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서 김지경이 원상 김국광의 파직을 청했으나 듣지 않고 천변을 염려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대사헌(大司憲) 김지경(金之慶)이 아뢰기를,
"전일에 김국광(金國光)의 원상(院相)·영경연(領經筵)을 파(罷)하기를 청하였으나, 유윤(兪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김국광은 한갖 탐오(貪汚)할 뿐이 아니옵고 선왕(先王)을 기망(欺罔)하였으니,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세조조(世祖朝)에 신(臣)이 경기 찰방(京畿察訪)으로 있었을 때에, 산예역(狻猊驛)의 조잔(彫殘)함은 더욱 심하여, 관리로서는 역사를 감당하지 못하겠기에, 신이 조역인(助役人)을 설치할 것을 청하였더니, 명하여 개성부인(開城府人)으로써 조역(助役)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 부(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김국광은 병조 참판(兵曹參判)이 되었는데, 부인(富人)과 인연이 되어 조역을 면제하여 줄 것을 청하는 장고(狀告)가 병조(兵曹)에 5, 6차례나 이르렀으나, 겸판서(兼判書) 한명회(韓明澮)와 판서(判書) 윤자운(尹子雲)이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3년 뒤에 한명회와 윤자운은 모두 체임되었고, 김국광이 윤자운을 대신하여 판서(判書)가 되고서는, 산예(狻猊)는 부성(富盛)하다고 거짓 아뢰어 조역(助役)을 혁파(革罷)하게 하였으니, 어찌 3년 사이에 조잔하였던 것이 갑자기 변하여 부성하여질 수 있겠습니까? 그 뒤에 잔폐(殘弊)하기가 옛과 같아서 다시 조역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로써 보면 김국광이 선왕을 기망한 그 죄도 또한 중(重)하오니, 청컨대 빨리 원상·영경연을 파(罷)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왕(先王)께서 죄주지 않은 것을 어찌 추론(追論)할 수 있느냐?"
하였다. 김지경(金之慶)이 말하기를,
"옛날에 요(堯)임금은 사흉(四凶)796) 을 죄주지 않았어도 순(舜)임금이 죄주었으니, 과연 죄가 있다면 어찌 선왕께서 죄주지 않았다 하여 놓아주고 치죄(治罪)하지 않음이 옳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영사(領事) 신숙주(申叔舟)·윤자운(尹子雲)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어떻게 할까?"
하니, 신숙주가 아뢰기를,
"이미 전교(傳敎)가 계셨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간관(諫官)의 말은 진실로 마땅히 좇아야 하나, 이것은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김지경(金之慶)이 또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이조 참의(吏曹參議)가 되었을 때, 제도 관찰사(諸道觀察使)의 전최(殿最)797) 에는 한 고을도 하(下)에 해당하는 자가 없어 신은 즉시 국문(鞫問)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제 추등(秋等)·동등(冬等)에 대한 전최는 아직 계달(啓達)하지 아니하였사오나, 만약 또 전일과 같은 자가 있으면, 청컨대 규찰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령(守令)이 어질면 최(最)요, 어질지 못하면 전(殿)이니, 전(殿)과 최(最)는 오직 관찰사(觀察使)가 심사할 뿐이다. 어찌 멀리서 남의 심정을 헤아림이 옳겠느냐?"
하고, 신숙주(申叔舟)·윤자운(尹子雲)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지금 동월(冬月)을 당하여 기온이 덥고 또 비가 내리니, 실로 내가 부덕(否德)한 탓이다. 어떻게 수성(修省)해야 하는지 그 요점[要]을 모르겠다. 물리쳐야 할 폐단을 물리치지 못하고, 행해야 할 법을 행하지 못함이 있어서 그러함이 아니겠는가?"
하니, 신숙주가 아뢰기를,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대전(大典)》을 상정(詳定)하고, 이제 시험하여 쓰이고 있으니, 폐(弊)가 있는 법은 다 개정하고, 미비(未備)한 법[典]은 다 거행하게 하소서. 저번에는 천변(天變)으로 인하여 주상(主上)께서 경계하고 두렵게 여기시어 구언(求言)하는 교지를 내려, 제도(諸道)의 진계(陳啓)를 기다린 연후에 가부(可否)를 의논하였습니다마는, 이제 겨울에 비가 내리고 기온이 더운 것은 참으로 신이 직무를 이행하지 못한 데에 연유함이니, 청컨대 신의 직임을 파(罷)하여 천견(天譴)에 보답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허물은 실로 내게 있으니 공구(恐懼)하는 마음 참으로 깊다."
하였다. 동지사(同知事) 정자영(鄭自英)이 아뢰기를,
"신이 생각하건대, 지금 팔도(八道) 안에 어찌 다 못된 폐단이 없다고 하겠으며, 수령(守令) 가운데에 어찌 다 탐포(貪暴)한 자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못된 병폐가 많은데도 수령이 구원하지 못하고, 탐포함이 많은데도 관찰사(觀察使)가 핵실하지 못하여 음양(陰陽)이 조화[和]를 잃었으니, 연유가 있어 그런 것입니다. 청컨대 관찰사를 규찰하여 수령을 바루게 하면 음양이 자연히 조화할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6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1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
○辛亥/御經筵。 講訖, 大司憲金之慶啓曰: "前日請罷金國光院相、經筵, 未蒙兪允。 國光非徒貪汚而已, 欺罔先王, 其罪非輕。 在世祖朝, 臣爲京畿察訪, 狻猊驛彫殘尤甚, 吏不堪役。 臣請設助役人, 命以開城府人助役, 其中有富人焉。 時國光爲兵曹參判, 富人因緣, 請免助役, 狀告兵曹至五、六度, 兼判書韓明澮、判書尹子雲沮之。 後三年, 明澮、子雲皆遞, 國光代子雲爲判書, 誣啓以狻猊已富盛, 革罷助役, 安有三年之間, 彫殘遽變爲富盛耶? 其後殘敝如舊, 復設助役。 以此觀之, 則國光欺罔先王, 其罪亦重。 請亟罷院相、經筵。" 上曰: "先王旣不罪之, 豈可追論?" 之慶曰: "昔堯不罪四凶, 而舜罪之。 果有罪焉, 則豈可以先王之不罪, 而釋不治乎?" 上顧謂領事申叔舟、尹子雲曰: "何如?" 叔舟啓曰: "已有傳敎。" 上曰: "諫官之言, 固當從之, 此則不可聽也。" 之慶又啓曰: "臣嘗爲吏曹參議, 諸道觀察使殿最, 無一邑居下者, 臣卽啓請鞫之。 今秋冬等殿最, 時未啓達, 若又有如前日者, 則請糾之。" 上曰: "守令賢則最, 不賢則殿。 殿與最, 惟觀察使所爲耳。 豈可遙度乎?" 顧謂叔舟、子雲曰: "今當冬月, 氣暖且雨, 實予否德。 未知修省之要。 無 奈有可祛之弊, 未祛; 可行之法, 未行乎?" 叔舟啓曰: "世祖大王詳定《大典》, 今試用之。 有弊之法, 盡改; 未備之典, 盡擧。 頃因天變, 主上儆懼, 下求言之敎, 待諸道陳啓, 然後議可否耳。 今此冬雨暖氣, 實由臣之失職, 請罷臣職, 以答天譴。" 上曰: "咎實在予, 恐懼實深。" 同知事鄭自英啓曰: "臣以爲, 今八道之內, 豈盡無弊瘼, 守令之中, 豈盡無貪暴? 弊瘼多, 而守令不能救, 貪暴多, 而觀察使不能劾, 陰陽失和, 有由然矣。 請糾觀察使, 以正守令, 則陰陽自和矣。"
-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6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1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법-탄핵(彈劾)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