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들이 음기가 성하여 재해와 옥사가 빈발하다고 하고 절의 종을 치지 말 것을 청하다
이보다 앞서 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이 아뢰기를,
"신(臣)이 듣건대, 금(金)은 가을에 속하고, 가을은 숙살(肅殺)로 일을 삼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옛날에 일식(日食)에는 북을 쳐서 양기(陽氣)를 돕고, 월식(月食)에는 종(鍾)을 쳐서 음기(陰氣)를 도왔던 것입니다. 지금 도성(都城) 안의 종각(鐘閣)·종루(鍾樓)와 선종(禪宗)의 원각사(圓覺寺)에서 모두 종(鍾)을 치니, 이것은 모두 음기(陰氣)를 도우는 것입니다. 근년에 난신(亂臣) 및 도적이 주사(誅死)된 사람이 많은데, 신은 아마 음기(陰氣)가 성하여 초래(招來)된 듯합니다. 고사(故事)를 자세히 상고하여 여러 절의 종(鍾)은 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신숙주(申叔舟)도 또한 아뢰기를,
"옛사람이 말하기를, ‘가을 서리가 비로소 엄숙해지자 풍산(豐山)의 종(鍾)이 스스로 운다.’ 하였으니, 이는 음기(陰氣)가 서로 응한 것입니다. 어찌 주사(誅死)한 사람은 금기(金氣)가 서로 도운 것이 아님을 알겠습니까? 군주(君主)가 드나드는 문을 열고 닫을 때 종(鍾)을 쳐서 호령(號令)으로 삼는 것은 나라의 예사로 있는 일입니다만 요즈음에는 여러 곳의 종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요란하게 들려서 새벽과 밤의 한계와 호령(號令)의 절차를 혼동하게 하니, 구치관의 말이 옳습니다."
하였다.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아뢰게 했더니, 이때에 와서 예문관(藝文館)에서 상고하여 아뢰기를,
"《국어(國語)》025) 에 이르기를, ‘주(周)나라 경왕(景王)이 장차 무역(無射)026) 을 주조(鑄造)하려고 하니, 〈악관(樂官)〉 주구(州鳩)가 말하기를, 「왕은 심질(心疾)로 죽겠구나! 대저 악(樂)은 천자(天子)가 주관하는 것이다. 음(音)은 악(樂)을 싣고 다니는 수레이고, 종(鍾)은 음(音)을 담아놓은 그릇이다. 천자(天子)가 풍속을 살펴 악(樂)을 제작하여 그릇을 종(鍾)으로 하여 음(音)을 담고, 수레[輿]027) 로 악(樂)을 싣고 다니게 하는데, 작은 것은 가늘지 않게 하고, 큰 것은 가로 퍼지지 않게 한다. 가늘면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고 가로 퍼지면 다 수용(受容)할 수 없으니, 마음이 이로써 언짢게 되는 것이 실상 병을 발생한다. 지금 종(鍾)이 가로 퍼져서 왕의 마음이 견딜 수 없게 되었으니, 능히 오래갈 수 있겠는가?」 하였다.’로 되었으며, 《백호통(白虎通)》에는 이르기를, ‘종(鍾)이란 것은 적절[時]하게 하는 소리이니, 절도(節度)가 그로 말미암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절도가 있으면 만물(萬物)이 창성하고 절도가 없으면 만물이 멸망한다.’고 하였으며, 《신자(愼子)》에는 이르기를, ‘노(魯)나라 장공(莊公)이 큰 종(鍾)을 주조(鑄造)하니, 조귀(曹劌)가 들어가 보고 말하기를, 「나라는 좁고 작은데도 종은 큽니다.」 했다.’고 하였으며, 《백씨육첩(白氏六帖)》에는 이르기를,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큰 종을 주조(鑄造)하여 장차 이를 매달려고 하니, 안자(晏子)가 말하기를, 「종이 크니 예법에 따른 것이 아니다.」 하여, 마침내 이를 부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고 하였다. 신숙주와 구치관이 또 서면(書面)으로 아뢰기를,
"상고해 보건대, 옛날에는 종(鍾)이 크면 재앙이 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풍산(豐山)의 종은 서리가 내리면 울고, 황하(黃河)의 종은 구름이 끼어 비가 오면 울고, 한전(漢殿)의 종은 산이 무너지면 울었는데, 이는 그 기류(氣類)028) 가 감동이 되어 초래된 것입니다. 기류가 이미 능히 감동이 되어 초래하게 된다면 그것이 재앙과 상서에 있어서도 각각 기류로 응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 종각(鐘閣)·원각사(圓覺寺) 선종(禪宗)의 큰 종을 아침 저녁으로 번갈아 가며 쳐서 서울을 진동(震動)시키는 것은 진실로 이미 옳지 못한 일인데, 하물며 동방은 나무에 속하고, 금성(金聲)029) 은 음살(陰殺)의 기운이니, 더욱 크게 성(盛)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종각의 종은 첩종(疊鍾)030) 인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말고, 선종의 원각사 종은 큰 불사(佛事) 이외에는 사용하지 마소서. 원각사(圓覺寺) 종은 다만 종의 몸체가 클 뿐만 아니라 그 소리도 몹시 울려서 흔들리고 끊겼다 이어졌다 하므로, 민간에서는 떠들썩하게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니, 비록 근거는 없지마는, 그러나 인심(人心)이 요사스러움을 일으키게 되니 국가의 일이 한가한 때를 기다려 고쳐 주조(鑄造)하소서."
하였으나, 유중 불하(留中不下)031)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53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025]《국어(國語)》 : 여기에서는 출전(出典)이 《국어》로 되어 있으나 악관(樂官) 주구(州鳩)가 한 말은 거기에 없고, 《좌전(左傳)》 소공(昭公) 21년에 그 내용이 담겨져 있으므로, 여기서 《국어(國語)》라 한 것은 착오인 듯함.
- [註 026]
무역(無射) : 종 이름.- [註 027]
수레[輿] : 음(音).- [註 028]
기류(氣類) : 지기(志氣)가 통하는 동류(同類).- [註 029]
금성(金聲) : 종소리.- [註 030]
첩종(疊鍾) : 조선조 때, 열병(閱兵)할 때에 군대를 집합시키기 위하여 대궐 안에서 치던 큰 종.- [註 031]
유중 불하(留中不下) : 상소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비답(批答)을 내리지 않기 위하여 임금이 소장(疏章)을 궁중에 머물러 두고 관계 기관에 회부하지 않던 일.○先是, 綾城君 具致寬啓曰: "臣聞金屬秋, 秋以肅殺爲事。 古者, 日食擊皷, 以助陽氣; 月食擊鐘, 以助陰氣。 今都城內鐘閣 鐘樓、禪宗圓覺寺, 皆擊鐘, 是皆助陰氣也。 近年亂臣及盜賊誅死者多, 臣恐陰盛所致也。 請詳考故事, 如諸寺鐘, 勿擊何如?" 申叔舟亦啓曰: "古人有言: ‘秋霜始肅, 而豐山之鐘自應。’ 此陰氣相應也。 安知誅死者, 非金氣相助也? 人君出入門之開閉, 撞鐘以爲號令, 國之常事也。 今者諸處鐘聲亂於人聽, 以混晨夜之限、號令之節。 致寬之言是也。" 命考故事以啓。 至是, 藝文館考啓曰: "《國語》云: ‘周景王將鑄無射, 州鳩曰: 「王其以心疾死乎! 夫樂, 天子之職也。 夫音, 樂之輿也, 鐘音之器也。 天子省風以作樂, 器以鐘之, 輿以行之。 小者不窕, 大者不摦。 窕則不感, 摦則不容。 心是以感, 感實生疾。 今鐘摦矣, 王心不椹, 其能久乎?」’ 《白虎通》云: ‘鎛者, 時之聲也。 節度之所由生也。 有節度, 則萬物昌; 無節度, 則萬物亡。’ 《愼子》云: ‘魯莊公鑄大鐘, 曹劌入見曰: 「國褊小而鐘大。」’ 《白氏六帖》云: ‘齊 景公鑄大鐘, 將懸之, 晏子曰: 「鐘大不以禮。」 遂毁之。’" 叔舟、致寬等又書啓曰:
按古者, 鐘大莫不爲災。 豐山之鐘, 霜降則鳴; 黃河之鐘, 陰雨則鳴; 漢殿之鐘, 山摧則鳴, 以其氣類感而召之也。 氣類旣能感而召之, 則其於災祥, 各以氣類而應之也, 無疑矣。 今鐘閣、圓覺寺禪宗大鐘, 朝暮迭撞, 震動京城, 固已不可。 況東方屬木, 金聲陰殺之氣, 尤不可大盛。 鐘閣鐘疊鐘, 時外勿用; 禪宗圓覺寺鐘, 大佛事外勿用。 圓覺寺鐘, 非徒體大, 其聲震盪斷續, 民間喧騰, 以爲不祥, 雖無所據, 然人心興妖。 請待國家事閒, 改鑄。
留中不下。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53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