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대비가 인수 왕비로 정사 청단하게 할 것을 이르니 원상들이 불가함을 아뢰다
대왕 대비(大王大妃)가 전지하기를,
"국가의 기무(機務)를 내가 부득이하여 임시로 함께 청단(聽斷)하는데, 무릇 시위(施爲)가 천심(天心)에 합하지 않아서 이 한재(旱災)를 가져왔으니, 장차 어떻게 해야 가할 것인가? 인수 왕비(仁粹王妃)가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서 사체(事體)를 아니, 내가 큰 일을 전하여 맡기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하였다. 원상(院相) 한명회(韓明澮)·김질(金礩) 및 승지(承旨) 등이 의견을 함께 하여 아뢰기를,
"수재(水災)·한재(旱災)는 예전 성왕(聖王)도 면치 못한 것입니다. 지금 폐단이 제거되지 않은 것이 없고 옥송(獄訟)이 원통하고 체류된 것이 없으니, 화기(和氣)를 상하고 재앙을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심(聖心)이 마침 그러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허물을 이끌어 자책(自責)하시어 중한 부하(負荷)를 내놓고자 하시니, 지금의 때를 당하여 어찌 이와 같은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하였다. 전지하기를,
"사람들이 직전(職田)이 폐단이 있다고 많이 말하기에 대신에게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우리 나라 사대부(士大夫)의 봉록(俸祿)이 박하여 직전을 갑자기 고칠 수 없다.’ 하므로, 나도 또한 그렇게 여겼었는데, 지금 들으니 조사(朝士)의 집에서 그 세(稅)를 지나치게 거두어 백성들이 심히 괴롭게 여긴다 한다. 또 시장[市] 안의 악미(惡米)를 금하는 것은 마땅히 악미를 제조하는 자를 잡아 죄주어야 하겠는데, 지금 들으니 이 무리들은 법망(法網)에서 빠져 나가고 말곡식·되곡식을 가지고 조석을 꾸려나가는 자가 도리어 죄를 받는다 한다. 또 들으니 제사(諸司)의 점심(點心)을 빈한한 노비로 하여금 후하게 판비(辦備)하도록 책임지우기 때문에 노비가 심히 괴롭게 여긴다 한다. 또 들으니 문소전(文昭殿)의 제복(祭服)이 더럽다 하니, 심히 정결하게 향사(享祀)하는 뜻이 아니다. 이 여러 가지 일을 모두 경영하여 처리해서 되도록 사의(事宜)에 합당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다. 한명회 등이 아뢰기를,
"직전의 세(稅)는 관(官)에서 거두어 관에서 주면 이런 폐단이 없을 것이고, 악미는 민간(民間)에서 저희끼리 서로 행용(行用)하니 반드시 금법(禁法)을 베풀 것이 없고, 제사(諸司)의 점심의 폐단과 문소전의 제복(祭服)의 더러운 것은 모두 관리의 허물이니 해사(該司)로 하여금 검거(檢擧)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전지하기를,
"직전의 세는 소재지(所在地)의 관리로 하여금 감독하여 거두어 주게 하고, 악미는 금하지 말며, 제향 아문(祭享衙門)의 관리는 금후로는 가려서 정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4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8책 490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과학-천기(天氣) / 농업-농작(農作) / 재정-전세(田稅) / 상업-상인(商人) / 행정(行政)
○大王大妃傳曰: "國家機務, 予不得已權同聽斷, 凡所施爲, 不合天心, 致此旱災, 將何施而可? 仁粹王妃明達識事體, 予欲傳付大事, 何如?" 院相韓明澮、金礩及承旨等同辭啓曰: "水旱之災, 古昔聖王亦不得免。 今弊無不祛, 獄無冤滯, 傷和召災, 恐無其由。 然聖心不以爲適然, 引咎責躬, 欲釋重負, 當今之時, 豈宜如是?" 傳曰: "人多言職田有弊, 故議諸大臣, 皆曰: ‘我國士大夫俸祿微薄, 職田未可遽革。’ 予亦以爲然。 今聞朝士家, 濫收其稅, 民甚病之。 又市裏惡米之禁, 當得造惡米者罪之, 今聞此輩網漏, 而其持斗升, 以資朝夕者, 反受罪。 又聞諸司點心, 責令貧寒奴婢厚辦, 奴婢甚苦之。 又聞文昭殿祭服陋汚, 甚非潔淨享祀之義。 凡此數事, 皆當經紀, 務合於宜。" 明澮等啓曰: "職田稅, 官收官給, 則無此弊矣。 惡米, 民間自相行用, 不必設禁也。 諸司點心之弊、文昭殿祭服陋汚, 皆是官吏之過, 宜令該司檢擧。" 傳曰: "職田稅, 令所在官監收給之。 惡米勿禁。 祭享衙門官吏, 今後擇差。"
- 【태백산사고본】 1책 4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8책 490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과학-천기(天氣) / 농업-농작(農作) / 재정-전세(田稅) / 상업-상인(商人) / 행정(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