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6권, 성종 1년 6월 13일 경신 4번째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북경에 가는 사신에게 수행인과 여비를 더해 주지 말 것을 명하다
전지(傳旨)하기를,
"북경(北京)에 가는 사신의 행차(行次)에 데리고 가는 사람과 인정(人情)의 반전(盤纏)490) 은 본래 정해져 있는 숫자가 있는데, 임시(臨時)하여 계청(啓請)하여 그 숫자를 더하고 줄이지 않는 것으로 드디어 격례(格例)를 이루니, 이로 인하여 짐바리[駄]에 실은 것이 갑절이나 더하여 연로(沿路)의 백성들이 피폐한다. 금후로는 데리고 가는 사람의 숫자와 인정(人情)의 반전(盤纏)으로 가지고 가는 잡물(雜物)은 한결같이 횡간(橫看)491) 에 의하고 혹시라도 전례(前例)를 끌어다가 계청(啓請)을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으니, 누차 원상(院相) 구치관(具致寬)이 아뢰었기 때문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10면
- 【분류】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傳曰: "赴京行次帶去人及人情、盤纏, 本有定數, 比來臨時啓請, 有加無減, 遂成格例, 因此駄載增倍, 沿路疲敝。 今後帶去人數、人情、盤纏雜物, 一依橫看, 毋或援例啓請。" 疊因院相(具敢寬)〔具致寬〕 之啓也。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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