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재상 경차관 김유가 장부를 조사할 때의 폐단에 대해 아뢰다
경기 재상 경차관(京畿災傷敬差官) 김유(金紐)가 상서(上書)하기를,
"신(臣)이 엎드려 호조(戶曹)의 품지(稟旨)를 보니, ‘여러 고을에서 심책(審冊)773) 을 행하여 한 건(件)을 등사(謄寫)해서 도호소(都護所)에 간직해 두는데, 그 소비되는 종이로 인한 폐단이 민간(民間)에 미치지 않게 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일에 부득이한 것이 있은 연후에는 폐단이 있고 없는 것을 헤아리지 말 것이요, 만일 부득이한 것이 아니라면 폐단이 비록 적다고 하더라도 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 고을의 재상(災傷)과 연분(年分)의 등제(等第)를 상세하게 써서 심책(審冊)을 행하여,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서명(署名)하고 이를 봉인(封印)하게 하면 서리(胥吏)들이 용간(容姦)을 할 수 없을 것이거든, 하물며 성적(成籍)774) 을 담당하는 수령이 비록 친림(親臨)하여 이를 한다고 하더라도 또한 손수 쓸 수가 없어서 이를 서리에게 맡기는데, 서리가 이 때에 용간을 할 수가 없었다면 능히 서인(署印)775) 을 한 뒤에 용사(用事)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것이 법으로 정한 외에 간악한 짓을 남긴다고 하면 수령이 잘 살피고 살피지 못한 여하(如何)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또 이 책은 큰 고을이면 소용되는 종이가 거의 3백여 권(卷)일 것이고, 비슷하거나 이보다 아래되는 비록 작은 고을일지라도 또한 4, 50권을 내려가지 않을 것이며, 주현(州縣)에서 일용(日用)으로 사용하는 종이도 그보다 많아서, 백성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고 변통한다는 것은 그 형세가 또한 어려울 것입니다. 그 허비(虛費)의 많음과 공역(功役)의 무거움은 시일(時日)로써 마치지 않더라도 가히 알 만할 것입니다. 신이 망령되이 말한다고 하면 따로 한 책을 만들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부득이하다고 하면 한 가지 방책이 있으니, 이른바 심책(審冊)을 행할 때에 이어 도행장(導行帳)을 등사(謄寫)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행장과 더불어 한 글자도 어긋나지 않게 하여, 그 재상(災傷)과 등제(等第)를 모든 별표(別標)에 써서 도행장의 각 자명(字名) 밑에 붙이고, 도회(都會)776) 에 봉장(封藏)했다가 세(稅)를 거두어 다 마치기를 기다려 이를 되돌려주면, 폐단을 가히 없앨 수 있고 간악한 짓도 가히 막을 수가 있어서 두 가지가 다 온전하게 될 것을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글을 내리어 답하기를,
"이제 너의 아뢴 것을 보니, 당초에 심책(審冊)을 행하여 전할 때 준거(準據)로서 도회소(都會所)에 간직해 두는 것은 간리(姦吏)가 용간(用姦)할 것을 염려하여서 그 폐단을 막고자 한 것인데, 도행장(導行帳)에 표를 첨부하는 것이 옳고, 재상(災傷)과 등제(等第)를 이름 밑에 상세히 쓸 것이며, 매 자(字) 위에 몇 결부(結負)면 몇 등이고 몇 결부면 재상(災傷)이라는 것을 총계(摠計)를 낼 것이니, 이와 같이 상세히 기록하고, 경차관(敬差官)이 서명해서 답인(踏印)을 눌러 굳게 봉하여 도회(都會)에 간직해 두어서 뒷날 상고하는 데에 빙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 종이를 백성에게서 거두어 아직 성적(成籍)하지 않았으면 곧 그 백성에게 돌려주고, 이미 성적하였으면 고치지 말게 하라."
하고, 또 이것으로써 여러 도의 관찰사(觀察使)와 경차관(敬差官)에게 유시(諭示)를 내리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3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전세(田稅) / 정론-정론(政論) / 공업-수공업품(手工業品)
- [註 773]심책(審冊) : 장부를 조사함.
- [註 774]
○京畿災傷敬差官金紐上書曰:
臣伏見戶曹稟旨以: "諸邑行審冊, 謄寫一件, 藏于都護所, 其所費紙地, 勿令弊及民間者。" 臣竊謂事有不得已, 然後不計弊之有無; 如非不得已, 則弊雖少不可爲也。 今諸邑災傷及年分、等第詳書, 行審冊, 守令署而印之, 吏不得容姦矣。 況當成籍, 守令雖親臨爲之, 亦不得手寫, 委之於吏, 吏不得容姦於此時, 而能用事於署印之後乎? 若其法外之遺姦, 則在守令察與不察如何耳。 且此冊, 大邑則所入紙, 幾三百餘卷, 等而下之, 雖小邑亦不下四五十卷。 州縣日用之需紙, 居其多, 不煩於民, 而能辦勢亦難矣。 其虛費之多, 功役之重, 不可以時日, 而就可知也。 臣妄謂, 不必別作一籍也。 如不得已, 則有一策焉, 所謂行審冊, 乃謄寫導行帳者也。 故與導行帳不差一字, 其災傷與等第, 書諸別標, 貼於導行帳各字名下, 封藏都會, 待收稅旣迄, 還之, 弊可除, 而姦可防, 庶得兩全矣。
下書答曰: "今觀爾啓, 當初行審冊, 傳準藏于都會所者, 慮姦吏用姦, 而欲防其弊也。 可於導行帳貼標, 災傷等第, 詳書名下, 每字已上, 摠計幾結負則幾等, 幾結負則災傷, 如是詳錄, 而敬差官署押、踏印, 堅封藏于都會, 以憑後考。 若其紙, 已收於民, 而未成籍, 則還給其民; 已成籍, 則勿改。" 又以是下諭諸道觀察使、敬差官。
-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3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전세(田稅) / 정론-정론(政論) / 공업-수공업품(手工業品)
- [註 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