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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실록 8권, 예종 1년 10월 23일 계유 1번째기사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강희맹이 전라도와 경상도에 도적이 활개치고 있다는 것을 아뢰다

형조 판서(刑曹判書) 강희맹(姜希孟)전라도(全羅道)와 경상도(慶尙道)에 도적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아뢰니, 임금이 원상(院相) 등을 명소(命召)하여 도적을 체포할 사의(事宜)를 의논하게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홍윤성(洪允成)이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전라도 지방에서 도적들이 저희끼리 불러모아 재물을 약탈한다고 합니다. 보성 군수(寶城郡守)가 내금위(內禁衛) 선상근(宣尙謹)을 포도 감고(捕盜監考)로 삼았는데, 선상근이 도적을 쫓아다니다가 유옥 교자(有屋轎子)957) 를 탄 자를 만났더니 진주 목사(晉州牧使)의 부인이라고 칭하나, 선상근 등이 그가 도적인 것을 알고서 체포하려고 하자, 도적들이 선상근 등 3인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또 함평현(咸平縣)에 사는 좌랑(佐郞) 송씨(宋氏)가 사위를 맞고자 하였는데, 결혼식을 올리기 며칠 전에 적도들이 쳐들어와서 여자를 잡아 갔다고 합니다. 요사이 도적의 무리들이 경상도의 진주(晉州)·화개(花開)·살천(薩川) 등지로 이둔(移屯)하였는데, 구례 현감(求禮縣監)이 뒤를 쫓았으나, 체포하지 못하였다 합니다. 만약에 지금 제거하지 아니하면, 그 형세가 더욱 성해져서 제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조(前朝) 말기에도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왜구(倭寇)라 일컫고 도둑질을 한 자가 자못 많았으니, 이제 이 도둑을 체포하는 것은 늦출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하니, 홍윤성 등이 대답하기를,

"장수들 중에서 중망(重望)이 있는 자를 보내어 체포하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모든 원상과 더불어 같이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영성군(寧城君) 최항(崔恒)·창녕군(昌寧君) 조석문(曹錫文)·좌의정(左議政) 윤자운(尹子雲)·도승지(都承旨) 권감(權瑊)홍윤성·강희맹 등과 함께 의논하여 사목(事目)을 초(草)하여 아뢰었는데, 그 사목은 이러하였다.

"1. 전라도경상도의 각 주장(主將)과 부장(副將) 각 1인이 각각 서울의 군관(軍官) 15인과 종사관(從事官) 1인을 거느리게 하소서.

1. 각각 그 도(道)의 절도사(節度使)는 서울 장수의 지휘를 듣도록 하소서.

1. 서울의 군관은 역말을 타고, 각기 자기 소유의 전마(戰馬)를 가지되, 말을 먹일 사료는 관(官)에서 지급하게 하소서.

1. 서울의 장수에게는 각각 사복시(司僕寺)의 전마(戰馬) 5필을 주소서.

1.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이에서 도적들이 만약 서로 도계(道界)를 넘어 도피하면, 2도(道)의 주장(主將)이 힘을 합하여 체포하되, 도둑이 만약 충청도(忠淸道)로 도망하여 들어가면 또한 따라가서 체포하되, 충청도의 군사를 쓰고자 하면 충청도의 절도사도 또한 그 명령에 따르게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평양군(平壤君) 박중선(朴仲善)전라도 주장으로 삼고, 행 호군(行護軍) 김치원(金致元)을 부장으로 삼았으며, 문성군(文城君) 유수(柳洙)를 경상도 주장으로 삼고, 행 호군 변포(卞袍)를 부장으로 삼았다. 박중선유수 등에게 내린 교서에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전라도와 경상도 등지에서 불령(不逞)한 무리들이 저희끼리 불러 모아서 무리를 이루어 도둑질을 하되, 양민을 도둑질하여 해를 입히고 산과 들로 도망하여 달아나면서 관군을 맞아 맞선다고 하니, 이제 마땅히 그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경(卿)들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체포하게 하니, 죽임으로써 죽음을 그치게 하는 것이지마는,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느냐? 경들의 재량으로 처결할 수 있는 사항을 조목별로 다음에 열거하였으니, 경들은 가서 성심껏 시행하라.

1. 군사를 쓸 때에 부장(副將) 이하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군법(軍法)으로 다스리라.

1. 적도(賊徒)들이 만약 관군(官軍)을 맞아서 대적하면 기회를 보아서 체포하여 죽이되, 자수(自首)하는 자와 협종(脅從)한 자는 수금(囚禁)하고 계문(啓聞)하라.

1. 군민(軍民) 가운데 도적을 포획(捕獲)한 자에게는 관직(官職)으로 상을 주되 세 자급(資級)을 뛰어올리고, 포(布)로 상을 원하는 자는 면포(綿布) 1백 필을 주고, 천구(賤口)는 천역(賤役)을 면제시키고, 향리(鄕吏)와 역자(驛子)는 그 역(役)을 면제시키는 등 논공(論功)하는 등제(等第)는 다 적군을 사로잡은 것과 같이 하라.

1. 도둑이 만일 있는 곳을 고하여 잡게 되면 그 죄를 면하고, 포상도 보통 사람과 같이 하라.

1. 부녀(婦女)와 노약자(老弱者)는 죽이지 말고 가두어 두고서 아뢰라."

하였다. 또 전라도와 경상도의 관리와 군인, 백성들에게 고유하여 이르기를,

"내가 듣건대, 적도들이 도둑질의 이익을 보고 산과 들에 몰래 모이니, 우매한 백성이 혹은 기한(飢寒)으로 인하여, 혹은 역(役)을 피하기 위하여, 서로 모여서 무리를 이루어 백성의 집을 분탕(焚蕩)하고 자녀(子女)를 노략질하며, 안 가는 곳 없이 설치고 다니면서 마침내 관군을 맞아서 대적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제 장수를 보내고 군사를 일으켜 체포하게 하였는데, 자수하는 자와 도둑에게 협종한 자는 관군이 수금(囚禁)하여 보고하면, 내가 장차 용서하겠다. 그러나 만일 감히 맞서는 자가 있으면 군사로 하여금 때에 따라서 잡아 죽이도록 하고, 적도 가운데 스스로 〈관군에 내응하여〉 적당(賊黨)을 서로 고하여 체포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죄를 사면하고 포상은 보통 사람들과 같이 할 것이니, 그것을 속히 방을 걸어서 널리 유시하여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전화위복(轉禍爲福)하게 하라. 관리와 군인과 백성이 능히 도둑을 체포하는 자는 관직으로 상을 주되, 세 자급을 뛰어올려 제수하고, 상을 원하는 자는 면포 1백 필을 주고, 천구(賤口)에게는 천역을 면제하고, 향리와 역자는 역을 면제하는 등 논공(論功)하는 등제(等第)는 다 적군을 사로잡은 것과 같이 하겠다. 혹 적과 통모(通謀)하여 관군의 일을 누설(漏洩)하거나, 혹은 도적의 체포를 태만히 하는 자는 마땅히 군법으로써 다스릴 것이니, 너희들은 각각 살피도록 하라."

하였다. 처음에 무안(務安) 사람 장영기(張永己)라는 자가 무뢰(無賴)한 도당 1백여 인을 불러 모아,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도둑질을 하니, 그의 의물(儀物)이 재상(宰相)과 비등하였다. 길 가는 사람을 만나면 즉석에서 죽이고 재물을 탈취하였으며, 일찍이 초옥(草屋) 20여 간을 지리산(智異山)에 지어, 낮에는 집에 모이게 하고 밤이면 모든 도적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 보내어, 불을 지르고 재물을 겁탈하였다. 이후로는 백주에도 거리낌없이 활동하여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즉각 죽이니, 사람들이 그의 도당이 오는 것을 보면 집안 재물을 모두 주어서라도 죽음을 모면하기를 바랐다. 수령(守令)이 관군을 거느리고 여러 차례 그들과 싸웠으나, 번번이 불리하였으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길에서 끊어졌다. 장영기는 장건(壯健)하기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으며, 또 꾀가 많았다. 행동이 하도 재빨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가 없었으며, 대군(大軍)이 뒤를 쫓아도 또한 잡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장영기는 더욱 날뛰어 감히 누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절도사(節度使) 허종(許琮)이 한 도의 병마(兵馬)를 전제(專制)하면서도 겁을 먹고 능히 제압하지 못하고, 장영기를 범과 같이 두려워하여 도둑으로 하여금 세력이 커져 경군(京軍)을 괴롭히기에 이른 것이다. 뒤에 장영기가 장흥 부사(長興府使) 김순신(金舜臣)에게 잡혔는데, 김순신을 가선 대부(嘉善大夫)의 자급에 특진시키도록 명하고, 나머지 유공자들도 공을 논하여 차등이 있게 상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8책 425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정론(政論)

  • [註 957]
    유옥 교자(有屋轎子) : 휘장을 치고 뚜껑을 덮은 가마.

○癸酉/刑曹判書姜希孟啓, 全羅慶尙道盜賊肆行。 命召院相等, 議捕賊事宜。 領議政洪允成啓曰: "臣聞全羅地面, 賊盜嘯聚剽竊。 寶城郡守, 使內禁衛宣尙謹爲捕盜監考, 尙謹追賊, 遇乘有屋橋子者, 稱晋州牧使室內, 尙謹等知其爲賊, 欲捕之, 賊殺尙謹等三人, 斷其頭而去。 咸平縣宋佐郞者, 欲迎壻, 隔數日, 賊徒來攻, 取女子而去。 今賊徒移屯慶尙道 晋州花開薩川等處, 求禮縣監, 追逐未捕。 今若不除, 勢將滋蔓難制。 前朝之季, 號爲寇而草竊者頗多, 今此捕賊, 不可緩也。" 上曰: "何以處之?" 允成等對曰: "可遣將帥有重望者, 捕之。" 上曰: "與諸院相共議以啓。" 高靈君 申叔舟靈城君 崔恒昌寧君 曺錫文、左議政尹子雲、都承旨權瑊允成希孟共議, 草事目以啓: "一, 全羅慶尙道, 各主將副將各一人, 各率京軍官十五人, 從事官一人。 一, 各其道節度使, 聽京將節度。 一, 京軍官乘傳, 各持私戰馬, 官給草料。 一, 京將各給司僕寺戰馬五匹。 一, 全羅慶尙之間, 賊若互相逃避, 二道主將, 幷力捕之。 賊若逃入忠淸道, 則亦追捕之, 欲用忠淸道軍士, 則忠淸道節度使亦聽令。" 從之。 以平陽君 朴仲善全羅道主將, 行護軍金致元副之; 文城君 柳洙 慶尙道主將, 行護軍卞袍副之。 賜仲善等敎曰:

予聞全羅慶尙等道, 不逞之徒, 嘯聚成群, 剽竊爲盜, 賊害良民, 逃竄山野, 邀拒官軍, 今宜痛絶根株。 遣卿領軍往捕之, 殺以止殺, 豈得已哉? 所行便宜, 條列于後, 卿往欽哉! 一, 用兵時, 副將以下, 不用命者, 軍法從事。 一, 賊徒若拒敵官軍, 臨機捕殺, 自首者脅從者, 囚禁啓聞。 一, 軍民能捕獲者, 賞職超三資, 願賞布者, 給綿布一百匹, 賤口免賤, 鄕吏、驛子免役, 論功等第, 悉如獲敵。 一, 盜賊如能自中告捕者, 免罪, 賞同凡人。 一, 婦女老弱, 勿殺囚啓。

又諭全羅慶尙道官吏軍人民等曰:

予聞賊徒利於剽竊, 潛聚山野, 愚惑之民, 或因飢寒, 或因避役, 相聚爲群, 焚蕩民居, 掠竊子女, 無所不至, 以至拒敵官軍。 今遣將動兵捕之, 其自首者脅從者, 囚禁以聞, 予將論恕。 如或敢拒者, 令臨機捕殺。 賊中有能自相告捕者, 免其罪, 賞與凡人同。 其速張牓通諭, 使愚民轉禍爲福。 官吏軍民, 能捕獲者, 賞職超三資, 願賞布者, 給綿布一百匹, 賤口免賤, 鄕吏、驛子免役, 論功等第, 悉如獲敵。 其或漏洩通謀, 或慢於捕賊者, 當以軍法治之, 爾等各宜審之。

初, 務安人 張永己者, 嘯聚無賴之徒百餘人, 草竊于慶尙全羅道, 儀物擬於宰相。 遇行者輒殺以取貨, 嘗搆草屋二十餘間于智異山, 晝聚於屋, 夜則分遣諸盜, 縱火怯奪財物。 自後雖白晝益肆, 有違者立殺之, 人望見其徒來, 則罄家財與之, 冀得免死。 守令率官軍, 累戰皆不利, 行者路絶。 永己壯健絶人, 且多謀, 往來倐忽, 莫知所之, 大軍迹之, 亦未擒獲。 由是永己益橫, 莫敢誰何。 節度使許琮, 專制一道兵馬, 怯不能制, 畏永己如虎, 令賊滋蔓, 至勞京軍。 後永己長興府使金舜臣所獲, 命特進舜臣嘉善, 餘各論賞有差。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8책 425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