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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6권, 성종 1년 7월 9일 을유 8번째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병조에서 강원도의 관역 증설과 원주 각림사에의 소금 운반 등에 대해 아뢰다

병조(兵曹)에서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 예승석(芮承錫)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제1조는, 관역(館驛)을 더 설치하는 일입니다. 대저 역(驛)을 설치하는 것은 진실로 도정(道程)의 원근(遠近)을 헤아려야 합니다. 본도(本道)의 여러 역(驛) 가운데 삼척(三陟)사직역(史直驛)에서부터 임계역(臨溪驛)에 이르기까지는 80여 리(里)이고, 횡성(橫城)갈풍역(葛豐驛)에서 백동역(白冬驛)에 이르기까지는 90리(里)이고, 원주(原州)안창역(安昌驛)에서 백동역(白冬驛)에 이르기까지는 70여 리(里)인데,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서 한갓 말[馬]의 힘만 곤폐(困斃)하게 할 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날이 짧을 때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투숙(投宿)할 곳이 없으니, 삼척(三陟)의 대령(大嶺) 아래 40여 리(里)와 갈풍역(葛豐驛)·백동역(白冬驛) 두 역(驛) 중앙(中央)에 1역(驛)을 설치하고, 안창역(安昌驛)·백동역(白冬驛)의 중앙에 1역(驛)을 설치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다만 이 땅들이 척박(瘠薄)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는데, 비록 역(驛)을 설치하고 역리(驛吏)를 두더라도 반드시 유산(流散)하기에 이를 것이니, 우선 원우(院宇)를 설치하고, 양인(良人)이나 천인(賤人)을 논하지 말고 원주(院主) 3, 4호(戶)를 골라서 정(定)하며, 부근의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을 주어서 후(厚)하게 구휼(救恤)하여 안접(安接)하게 할 것이며, 겨울철에는 교초(郊草)를 많이 쌓아서 왕래하는 데 투숙(投宿)할 곳으로 삼게 하소서."

제2조는, 원주(原州)각림사(覺林寺)에 소금을 전수(轉輸)하는 일입니다. 본 절에는 해마다 소금 40석(碩)을 주는데, 이보다 앞서는 절의 중[僧]들이 전수(轉輸)하였으나, 병술년572) 부터는 역리(驛吏)로 하여금 강릉부(江陵府)에 주어서 절에 전수(轉輸)하게 하였으니, 꼬불꼬불한 길이 60여 리(里)이므로 우마(牛馬)가 많이 죽습니다. 만약 그 양(量)이 축난 것이 있으면 징수하여 독촉하는 것이 잇따르니, 그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본 절에는 소와 말을 많이 기르며 40석(碩)의 소금을 또한 일시에 다 쓸 수가 없으니, 유수(遊手)573) 의 무리들로 하여금 점차로 운수(運輸)하게 하여서 역로(驛路)의 폐단을 없애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16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수산업-염업(鹽業)

  • [註 572]
    병술년 : 1466 세조 12년.
  • [註 573]
    유수(遊手) : 하는 일 없이 노는 사람.

○兵曹據江原道觀察使芮承錫啓本啓: "第一條, 館驛加設事。 大抵置驛, 固宜量道途遠近。 而本道諸驛, 自三陟 史直驛臨溪驛八十餘里, 自橫城 葛豐驛白冬驛九十里, 自原州 安昌驛白冬驛七十餘里, 皆無人之地, 非徒馬力困斃, 風雪日短之時, 行旅無投宿處。 可於三陟大嶺底四十餘里及葛豐白冬兩驛中央, 設一驛; 安昌白冬兩驛中央, 設一驛爲便。 但此地瘠薄, 不得耕種, 雖設驛、置吏, 必至流散, 姑設院宇, 勿論良、賤, 擇定院主三、四戶, 給旁近可耕田, 厚恤安接, 冬節則多積郊草, 以爲往來投宿之所。 第二條, 原州 覺林寺鹽輸轉事。 本寺, 歲給鹽四十碩, 前此寺僧輸轉, 自丙戌年, 令驛吏, 受於江陵府, 轉輸於寺, 崎嶇六十餘里, 牛馬多斃。 若有虧欠, 徵督隨之, 不堪其苦。 本寺多畜牛馬, 四十碩之鹽, 又非一時倂用, 令游手輩, 漸次輸運, 以除驛路之弊, 何如?" 從之。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16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수산업-염업(鹽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