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군 이종생의 졸기
진남군(鎭南君) 이종생(李終生)이 졸(卒)하니, 조회를 철폐하고 조제(弔祭)와 예장(禮葬)을 전례(前例)와 같이 하였다. 종생은 공정 대왕(恭靖大王)의 아들로서 후궁(後宮) 이씨(李氏)의 소생이다. 홍희(洪熙)을사년793) 에 정윤(正尹)에 배명(拜命)되고, 선덕(宣德)경술년794) 에 원윤(元尹)에 승진되었는데, 이 해에 세종(世宗)이 종학(宗學)을 설치하고 종생에게 명하여 종학 유사(宗學有司)로 삼아 모든 종실(宗室) 학생의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규찰하게 하였다. 경태(景泰)임신년795) 에 문종(文宗)이 종실에 학문이 있는 자를 시험하여 강(講)하게 하였더니, 종생이 경서(經書)를 강하여 다 통하였으므로 문종이 이를 가상히 여기어 학생을 면하게 하고, 또 그 아들에게 벼슬을 주었다. 계유년796) 정의 대부(正義大夫)에 승진되고 진남군(鎭南君)으로 봉해졌다. 성화(成化)병술년797) 에 세조(世祖)가 종생이 근신(謹愼)하고 종실 가운데서 가장 어질다 하여 특명(特命)으로 사옹원(司饔院)과 장원서(掌苑署) 두 관사(官司)의 제조(提調)로 삼았다. 정해년798) 에 세조가 교태전(交泰殿)에 나아가 종친(宗親)을 불러 보았는데, 옥산군(玉山君) 이제(李躋)가 종생의 오른쪽에 앉아 있으므로, 임금이 이르기를,
"진남군이 나이가 많고 또 어진데, 어찌 옥산군(玉山君)의 아래에 앉았느냐?"
하고, 즉시 그 위로 앉게 하고, 명하여 자급(資級)을 뛰어 올려 숭헌 대부(崇憲大夫)를 제수하였다. 무자년799) 에 예종(睿宗)이 그 아들 이복(李復)을 익대 공신(翊戴功臣)으로 삼고 가덕 대부(嘉德大夫)로 승진시켜 제수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65세였다. 이간(夷簡)이라고 시호(諡號)하니, 마음을 편안히 하고 고요한 것을 좋아하는 것을 이(夷)라 하고 평이(平易)하고 게으르게 하지 않는 것을 간(簡)이라 한다. 아들 네 사람이 있으니, 이복(李復)·이형(李衡)·이이(李𢓡)·이연(李衍)이다. 종생은 성질이 공손하고 근신하며 성색(聲色)을 기뻐하지 않고, 자식을 교육함에 방정(方正)함이 있었다. 이때에 종실로서 일을 맡은 이가 적었으나, 이복(李復)은 절도사(節度使)가 되고, 이형(李衡)은 이조 참판(吏曹參判)이 되었으며 이연(李衍)은 병조 참의(兵曹參議)가 되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를 영화롭게 여기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39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친(宗親)
- [註 793]을사년 : 1425 세종 7년.
- [註 794]
경술년 : 1430 세종 12년.- [註 795]
임신년 : 1452 문종 2년.- [註 796]
계유년 : 1453 단종 원년.- [註 797]
○鎭南君 終生卒, 輟朝, 弔祭、禮葬如例。 終生, 恭靖大王之子, 後宮李氏出也。 洪熙乙巳, 拜正尹; 宣德庚戌, 陞元尹。 是年, 世宗置宗學, 命終生爲宗學有司, 糾察諸宗勤慢; 景泰壬申, 文宗試講宗室之有學問者, 終生講經書皆通, 文宗嘉之, 令免學, 又爵其子。 癸酉, 陞正義, 封鎭南君; 成化丙戌, 世祖以終生謹愼在宗室中最賢, 特命爲司饔院、掌苑署兩司提調。 丁亥, 世祖御交泰殿, 召見宗親, 玉山君 躋坐終生之右, 上曰: "鎭南年長且賢, 何以居玉山下?" 卽令坐其上, 命超授崇憲。 戊子, 睿宗以其子復爲翊戴功臣, 陞授嘉德。 至是卒, 年六十五。 諡夷簡: 安心好靜, 夷; 平易不懈, 簡。 有子四人, 復、衡、𢓡、衍。 終生, 性恭謹, 不喜聲色, 敎子有方。 時宗室鮮任事, 而復爲節度使, 衡爲吏曹參判, 衍爲兵曹參議, 人皆榮之。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39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친(宗親)
- [註 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