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이세수 정친의 사신 입도 등이 하직하다
일본국(日本國) 이세수(伊勢守) 정친(政親)의 사신 입도(入道) 등이 하직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겸광(金謙光)이 회답합니다. 이번에 사인(使人)이 와서 그 답서에 이르기를, 족하의 서계를 보고 귀체의 가승(佳勝)함을 알고 위로가 되며, 이어 귀국의 전란이 그치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족하는 나라를 위하여 깊이 염려하여 국왕 전하의 명령을 받들어 글을 써서 멀리 보내어 군수 물자를 구하니, 무릇 환난을 구원하고, 재앙을 나누는 것은 이웃 나라와 사귀는 큰 의리인데, 어찌 구휼(救恤)하지 않겠습니까? 사유(事由)를 갖추어 아뢰었더니, 우리 주상께서 깊이 민망히 생각하여 요청하는 바에 부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 신민도 또한 넉넉지 못하고, 연달아 국상을 당하여 용도가 넓고 번다하므로, 대략 정포(正布) 1천 필, 면포 1천 필, 조미(糙米) 5백 석을 갖추어 돌아가는 사인 편에 부칩니다. 이는 아끼는 것이 아니라, 돌아볼 힘이 넉넉지 못함이니, 국왕 전하에게 전달하여 주시면 다행하겠습니다. 족하가 진상한 바 예물은 삼가 받아서 헌납하였고, 그 답례의 물건은 별폭에 갖추어 있으니, 참조하여 받으시면 또한 다행하겠습니다.
내가 이제 들으니 족하는 왕의 후설(喉舌)이 되어 모든 정사를 출납한다고 하니, 무릇 이웃 나라와 사귀는 일에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귀국에 대하여 예전부터 교통하여 신의가 극히 두텁습니다. 그런데 어찌 실정대로 말하지 않겠습니까? 요사이 세천전(細川殿) 삼하수(三河守) 승씨(勝氏)의 편지에, ‘국왕의 인장이 병화(兵火)에 타버렸으니 다시 보내기를 요구한다.’고 하였었는데, 옛 문서를 다 상고하여 보아도 일찍이 인장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경계를 이웃한 여러 나라가 인장을 서로 보낸다는 것은 명분과 의리상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끝내 청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 세천지현(細川持賢)의 사인이 와서 말하기를, ‘세천지현은 원승원(源勝元)의 아들이고, 산명(山名)의 사위인데, 원승원은 이미 죽고 세천지현은 바야흐로 산명과 더불어 군사를 일으켜서 서로 공격한다.’ 하니, 길이 멀고 바다가 막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면 예전에는 국사(國使) 외에 흑 관령(管領)의 사인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으나, 그들도 반드시 국왕의 명령을 받았을 것입니다. 지금 관령 세천지현·세천승씨·전산전(畠山殿) 원의승(源義勝)·전산전 원의취(源義就)·산명교풍(山名敎豐)·산명종전(山名宗全) 등의 사선이 연이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은 귀국의 사인도 보고 들은 바인데, 그 근거와 이유를 다 알지 못하여 접대하는 절목에 착오가 있을 듯합니다. 하물며 개인적으로 교통하는 일에 대하여 국왕 전하가 의아하게 생각할까 두려우니, 족하는 이미 계옥(啓沃)743) 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계품(啓稟)하기를 원합니다. 자세한 것은 돌아가는 사인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때를 따라 건강 보전하기를 바랍니다. 별폭은 백저포(白苧布) 10필, 흑마포(黑麻布) 10필, 백면포(白綿布) 10필, 백면주(白綿紬) 10필, 호피(虎皮) 3장, 표피(豹皮) 3장, 잣[栢子] 15두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34면
- 【분류】외교-왜(倭) / 무역(貿易)
- [註 743]계옥(啓沃) : 충성스런 말을 임금에게 아룀.
○日本國 伊勢(守)守政親使入道等辭。 其答書曰:
禮曹判書金謙光奉復。 今者使人來, 得惠書, 備認動履佳勝爲慰, 仍審貴國兵禍未弭。 足下爲國深慮, 承稟國王殿下之命, 裁書遠達, 以索軍需, 夫救患、分災, 交隣大義, 豈宜不恤? 具由以啓, 我殿下深加愍念, 命副所請。 第因我國臣民亦無祿, 連遭國恤, 調度浩繁, 略備正布一千匹、緜布一千匹、糙米五百石碩, 就付回使, 非靳惜也, 顧力不贍耳。 轉達國王殿下爲幸。 足下所進禮物, 謹已啓納, 其回賜物件, 具在別幅, 照領亦幸。 今聞, 足下爲王喉舌, 出納庶政, 凡於交隣之事, 在所致慮。 我國之於貴邦, 自昔通好, 信義極篤, 安得不以情陳? 今來細川 三河守勝氏書稱: "國王之印, 燬于兵火, 乃求再送。" 悉考舊籍, 曾無送印之事。 況隣境列國, 以印相送, 於名義何如? 肆未從請。 又有細川持賢之使來言: "持賢, 乃源勝元之子, 山名女壻。 勝元旣死, 持賢方與山名, 擧兵相攻。" 路遠海隔, 未審情僞。 乃念昔者國使之外, 或有稱管領之使者, 然亦必承國王之命耳。 今者管領細川持賢、細川勝氏、畠山 源義勝、畠山 源義就、山名敎豐、山名宗全之輩, 使船絡繹, 貴使所見聞也。 其根脚端由, 皆所未悉, 其館待節目, 恐有踈誤。 況私交之事, 恐爲國王殿下所訝, 足下旣在啓沃之任, 願有所稟, 詳在還使。 餘冀順時, 調保。
別幅: 白苧布十匹、黑麻布十匹、白綿布十匹、白綿紬十匹、虎皮三張、豹皮三張、栢子十五斗。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34면
- 【분류】외교-왜(倭)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