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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7권, 성종 1년 9월 26일 신축 4번째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예조에서 경작을 금지하고 나무를 심는 등의 편의한 조목을 아뢰다

예조에서 도성(都城)의 안팎을 순행하여 살피고, 경작을 금지하고 나무를 심는 등의 편의한 조목을 만들어 아뢰기를,

"1. 광평 대군(廣平大君) 집의 북쪽 고개에서 주산(主山)에 이르기까지, 노원역(蘆原驛) 모퉁이에서 벌아현(伐兒峴)에 이르기까지, 우장산(牛場山)사현(沙峴)에서 청파역(靑坡驛)의 북쪽 고개 산등성 마루에 이르기까지는, 다 경작을 금지하고 잡목을 심어서 산맥을 보호하게 하소서.

1.침장고(沈藏庫) 모퉁이에서 동대문 밖 성밑에 이르기까지 잡인(雜人)들이 많이 침점(侵占)하여 밭을 갈았는데, 이 때문에 구덩이가 생겨서 물이 고여 흐르지 못하므로 성의 기초가 침윤(浸潤)되고 있으니, 지금 마땅히 경작을 금하고 나무를 심게 하소서.

1. 개천가 좌우에 아직 석축하지 못한 곳은 큰 물을 만나게 되면 점점 허물어질 것이니, 지금 마땅히 버드나무를 심게 하소서.

1. 노원역(蘆原驛) 모퉁이에서 보제원(普濟院) 서쪽의 큰 길에 이르기까지는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서 숲을 이루게 하소서.

1. 국초에 도읍을 세울 때에 산과 물의 향배(向背)를 살펴서 사사(寺社)를 건립하여 산수의 부족함을 도와서 재변을 진압하고 물리쳤는데, 그후 사찰로서 복세암(福世庵)·안암사(安巖寺)·정일암(淨逸庵)·향실암(香室庵)·수정암(首頂庵)·망성암(望城庵)·은암(隱菴)·일출암(日出庵)·대고산사(大高山寺)·소고산사(小高山寺)·입암사(立巖寺)·도장동사(道藏洞寺)·정업원(淨業院)과 같은 것이 세워졌고, 사당(社堂)으로서 소격서동(昭格署洞)·내섬시동(內贍寺洞)·장생전동(長生殿洞)·광흥창동(廣興倉洞)·주자동(鑄字洞)·장흥고동(長興庫洞)·온녕군가동(溫寧君家洞)이현(梨峴)에 있어, 이 때문에 주산에서 내려오는 맥과 용호(龍虎) 곧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와, 안산(案山) 곧 앞 산의 지맥(地脈)이 휴손(虧損)되어 매우 미편합니다. 청컨대 모두 철거하게 하고, 부득이 두어야 할 것이 있으면 땅을 골라서 옮겨 짓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전지하기를,

"가하다. 다만 관청에서 창건한 사찰과 사당은 다른 곳으로 옮겨 짓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33면
  • 【분류】
    농업-임업(林業)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농업-경영형태(經營形態)

○禮曹巡審都城內外, 禁耕、植木等項, 便宜以啓。 "一。 自廣平大君家北岾, 至于主山; 自蘆原驛隅, 至伐兒峴; 自牛場山沙峴, 至靑坡驛北岾山脊, 皆禁耕, 又植雜木, 以護山脈。 一。 自沈藏庫隅, 至東大門外城底, 雜人多侵占爲田, 因此成坎, 水積不通, 浸潤城基, 今宜禁耕植木。 一。 開川左右邊, 未盡築石處, 遇大水, 則漸就圮壞, 今宜栽植楊柳。 一。 自蘆原驛隅, 至普濟院西大路, 築堤、植木, 以成林藪。 一。 國初建都時, 審山水向背, 建寺社, 以爲裨補, 鎭禳災變。 邇來, 寺刹, 如福世庵安巖寺淨逸庵香室庵首頂庵望城庵隱庵日出庵 小高山寺立巖寺道藏洞寺淨業院; 社堂, 如昭格署洞內贍寺洞長生殿洞廣興倉洞鑄字洞長興庫洞溫寧君家洞梨峴皆有之, 因此主山來脈龍、虎, 案山地脈虧損, 甚未便。 請令撤去, 其有不得已當存者, 卜地移造, 何如?" 傳曰: "可。 但官創寺、社, 移造他處。"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33면
  • 【분류】
    농업-임업(林業)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농업-경영형태(經營形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