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서 집의 유지가 진상을 다시 행하는 일과 구황하는 일로 아뢰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니, 집의(執義) 유지(柳輊)가 아뢰기를,
"지금 가뭄이 극심함으로 인하여 삭망 진상(朔望進上)을 면제하였는데, 어선(御膳)이 부족할까 두려우니 적당히 진상(進上)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만약 여러 고을의 긴요치 않은 공물(貢物)을 면제한다면 비록 진상을 면제하지 않더라도 백성들의 폐단은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또 구황(救荒)하는 여러 가지 일은 마땅히 미리 조치(措置)하여야 하므로, 인하여 사목(事目)을 올립니다.
1. 연변(沿邊)의 여러 고을에서는 소금을 굽고, 산(山)의 고을에서는 도토리를 따는데, 전보다도 배나 더하도록 조치하게 하소서.
1. 구황(救荒)하는 물건은 소금과 장(醬)만한 것이 없으나, 장은 졸지에 마련하기가 쉽지 아니할 것이니, 경외(京外)의 창고에서 묵은 콩을 쪄서 만들되, 미리 마땅히 장을 담그게 하소서.
1. 해채(海菜)와 산야(山野)에서 쓸 만한 초식(草食)은 많은 숫자를 채취(採取)하게 하소서.
1. 명년(明年)의 곡식 종자는 어려 고을의 숙고(稤庫)에서 묵은 곡식을 가지고 농사가 조금 잘된 곳의 햇곡식과 바꾸고, 여러 관사(官司)에 바치는 전세(田稅)와 잡물(雜物)을 여러 관사에 저축한 다소(多少)를 헤아려서, 그 나머지 곡물(穀物)은 상납(上納)하는 것을 면제하고, 피곡(皮穀)471) 으로 대신 바치도록 하여 종자를 준비하게 하소서.
1. 사복시(司僕寺)에서 부득이 항상 기르는 말 이외에는 살곶이[箭串]에 방목(放牧)하도록 하고, 경기(京畿)에서 바치는 생초(生草)를 적당히 감(減)하게 하소서.
1. 여러 도(道)의 공세(貢稅)는, 전에는 사선(私船)에 값을 주고 조운(漕運)시켰는데, 지금은 공선(公船)을 건조하여 방어(防禦)하는 선군(船軍)에게 바다를 지나는 데 필요한 양식을 지급하고 조운시킵니다. 그 양식이 배값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데, 하물며 선군은 오로지 방어를 맡기고 있는데, 이들도 또한 농민이니, 전례(前例)에 의하여, 원하는 데 따라 사선(私船)을 써서 조운(漕運)하여 선군을 쉬도록 하여 방어(防禦)를 튼튼하게 하소서.
1. 진휼(賑恤)하는 일은, 부지런하고 삼가는 대신(大臣)을 골라 보내어 미리 조치하게 하소서.
1. 농사가 부실(不實)하면 백성들 가운데 굶주린 자가 반드시 서로 모여서 도적(盜賊)이 될 것이니, 엄하게 도적을 금지하는 방도를 세우게 하소서.
1. 간경 도감(刊經都監)을 임시로 파(罷)하게 하소서.
1. 서울에서 벼슬살이하는 사람 가운데 실농(失農)한 고을에 사는 사람은 이를 놓아 보내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금년에 구황하는 데 필요한 여러 관사의 묵은 곡식의 숫자를 알아서 아뢰고, 묵은 콩을 가지고 쪄서 장(醬)을 만들도록 하라. 또 사복시(司僕寺)에 입양(立養)하는 말을 쇄출(刷出)하여 살곶이에 방목하게 하고, 그 경기(京畿)에 바치는 생초(生草)를 적당히 감(減)하게 하라. 또 서울에서 벼슬살이하는 사람 가운데 실농(失農)한 것이 더욱 심한 여러 고을에 사는 사람들을 놓아 보내라."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유지(柳輊)는 모든 일에 동렬(同列)과 더불어 밝게 의논하지 아니하고 대개 혼자서 아뢰었고, 또 태도와 성음(聲音)을 꾸며서 진퇴(進退)하는 데 능숙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7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0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농업-권농(勸農) / 수산업-염업(鹽業) /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 사법-치안(治安) / 행정(行政)
- [註 471]피곡(皮穀) : 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곡물, 즉 겉곡식.
○御經筵。 講訖, 執義柳輊啓曰: "今因旱, 盡除朔望進上, 恐御膳不足, 令量進何如? 若除諸邑不緊貢物, 則雖不除進上, 民弊自祛矣。 且救荒諸事, 當預先措置, 因進事目。 一。 沿邊諸邑則煮鹽; 山郡則橡實摘取, 令倍前措置。 一。 救荒之物, 莫如鹽、醬, 然醬則未易卒辦, 以京、外倉庫, 陳豆燻造, 預先合醬。 一。 海菜及山野, 可用草食, 多數採取。 一。 明年穀種, 以諸邑稤庫陳穀, 換農事稍稔處新穀, 諸司所納田稅及雜物, 計諸司所儲多少, 其有餘之物, 除上納, 以皮穀代納, 以備種。 一。 司僕寺不得已常養馬外, 放于箭串, 量減京畿生草。 一。 諸道貢稅, 前則以私船, 給價而漕運; 今則造公船, 以防禦船軍, 給過海糧。 而運其糧, 與船價, 不甚相遠。 況船軍專委防禦, 而亦是農民, 依前例, 從願用私船漕運, 以休船軍, 以固防禦。 一。 賑恤之事, 擇授勤謹大臣, 預而措置。 一。 農事不實, 則民之飢餓者, 必相聚爲盜, 嚴立禁盜之方。 一。 刊經都監權罷。 一。 京從仕人居失農官者, 放之。" 上曰: "今年救荒所需諸司陳否, 知數以啓, 以陳豆燻造爲醬。 又刷出司僕寺立養馬, 放于箭串, 其京畿所納生草量減。 又京從仕人內, 失農尤甚諸邑居人, 放送。"
【史臣曰: "輊, 凡事不與同列建明, 率獨啓, 且作態度、聲音, 閑習進退。"】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7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0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농업-권농(勸農) / 수산업-염업(鹽業) /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 사법-치안(治安) / 행정(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