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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9권, 성종 2년 1월 22일 을미 5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예문관 부제학 김지경 등이 상소하여 불경을 사오는 일이 불가함을 아뢰다

예문관 부제학(藝文館副提學) 김지경(金之慶)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신 등이 장차 불경(佛經)을 사오는 것이 불편(不便)한 일이라고 여러 번 신청(宸聽)106) 에 아뢰었으나, 전하께서 선왕(先王)의 뜻이고 대왕 대비(大王大妃)의 명(命)이라 하여 윤허(允許)를 하시지 않으시니, 신 등은 실망을 이기지 못합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계체(繼體)107) 의 임금이 선왕(先王)의 뜻을 소술(紹述)108) 하려고 누군들 마음먹지 아니하였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송(宋)나라의 철종(哲宗)신종(神宗)의 옛 정치를 모두 회복하였다가 마침내 백성들이 궁핍하고 재정을 탕진하는 지경에 이르러 나라가 번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종(神宗)이 진실로 신법(新法)109) 의 폐해(弊害)가 이렇듯 참극한 지경에 이를 줄을 알지 못하였다면, 신종(神宗)에게 살아 계실 적에 그 이해를 따져 묻지 않고서 소술(紹述)만을 다 행한 것이 어찌 효(孝)라고 하겠습니까? 세조(世祖)께서 석가(釋迦)의 가르침에 뜻을 두신 것은 대개 국가를 이롭게 하고 생민(生民)을 복(福)되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신민(臣民)들이 복이 없어 대휼(大恤)110) 이 서로 잇달았고 또 해마다 굶주리고 백성들이 곤핍(困乏)하니, 이른바 복이 되고 이익이 된다는 것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조께서 일찍이 이와 같은 것을 아셨다면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傳)》111) 에 말하기를, ‘3년 동안 아비의 도(道)를 고치지 않아야 효(孝)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를 풀이한 자가 이르기를, ‘알맞은 도(道)일 것 같으면 비록 종신(終身)토록 고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나, 알맞지 않은 도(道)일 것 같으면 어찌 3년을 기다리겠는가?’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바로 3년 동안을 기다리지 않고도 고친다는 것인데, 선대(先代)의 뜻을 소술(紹述)하여서 이를 고치지 않겠다고만 어찌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신 등에게 하교(下敎)하시기를, ‘지금 불경을 사 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읽어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왕 대비(大王大妃)의 명(命)이시므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 전하께서 계획하시는 바는 반드시 대왕 대비께 품지(稟旨)를 받드는데, 대왕 대비의 처분(處分)이 곧 전하의 일이십니다. 옛사람의 말이 있기를, ‘임금은 쟁신(爭臣)112) 이 있어야 그 나라를 잃지 않으며 아비는 간쟁(諫爭)하는 아들이 있어야 불의(不義)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전하께서 대왕 대비에 대하여서는 신자(臣子)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불서(佛書)를 사 오는 것이 과연 전하의 뜻이 아니라면 어찌 이를 간쟁(諫爭)하시지 않으십니까? 전하께서 간쟁하신다면 어찌 뜻을 돌이키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또 대간(臺諫)은 인주(人主)의 이목(耳目)이니, 그들이 아뢰는 말은 공의(公議)가 아님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이래로 허심 탄회(虛心坦懷)하게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시니,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목을 길게 뻗고 눈을 부비면서 태평(太平)의 정치를 기다리고 바라는데, 지금 대간(臺諫)에서 여러 번 불가(不可)한 것을 아뢰었으나 전하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시니,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이 누구인들 마음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또 하교(下敎)하시기를, ‘이 일이 무슨 폐단이 있겠느냐?’고 하시나, 신 등의 생각으로는 재물(財物)을 쓰는 도리가 만약 그것이 옳을 것 같으면 비록 저장한 것을 죄다 써 버려도 괜찮지마는, 만약 그것이 옳지 않을 것 같으면 그것이 비록 털끝 하나라도 옳겠습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작은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德)에 누(累)가 된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그 끝마침을 삼가려면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전하께서 새로이 천명(天命)에 복종하시니, 지금은 바로 끝마침을 도모하려는 처음의 때이고 큰 일을 하기 위하여 작은 일을 하는 때이니, 어찌 폐단이 작다고 하여 새로운 정치에 누(累)를 끼칠 수가 있겠습니까? 대저 글을 읽고 옛것을 배우는 것은 비단 그 장구(章句)를 외우고 말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장차 이를 행하려는 것이니, 필부(匹夫)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러한데, 하물며 천하(天下)의 국가를 다스리는 자이겠습니까? 전하께서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옛 성현(聖賢)들의 글을 보시는데, 석씨(釋氏)의 가르침을 말한 자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석씨(釋氏)의 가르침이 털끝 하나라도 이익이 되는 점이 있다면 성현(聖賢)들이 어찌 이를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불씨(佛氏)의 말이 양자(楊子)·묵자(墨子)와 비교하여 훨씬 사리(事理)에 가까운 것이 그 폐해(弊害)가 더욱 심한 까닭이다.’라고 하였으니, 배운 자가 마땅히 음성(淫聲)·미색(美色)과 같은 것을 멀리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면 점차적으로 그것들이 그 마음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성현(聖賢)의 글을 보시기를 좋아하시니, 마땅히 생각하시는 것도 이단(異端)을 구별하여 사설(邪說)을 물리치고 정치의 근본을 맑은 데에서 내려고 하실 터이니, 진실로 읽어 보시는 것이 성현(聖賢)의 글이라 하지만, 그러나 사설(邪說)이 혹간 이에 섞인다면 비록 날마다 경연(經筵)에 납시어 신 등으로 하여금 천언 만어(千言萬語)를 진언(進言)하게 하신들 치도(治道)에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결단을 내리시어 의심하지 마시고, 빨리 내리신 명령을 거두신다면 국가에서 심히 다행하게 여길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5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출판-서책(書冊)

  • [註 106]
    신청(宸聽) : 임금이 듣는 것.
  • [註 107]
    계체(繼體) : 선대(先代)의 왕위를 이어받는 것.
  • [註 108]
    소술(紹述) : 이어받아 행하는 것.
  • [註 109]
    신법(新法) : 중국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이 만든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 균수법(均輸法)·시역법(市易法)·모역법(募役法)·청묘법(靑苗法)과 보갑법(保甲法)·보마법(保馬法)이 그 주 내용임.
  • [註 110]
    대휼(大恤) : 국휼(國恤).
  • [註 111]
    《전(傳)》 : 《논어(論語)》.
  • [註 112]
    쟁신(爭臣) : 간쟁(諫爭)하는 신하.

○藝文館副提學金之慶等上疏曰:

臣等將購佛經不便事, 累瀆宸聽, 殿下以先王之志、大王大妃之命, 不賜兪允, 臣等不勝缺望。 臣等竊惟, 繼體之君, 孰不以紹述、先志爲心? 然 哲宗盡復神宗舊政, 卒至民窮、財盡, 國以不競。 神宗固不知新法之害, 至於此極也, 使神宗而在, 豈以無問利害, 盡行紹述爲孝乎? 世祖所以留意釋敎者, 蓋欲利國家、福生民也。 然臣民無祿, 大恤相仍, 又年飢民困, 所謂福利者, 果安在哉? 世祖早知如此, 必不爲之矣。 《傳》曰: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釋之者曰: "如其道, 雖終身無改可也; 如其非道, 何待三年?" 此正不待三年而改者, 豈可謂紹述先志, 而不之改乎? 殿下敎臣等曰: "今購佛經, 非予欲自觀覽, 乃大王大妃之命, 不可不從。" 今殿下凡所猷爲, 必承稟大王大妃, 大王大妃處分, 卽殿下事也。 古人有言曰: "君有爭臣, 不失其國; 父有爭子, 不陷不義。" 殿下之於大王大妃, 有臣子之責焉。 今購佛書, 果非殿下之意, 則何不爲諍之乎? 殿下而諍之, 則何有不回者乎? 且臺諫人主之耳目, 其所陳說, 莫非公議。 殿下臨御以來, 虛心延納, 遠近之人, 延頸拭目, 佇望太平之治。 今臺諫累陳不可, 而殿下不納, 擧國臣民, 孰不痛心? 殿下又敎曰: "此事, 有何弊也?" 臣等以爲, 用財之道, 如其義也, 雖傾藏用之, 可也; 如其非義, 其雖一毫, 可乎? 《書》曰: "不矜細行, 終累大德。" 又曰: "愼終于始。" 殿下新服厥命, 此正圖終于始, 爲大於細之日也。 豈可以爲弊小, 而累新政乎? 大抵讀書學古, 非徒誦說章句而已, 將以行之也。 在匹夫且然, 況爲天下國家者乎? 殿下日御經筵, 觀古聖賢書, 見有說釋氏敎者乎? 釋敎而有一毫利益者, 則聖賢何不言之乎? 程子曰: "佛氏之言, 比之, 尤爲近理, 所以其害尤甚。" 學者當如淫聲、美色以遠之, 不爾則駸駸然, 入於其中矣。 殿下, 旣樂觀聖賢之書, 當思所以辨異端、闢邪說, 以淸出治之本。 苟所觀者, 聖賢之書, 而邪說或間之, 則雖日御經筵, 使臣等得進千言、萬語, 何補於治道哉? 伏願殿下, 夬決勿疑, 亟收成命, 國家幸甚。


  •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5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