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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2권, 성종 2년 윤9월 2일 신축 2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김겸광·이영은의 첩 다툼에 대한 처벌을 간하는 대사헌 한치형 등의 상소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한치형(韓致亨) 등이 상소하기를,

"먼젓 날 예조 판서 김겸광(金謙光)이영은(李永垠)과 약혼한 첩을 요구하여 몰래 장가들어 그 여자를 데리고 갔는데, 이영은이 빼앗기를 꾀하여 그 여자의 주인에게 부탁하여 김겸광의 집에서 나오기를 재촉하게 하였고, 김겸광이 허락하지 아니하자 이영은이 고장(告狀)을 손수 써서 그 주인에게 주어, 와서 고소하게 하였습니다. 신 등이 그 고장을 상고하여 물으니, 그 다투는 여자는 철비(哲非)라고 하는 자인데, 바로 김은(金殷)의 천첩(賤妾)의 딸이었습니다. 신 등은 의심하기를, 한 천한 여자를 가지고 두 재상이 서로 다투니 이는 반드시 자색(姿色)이 있는 자일 것이라 여겼으나, 그 어미 약덕(若德)의 말을 들으면, 그 여자는 별로 자색은 없고 다만 그 전민(田民)649) 이 조금 넉넉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제야 두 사람의 다툼은 오로지 재리(財利)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아! 사대부(士大夫)의 풍기(風紀)가 이와 같으니 조정(朝廷)이 무슨 수로 바르겠습니까? 신 등은 그윽이 스스로 한탄해 합니다.

인하여 그 혼인을 도모한 절차를 갖추어 따져 물으니 이러하였습니다. 처음 철비가 그 아비에게서 자라 경상도 성주(星州)에 있었는데, 이영은이 오래 전에 이미 글을 통하며 말을 맺었고, 그 어미가 서울에 있는데 이영은이 또한 더불어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김겸광이 또한 마음이 있어서 두 사람이 모두 몰래 도모하다가, 이영은이 장차 휴가를 맡아 가서 그 사사로운 뜻을 이루려고 하니, 김겸광이 이를 알고 바로 철비를 불러서 재촉해 길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 김겸광이 다른 곳에 숨기고 얼마 아니되어 그 어미의 집을 몰래 옮겨서 장가들어 데리고 갔는데, 비록 그 주인이 돌아오기를 재촉했으나 나가 보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무릇 빼앗길까봐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는 김겸광의 마음씀이 간사함이 심한 것입니다. 이영은김겸광이 이미 장가든 뒤에 가만히 빼앗을 꾀를 생각하여 혹은 사람을 시켜서 그 어미 집을 엿보기도 하고, 혹은 친히 가서 그 주인에게 청탁하기도 하면서, ‘김겸광이 비록 이미 장가들었을지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만약 빼앗아 나를 주면 내가 마땅히 장가들겠다.’고까지 하였으나, 그 주인이 빼앗을 수 없게 되자 또 손수 고장(告狀)을 써서 고소하게 하여 기어이 차지하려고 하였는데, 마침내 그 욕심을 이룩하지 못하자 조정에 말을 퍼뜨리고 동료 친구에게 글을 보내어 김겸광의 악함을 드러내었으니, 이는 이영은이 탐하고 간사하며 염치없음이 심한 것입니다.

신 등이 이 두 사람의 정상(情狀)을 자세히 알아내고 장차 성상에게 전해 아뢰어서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니, 김겸광이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감히 글로 꾸며서 상서(上書)하여 은혜받기를 바라고, 전하께서도 또 우대해 용서함을 내려 주시어서 신 등을 불러 모두 내버려두기를 명하셨습니다. 신 등은 이르건대, 인주(人主)는 상벌(賞罰)의 권세를 잡아 아랫사람을 제어하는 데에 이목(耳目)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여 이에 유사(有司)에 붙였으니, 유사는 인주의 이목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불법(不法)이 있어서 유사가 바야흐로 거핵(擧劾)하여 성상께 아뢰려고 하는데 탄핵을 입은 자가 감히 글을 올려 스스로 말을 벌여 모람되게 은지(恩旨)를 바라니, 어찌 다만 유사를 멸시하는 것이겠습니까? 인주의 위엄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신 등은 여러 번 천총(天聰)을 어지럽히어 그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니, 그윽이 스스로 한스러워합니다. 예전에 성탕(成湯)삼풍 십건(三風十愆)650) 으로 벼슬자리에 있는 이에게 경계하기를, ‘감히 재물과 여색(女色)에 따름이 있으면 이를 음풍(淫風)이라고 이른다. 경사(卿士)가 몸에 한 가지만 지니고 있어도 그 집이 반드시 망할 것이니, 신하가 이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그 형벌을 묵형(墨刑)으로 하겠다.’라고 하였으니, 경사로서 재물과 여색을 탐하여 음풍을 범하면 예로부터 성왕(聖王)의 용서하는 바가 아니며, 유사(有司)가 바로잡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용서해 둠이 마땅하겠으며, 신 등도 또한 어찌 바로잡지 아니하는 형벌에 나아가기를 달게 여기겠습니까?

전하께서 신 등에게 전교하시기를, ‘저희들 가운데서 첩을 다투는데, 국가에 관한 것이 아니니 논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시니, 신 등의 의혹이 더욱 심합니다. 대저 서울은 사방(四方)의 근본이고, 조정은 백관(百官)의 법이며, 재상은 사대부(士大夫)의 표준입니다. 처첩(妻妾)을 빼앗기를 다투는 것은 오랑캐[夷狄]의 풍속인데, 사방의 근본, 조정의 표적, 사대부의 모범이 되는 지위에 있으면서 오랑캐의 행동을 하니, 전하께서 그 하는 바에 맡겨 방검(防檢)을 가하지 아니하면 신 등은 바로 온 나라 사람이 기탄하는 바가 없어, 서로 이끌어 오랑캐와 금수의 행동을 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찌 염려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또 전교하시기를, ‘김겸광이영은은 모두 훈신(勳臣)인데 무슨 죄에 처하려고 하는가?’ 하였으나, 신 등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저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이 마음에 있는 데에서 나온 것도 있고 마음에 없는 데에서 나온 것도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데에서 나온 것은 인주(人主)가 그 공(功)으로써 사정을 두는 것도 오히려 가하겠거니와, 만약 심술이 바르지 못한 데에 근거하고 이욕(利慾)을 탐하는 데에서 발하여 악함을 알면서 감히 기탄하는 바가 없는 자라면 어찌 공(功)으로 죄를 용서하는 데 두겠습니까? 만일 그 정범(情犯)651) 을 깊이 연구하지 아니하고 일체 공으로 죄를 용서한다면 신 등은 심히 두렵건대, 나라의 법이 훈귀(勳貴)652) 에게 행하지 못하여 풍속이 바로잡힐 날이 마침내 없을까 합니다. 동자(董子)653) 가 말하기를, ‘인군(人君)이 조정을 바르게 하여 백관(百官)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바르게 하여 만백성을 바르게 한다.’ 하였으니, 조정이 바르지 아니하고 사방(四方)의 만백성이 바르게 되는 것은 있지 아니하며, 또한 대신이 바르지 아니하고 조정이 바르게 될 수는 없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음풍(淫風)을 경계하고 오습(汚習)을 내치며, 김겸광·이영은의 죄를 엄하게 다스려서 조정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바르게 하며, 사방을 바르게 하고 만백성을 바르게 한다면 국가가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2권 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0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註 649]
    전민(田民) : 농토와 노비.
  • [註 650]
    삼풍 십건(三風十愆) : 《서경(書經)》 이훈(伊訓)에 보면, 궁에서 항상 춤추고 방[室]에서 취하여 노래부르는 것을 무풍(巫風)이라 하고, 재물과 여색만 따르고 항상 놀며 사냥만 하는 것을 음풍(淫風)이라 하고, 성인(聖人)의 말을 무시하고 충직(忠直)한 말을 거슬리며 기덕(耆德)을 멀리 하고 완동(頑童)과 벗하는 것을 난풍(亂風)이라 하였는데, 이것을 삼풍 십건(三風十愆), 곧 세 가지 바람과 열 가지 허물이라 하였음.
  • [註 651]
    정범(情犯) : 범죄의 동기.
  • [註 652]
    훈귀(勳貴) : 훈신과 귀척(貴戚).
  • [註 653]
    동자(董子) : 한(漢)나라 동중서(董仲舒).

○司憲府大司憲韓致亨等上疏曰:

日者, 禮曹判書金謙光李永垠約婚之妾潛娶之, 以其女歸, 永垠謀奪之, 囑其女之主, 責出於謙光家。 謙光不許, 永垠手書告狀授其主, 使來訴。 臣等按其狀, 問之其所爭之女, 曰哲非者, 乃金殷賤妾女子也。 臣等疑一賤女而兩宰相爭之, 是必有姿色者也。 及聞其母若德言, 則其女別無姿色, 但其田、民稍足耳。 乃知兩人之爭, 專以財利也。 嗚呼! 士大夫之風如此, 朝廷曷由正乎? 臣等竊自憾嘆。 因具詰其圖婚節次, 初哲非育於其父, 在慶尙道 星州, 永垠久已通書結言, 其母在京師, 永垠亦與之有約。 厥後謙光亦有心焉, 二人皆潛圖之, 永垠將告假而去, 以濟其私, 謙光知之, 徑招哲非, 促使登途。 及到京, 謙光匿之于他所, 未幾潛移其母家, 娶之帶去, 雖其主責還, 不許出見, 蓋恐見奪也。 此則謙光用心, 其譎甚矣。 永垠, 於謙光已娶之後, 爲竊奪之計, 或使人窺覘於母家, 或親往請囑於其主, 至云: "謙光雖已娶何害? 若奪以給我, 我當娶之。" 其主旣不能奪, 則又手書告狀, 使訴之, 期於必得。 終不遂其欲, 則乃揚言於朝廷, 馳書於僚友, 以彰謙光之惡。 此則永垠貪邪、無恥, 甚矣。 臣等悉此兩人情狀, 將以轉聞于上, 繩之以法, 謙光知其不免也。 乃敢飾非文過, 上書希恩, 殿下且賜優容, 召臣等, 命皆置之。 臣等謂人主操賞、罰之權, 以馭下, 而患耳目之不逮也, 於是乎付之有司, 有司其代人主之耳目者也。 其有不法, 有司方將擧(効)〔劾〕 上聞, 而被劾者乃敢上書自列, 冒望恩旨, 豈直蔑有司哉? 是不有人主之威也。 臣等累瀆天聰, 請治其罪, 天聽不回, 竊自憾焉。 昔成湯, 以三風十愆, 儆于有位曰: "敢有徇于貨色, 時謂淫風。 卿士有一于身, 家必喪, 臣下不匡, 其刑墨。" 卿士而徇貨、色, 犯淫風, 自古聖王所不容也, 有司所不得不匡者也。 殿下豈宜容釋, 而臣等亦豈甘就不匡之刑哉? 殿下敎臣等曰: "自中爭妾, 非關國家, 不必論也。" 臣等之惑滋甚。 夫京師, 四方之本也; 朝廷, 百官之則也; 宰相, 士大夫之準也; 爭奪妻妾, 夷狄之風也。 居四方之本、朝廷之表、士大夫儀刑之地, 而爲夷狄之行, 殿下任其自爲, 而不加防檢, 則臣等正恐一國之人無所忌憚, 相率而爲夷狄、禽獸之行也。 豈不可慮哉? 殿下又敎曰: "謙光永垠, 皆勳臣也。 欲置之何罪?" 臣等以爲不然。 夫人之罪犯, 有出於有心者, 有出於無心者。 出於無心者, 人主以功而私之, 猶之可也; 至若根於心術之不正, 發於利欲之無厭, 知惡而敢爲無所忌憚者, 豈在宥功之列哉? 苟不深究其情犯, 而一以功宥, 則臣等竊恐國家之法, 不得行於勳貴, 而風俗歸正, 終無日也。 董子曰: "人君正朝廷, 以正百官; 正百官, 以正萬民。" 未有朝廷不正, 而四方萬民之正者也; 亦未有大臣不正, 而朝廷得其正也。 願殿下戒淫風, 黜汚習, 痛繩謙光永垠之罪, 以正朝廷, 以正百官, 以正四方, 以正萬民, 國家幸甚。


  • 【태백산사고본】 3책 12권 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0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