 기마(騎馬)가 있는 자가 없었는데, 근래에는 거의 모두가 살찐 말[肥馬]를 타고 아름다운 옷[美服]을 입고 있으며, 목화(木靴)나 가죽신[鞋]에 이르러서도 사대부(士大夫)와 다름이 없고, 한 사람도 책을 끼고서 다니는 자가 없습니다. 사속(士俗)이 옛과 같지 않으니, 직분이 이와 같이 된 연유를 학관(學官)으로 하여금 검찰하게 하여, 완악하게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는 학교에서 내치는 한편 과거도 중지시키게 하소서.
1. 부상(富商)과 대고(大賈)가 호부(豪富)로써 높음을 다투어, 거처하는 집에 혹은 사호창(紗糊窓)을 사용하고, 의복은 사라 능단(紗羅綾段)을 입으며, 용봉 채석(龍鳳彩席)이나 만화채석(滿花彩席)을 포진(鋪陳)하고, 기용(器用)140) 이나 식물(食物)은 참람되게 궁금(宮禁)을 모방하였으니, 금후로는 법으로 금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 자는 중한 죄로 논하여 가산을 적몰(籍沒)하소서.
1. 서인(庶人)의 남자와 부인[男婦]이 초피(貂皮)·청서피(靑鼠皮)를 사용하여 옷을 만들거나 이엄(耳掩)을 한 자는 아울러 금단하게 하되, 다만 여인(女人)은 서피(鼠皮)만은 금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27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의생활-상복(常服) / 풍속-예속(禮俗) / 풍속-풍속(風俗) / 식생활(食生活)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129]계사년 : 1473 성종 4년.
- [註 130]
시사(市肆) : 시전(市廛).- [註 131]
금욕(衿褥) : 이불과 요.- [註 132]
계담(罽毯) : 털로 짠 방석.- [註 133]
서가(壻家) : 사위 집.- [註 134]
개아(蓋兒) : 밥 그릇이나 과일 그릇의 뚜껑.- [註 135]
요전(澆奠) : 산소에 차려 놓는 제물.- [註 136]
이문(里門) : 마을 입구에 세운 문.- [註 137]
파사(婆娑) : 춤추는 소매가 날리는 모양.- [註 138]
○禮曹啓: "頃承傳旨, 禁奢侈節目, 謹條錄以啓。 一。 進上衣襨, 用十一升; 臣庶之服, 宜有差等。 自今士族衣服毋過十升, 帖裏毋過十三幅, 裏裳毋過十二幅, 外裳毋過十三幅, 草笠毋過三十竹; 庶人衣服毋過八、九升, 帖裏毋過十二幅, 裏裳毋過十幅, 外裳毋過十二幅, 草笠毋過二十竹。 但其曾備之物, 不可遽禁, 限癸巳年正月, 使之漸改。 一。 騎馬時及雨具外, 兒童、婦女着短靴者, 一禁。 一。 庶人婦女鞍上坐子, 竝用綵段, 爭務華美, 實爲奢僭, 竝禁。 一。 市肆、百工競爲淫巧, 如鳥獸、人物之類雕刻、陶鑄, 以爲戲玩之具, 誑誘婦女、兒童, 以售奸利, 無補實用, 漸啓浮侈之習, 嚴加禁斷。 一。 《續六典》婚姻條: ‘衿褥皆用綿紬、緜布, 毋得用綾錦段子。 新婦衣飾, 稱家有無, 不必用紗羅、綾段。 昏夕拜席, 勿設罽毯, 只設單席。 新婦初謁舅姑之日, 饌品用七器, 乳母一、侍婢二、奴子不過十名。’ 近者婚姻過制, 納綵者必用綵段, 婚夕設宴, 以待賓客。 壻家用綵段、金銀器皿, 盛之函籠前行, 否則人皆笑侮。 謁舅姑之日, 宴饌幾至數十品, 夫家多以布帛酬之, 競尙華侈, 務欲勝人。 以此貧不能辦, 婚姻失時者有之。 今後一依《續六典》舊制禁斷, 如堂上官女子, 侍婢四名、奴子不過十四名。 一。 《續六典》: ‘公私宴卓, 毋過三行, 禁用油蜜果。 士大夫婚禮及新婦謁舅姑亦同。’ 今士大夫家宴品過制, 每設一味, 幷設別饌三、四器, 或用蓋兒, 僭擬莫甚, 不可不禁。 請依《續典》舊制施行, 違者痛懲。 且守令使客慰宴、墳墓澆奠, 率用油蜜果, 嚴加禁斷, 若獻壽、婚姻、祭享則依《大典》許用之。 一。 鄕村富民喪祭盛辦, 油蜜果至盛以鍮盆大盤, 出葬之夜, 厚設酒饌, 聚會賓客, 作樂娛屍, 若不能趁期辦設, 因以累年不葬, 傷風、敗敎莫甚於此。 自今踰制者痛懲。 一。 比來, 庶人之家崇飮無道, 至如衣服澣灌, 齋、祭之類, 纔出里門, 皆呼召隣里, 携酒、饌, 迎于道上, 酣飮、醉飽, 婆娑道路, 男女相謔, 至爲淫蕩。 今後二十人以上群飮者, 嚴加禁斷。 且士族婦女, 或憑迎餞, 遊宴山間、水曲, 扶醉而還, 蕩泆莫甚, 亦加糾禁, 犯禁者以失行論。 一。 成均館, 風化之源, 所宜敦尙儉素, 謹勑修整。 在昔儒生皆着麻鞋, 無有騎馬者, 近來率皆乘肥馬、衣美服, 至於靴鞋, 無異士大夫, 未有一人挾冊而行者。 士俗不古, 職此之由, 令學官檢察, 頑不率敎者, 黜學停擧。 一。 富商大賈, 以豪富爭高, 所居第舍, 或用紗糊窓, 衣服用紗羅、綾段, 鋪陳用龍鳳、滿花彩席, 器用食物, 僭擬宮禁。 今後不從法禁者, 重論籍沒。 一。 庶人男婦用貂皮、靑鼠皮爲衣爲耳掩者竝禁之, 但女人勿禁鼠皮。" 從之。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27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의생활-상복(常服) / 풍속-예속(禮俗) / 풍속-풍속(風俗) / 식생활(食生活)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