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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9권, 성종 2년 3월 27일 경자 3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이조에 전지하여 신숙주 등에게 좌리 공신호를 내려 주게 하다

이조(吏曹)에 전지(傳旨)하기를,

"호천(昊天)이 불쌍하게 여기시지 아니하심인가? 우리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갑자기 군신(群臣)을 버리시었고, 얼마 아니되어 예종 대왕(睿宗大王)께서 빈천(賓天)하시니, 후사(後嗣)를 이을 자가 병들고 어리므로 온 나라가 황황(遑遑)211) 하였는데, 우리 자성 대왕 대비(慈聖大王大妃)212) 께서 세조 대왕을 추념(追念)하시고 여 소자(予小子)213) 를 돌아보시고 이에 큰 책명(策命)을 정하시니, 내가 들어와 큰 왕업(王業)을 잇게 되었다. 나는 부탁(付托)한 책임이 중하기 때문에 밤낮으로 오로지 몸을 삼갔는데, 이때에 고굉(股肱)의 신료(臣僚)들이 좌우에서 분주하게 마음을 다하고 힘을 써서 금일(今日)에 이르러, 인심(人心)이 크게 안정되고 국가가 태평하여지니, 내가 그 공(功)을 가상히 여겨서 이에 상전(賞典)을 거행한다.

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최항(崔恒)·홍윤성(洪允成)·조석문(曺錫文)·정현조(鄭顯祖)·윤자운(尹子雲)·김국광(金國光)·권감(權瑊)을 좌리 1등 공신(佐理一等功臣)으로 삼고, 이정(李婷)·이침(李琛)·정인지(鄭麟趾)·정창손(鄭昌孫)·심회(沈澮)·김질(金礩)·한백륜(韓伯倫)·윤사흔(尹士昕)·한계미(韓繼美)·한계희(韓繼禧)·송문림(宋文琳)을 좌리 2 등 공신(佐理二等功臣)으로 삼고, 성봉조(成奉祖)·노사신(盧思愼)·강희맹(姜希孟)·임원준(任元濬)·박중선(朴仲善)·이극배(李克培)·홍응(洪應)·서거정(徐居正)·양성지(梁誠之)·김겸광(金謙光)·강곤(康袞)·신승선(愼承善)·이극증(李克增)·한계순(韓繼純)·정효상(鄭孝常)·윤계겸(尹繼謙)·한치형(韓致亨)·이숭원(李崇元)을 좌리 3등 공신(佐理三等功臣)으로 삼고, 김수온(金守溫)·이석형(李石亨)·윤필상(尹弼商)·허종(許琮)·황효원(黃孝元)·유수(柳洙)·어유소(魚有沼)·함우치(咸禹治)·이훈(李塤)·김길통(金吉通)·선형(宣炯)·우공(禹貢)·김교(金嶠)·오백창(吳伯昌)·박거겸(朴居謙)·이철견(李鐵堅)·한치인(韓致仁)·구문신(具文信)·이숙기(李淑琦)·정난종(鄭蘭宗)·정숭조(鄭崇祖)·이승소(李承召)·한치의(韓致義)·한보(韓堡)·김수녕(金壽寧)·한치례(韓致禮)·한의(韓㠖)·이극돈(李克墩)·이수남(李壽男)·이현(李鉉)·신정(申瀞)·김순명(金順命)·유지(柳輊)·심한(沈澣)·신준(申浚)을 좌리 4등 공신(佐理四等功臣)으로 삼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61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註 211]
    황황(遑遑) : 마음이 급하여 허둥지둥하는 것.
  • [註 212]
    자성 대왕 대비(慈聖大王大妃) : 세조(世祖)의 비(妃) 정희 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
  • [註 213]
    여 소자(予小子) : 임금 자신[成宗]을 가리키는 말임.

○傳旨吏曹曰: "昊天不弔, 我世祖大王奄棄群臣, 未幾睿宗大王賓天, 繼嗣病幼, 一國遑遑, 我慈聖大王大妃追念世祖、眷予小子, 乃定大策, 命予入纉丕緖。 予以付托之重, 夙夜惟寅, 于時股肱臣僚, 奔走左右, 盡心效力, 以至今日, 人心大定, 國家盤安, 予嘉乃功, 爰擧賞典。 以申叔舟韓明澮崔洹洪允誠曺錫文鄭顯祖尹子雲金國光權瑊爲佐理一等, 以鄭麟趾鄭昌孫沈澮金礩韓伯倫尹土昕韓繼美韓繼禧宋文琳爲佐理二等, 以成奉祖盧思愼姜希孟任元濬朴仲善李克培洪應徐居正梁誠之金謙光康袞愼承善李克增韓繼純鄭孝常尹繼謙韓致亨李崇元爲佐理三等, 以金守溫李石亨尹弼商許琮黃孝元柳洙魚有沼咸禹治李塤金吉通宣烱禹貢金嶠吳伯昌朴居謙李鐵堅韓致仁具文信李淑琦鄭蘭宗鄭崇祖李承召韓致義韓堡金壽寧韓致禮韓㠖李克墩李壽男申瀞金順命柳輊沈瀚申浚爲佐理四等功臣。"


  •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61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