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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3권, 성종 2년 11월 11일 기유 3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야대에서 시강관 김유 등으로부터 백성들의 곤경과 변방 수비의 폐단을 듣다

야대(夜對)에 나아갔다. 임금이 시강관(侍講官) 김유(金紐)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경기(京畿)의 재상 경차관(災傷敬差官)이 되었을 때, 굶주리는 백성은 있지 않았던가?"

하니, 김유가 대답하기를,

"전년에 경기(京畿)는 한해(旱害)가 심하였으나, 성상(聖上)의 근휼(勤恤)하시는 어진 덕[仁德]을 힘입어 백성이 굶주려 죽은 자는 없었습니다. 이제 또 명하여 장빙군(藏氷軍)을 제(除)하고 공물(貢物)을 양감(量減)하게 하시니, 백성이 그 혜택을 입어, 현재는 굶주리는 백성이 없으나, 그러나 해마다 흉년이 들은 나머지에 또 대창(大倉)의 역사[役]가 있으니, 오는 봄에는 굶주려 죽는 자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경기좌도(京畿左道)는 토지가 비록 하삼도(下三道)787) 만은 못하나, 수전(水田)을 경작하는 백성이 많으니, 약간은 안업(安業)할 수 있습니다만, 경기우도(京畿右道)는 모두가 자갈이 많은 메마른 곳이어서 해마다 풍년이 들지 못한 데다 혹 마을 전체가 텅 비어 인연(人煙)이 매우 적은데도 그 부역(賦役)은 다른 도(道)의 갑절이 되는 형편이니, 무휼(撫恤)하는 정사[政]는 의당 제로(諸路)와 다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원컨대 유의(留意)하소서. 또 《대전(大典)》에 이르기를, ‘속전(續田)은 경작하는 것을 따라 세금을 거둔다.’ 하였은즉, 정전(正田)은 비록 흉년이 들었더라도 마땅히 예(例)에 따라 그 세금을 거두어야 하나, 산 위와 산 중턱은 해마다 경작할 만한 땅이 아닌데도 모두 정전(正田)이라 이름하고, 비록 풀이 우거지고 나무가 무성하였더라도 또한 모두 세금을 거두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대전》에 비록 이르기를, ‘20년마다 양전(量田)하여 개정한다.’ 하였더라도 이 같은 토지는 이제 모름지기 개량(改量)하시어 백성의 억울함을 풀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근일에 천둥[雷霆]한 것을 그대도 또한 들었는가? 이것은 모두 나의 부덕(否德)한 탓이므로 깊이 경계하고 두려운 마음이 쓰인다. 그대들은 직임이 근시(近侍)에 있어 다른 조관(朝官)과 비할 것이 아니니, 수령(守令)과 조관(朝官)의 탐오(貪汚)한 자를 모두 다 말하고, 유일(遺逸)788) 한 어진이도 또한 천거하도록 하라."

하니, 김유가 말하기를,

"겨울의 천둥은 음양(陰陽)의 조화가 고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러나 천심(天心)은 인군(人君)을 인애(仁愛)789) 하니, 인군이 만약 하늘을 공경하여 덕(德)을 닦으면, 또한 재앙이 변하여 상서로움이 될 것입니다. 성상께서 염려하심이 이에 이르시니, 신은 경행(慶幸)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마는, 수령의 탐오(貪汚)한 자를 신이 어찌 다 알겠습니까? 자주 대관(臺官)을 보내어 백성의 질고(疾苦)를 묻고, 수령의 탐포(貪暴)한 것을 살피게 하시면 이익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또 듣건대. 기현(畿縣)790) 은 선군(船軍)이 혹 궐(闕)하여도 보충하지 않고, 혹 보충하였어도 부정(不精)하다고 합니다. 이제 비록 태평[昇平]이라 하더라도 만약 적(敵)의 변란이 있게 되면 장차 무엇으로써 방어하겠습니까?"

하고, 검토관(檢討官) 채수(蔡壽)가 말하기를,

"신이 강원도 선군(江原道船軍)을 보오니, 비록 수효는 백(百)이라고 일컬어도 적을 방어할 만한 자[戍禦者]는 수인(數人)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자에 배맹후(裵孟厚)가 경상도 선군(慶尙道船軍)을 검찰하여 적발(摘發)한 것이 많이 있었는데도 강원도는 그렇지 못하니, 청컨대 불시(不時)에 조관(朝官)을 보내어 검찰하게 하되, 하나를 징계함으로써 백을 경계하여 제비(隄備)를 삼가도록 하소서."

하고, 김유(金紐)가 또 아뢰기를,

"국가(國家)는 열성(列聖)791) 이 서로 계승하고 위덕(威德)을 먼 지방까지 입게 하여 변경(邊境)의 근심이 오래도록 없었으나, 그러나 왜인(倭人)이 처음에 판매(販賣)로 인하여 왔다가 마침내는 삼포(三浦)에 거주하게 되어 이제 그 호수가 거의 1천여 호에 이르니, 다시 10여 년이 지난다면 그 근심은 장차 말할 수 없이 될 것인데도, 제진(諸鎭)의 만호(萬戶)는 군사를 놓아 재물이나 징수하고, 국가에서도 또한 혹 다른 일에 사역하고 있으니, 이것은 변경을 방어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만호(萬戶)를 다 가려 뽑을 수는 없으나, 그러나 요해(要害)가 되는 곳만은 사리를 알고 청렴 근신한 선비를 골라 쓰시고 자주 대관(臺官)을 보내어 허실(虛實)을 규찰(糾察)하게 하면 거의 잘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호(萬戶)는 진실로 적격자가 아니면 반드시 이러한 실책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0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구휼(救恤)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역(役) / 재정-전세(田稅) / 군사-군정(軍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註 787]
    하삼도(下三道) : 충청도·전라도·경상도.
  • [註 788]
    유일(遺逸) : 세상의 버림을 받음.
  • [註 789]
    인애(仁愛) : 어진 마음으로 사랑함.
  • [註 790]
    기현(畿縣) : 경기(京畿)의 고을.
  • [註 791]
    열성(列聖) : 역대의 임금.

○御夜對。 上謂侍講官金紐曰: "爾爲京畿災傷敬差官, 無乃有飢民乎?" 對曰: "前年京畿旱甚, 賴聖上勤恤之仁, 民無餓殍。 今又命除藏氷軍, 量減貢物, 民受其賜, 時無飢民。 然連歲凶荒之餘, 又有大倉之役, 來春恐有餓殍者。 京畿左道土地, 雖不如下三道, 多水田, 民稍安業; 右道, 則率皆磽薄, 連歲不登, 或闔里空虛, 人烟鮮少, 而其賦役倍他道, 撫恤之政, 宜異諸路。 願留意。 又《大典》云: ‘續田, 隨耕收稅。’ 則正田雖荒, 當例收其稅矣。 山上、山腰, 非年年可耕之地, 而皆號正田, 雖草荒木茂, 亦皆收稅, 豈不冤哉? 《大典》雖云: ‘二十年, 改量田。’ 此等田, 今須改量, 以釋民冤。" 上曰: "近日雷霆, 爾亦聞之乎? 是皆予否德, 深用警懼。 爾等職在近侍, 非他朝官之比。 守令及朝官貪汚者, 悉皆言之; 遺逸之賢, 亦皆薦之。" 曰: "冬月雷霆, 陰陽不順故耳。 然天心仁愛人君, 人君若敬天修德, 則亦可變災爲祥矣。 上念至此, 臣不勝慶幸。 守令貪汚者, 臣豈能盡知? 數遣臺官, 問民疾苦, 察守令貪暴, 則不爲無益矣。 且聞畿縣船軍或闕而不補, 或補而不精。 今雖昇平, 若有敵變, 將何以禦之?" 檢討官蔡壽曰: "臣觀江原道船軍, 雖稱數百, 而戍禦者不過數人。 近者裵孟厚慶尙道船軍, 多有摘發, 而江原道則不然。 請不時遣朝官檢察, 懲一警百, 使謹隄備。" 又啓曰: "國家列聖相承, 威德遠被, 久無邊患, 然倭人初因販賣而來, 遂居三浦, 今其戶幾至千餘, 更經十餘年, 其患將有不可言者, 而諸鎭萬戶, 縱軍徵貨, 國家亦或役於他事, 非禦邊之道。 萬戶不可盡選, 然要害之處, 擇用識理、廉謹之士, 數遣臺臣, 糾察虛實, 庶幾得之。" 上曰: "萬戶, 苟非其人, 必有是失。"


  •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0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구휼(救恤)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역(役) / 재정-전세(田稅) / 군사-군정(軍政) / 군사-지방군(地方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