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관이 평안도로부터 돌아와서 민폐를 조목별로 올린 것을 의논하게 하다
이 먼저 능성군 구치관(具致寬)이 평안도로부터 돌아와서 민폐(民弊)를 조목(條目)별로 올렸는데, 임금이 원상(院相)·의정부·육조(六曹)의 참판 이상으로 하여금 적당한가 아니한가를 의논하게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의논하여 아뢰었다.
제1조는, ‘이 먼저는 기병(騎兵)과 보병(步兵)의 겨울철 방수(防戍)를 한 달씩 바꾸었는데 지금은 넉 달씩 서로 바꾸게 하니, 예전대로 겨울에는 한두 달씩 서로 바꾸고 여름에는 방수에 나가지 말고 농사를 짓게 할 것.’이라는 일이었다. 고령군 신숙주(申叔舟)·영의정 한명회(韓明澮)·영성군 최항(崔恒)·인산군 홍윤성(洪允成)·창녕군 조석문(曹錫文)·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형조 판서 강희맹(姜希孟)·예조 판서 임원준(任元濬)·병조 판서 박중선(朴仲善)·이조 판서 홍응(洪應)·공조 판서 양성지(梁誠之)·병조 참판 신승선(愼承善)·호조 참판 정난종(鄭蘭宗)·공조 참판 성윤문(成允文)·예조 참판 이승소(李承召)·형조 참판 윤잠(尹岑) 등이 의논하기를,
"두 달씩 서로 바꾸게 하여 얼음이 얼 때에 방수(防戍)에 나가게 하소서."
하였다.
제2조는, ‘군사의 조정(助丁)253) 은 솔거 노비(率居奴婢)·고인(雇人) 및 전토(田土)를 아울러 계산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청컨대 예전대로 하소서."
하였다.
제3조는, ‘요동(遼東)의 영송군(迎送軍)과 호송군(護送軍)이 통사(通事)의 사사로이 가진 무역 잡물(貿易雜物)을 아울러 운반하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근래에 검찰(檢察)이 해이하니, 청컨대 사헌부로 하여금 거듭 밝히게 하소서."
하였다.
제4조는, ‘이제 상정(詳定)한 세공 군기(歲貢軍器)를 모두 민간에서 거두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한명회·최항·홍윤성·조석문·노사신·박중선·정난종 등이 의논하기를,
"병기(兵器)는 본래부터 방물 진상(方物進上)이 있고, 또 군기시(軍器寺)에서 연례(年例)로 만드는 것이 있어서 쌓인 것이 오래고 많으며, 또 흉년이 들고 요역(徭役)도 많은데 본읍(本邑)의 월과(月課)254) 및 상납(上納)할 군기 만드는 물건을 일체 백성에게서 거두므로 날마다 더욱 조폐(凋弊)하니, 본도(本道)는 2년을 기한하여 우선 정지하고 다른 도에도 5분의 1을 감하소서."
하였다.
제5조는, ‘말이 없는 군사에게 도마(島馬)를 나누어 주는데, 만약 말이 늙어서 죽는 것은 준징(准徵)255) 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일이었다. 한명회가 의논하기를,
"이 먼저 자원하여 관마(官馬)를 받은 자가 그 말이 늙거나 죽으면 모두 그 값에 따라 바꾸어 충용(充用)하게 하였는데, 공사(公私)에서 모두 편하다고 하였으니, 청컨대 예전대로 하소서."
하였다.
제6조는, ‘삼도 절도사(三道節度使)를 다시 한 도(道)로 합할 것.’이라는 일이었다. 신숙주·한명회·최항·홍윤성·조석문·노사신 등이 의논하기를,
"서도 절도사(西道節度使)는 의주 목사(義州牧使)를 겸하고, 동도 절도사(東道節度使)는 영변 부사(寧邊府使)를 겸하게 하소서."
하였다.
제7조는, ‘부방 군사(赴防軍士)는 두 차례 정벌(征伐)에 종사하였는데, 가자(加資)와 당번(當番)으로 서용(敍用)할 때에 고신(告身)을 모두 받지 못하였으니, 적당하지 못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병조(兵曹)로 하여금 속히 주게 하소서."
하였다.
제8조는, ‘갑사(甲士)들은 비록 당번일지라도 모름지기 체아직(遞兒職)을 받아야 녹(祿)을 주도록 허락하였으니, 청컨대 예전대로 당번이 되면 모두 다 녹을 주게 할 것.’이라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상정소(詳定所)로 하여금 녹수(祿數)를 상고하게 하고, 양계(兩界)는 예전대로 하소서."
하였다.
제9조는, ‘예차 갑사(預差甲士) 등은 비록 군공(軍功)이 있거나 혹은 사만(仕滿)이 되었을지라도 실제 갑사(甲士)의 벼슬을 받지 못하니, 적당하지 못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병조로 하여금 속히 상고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하였다.
제10조는, ‘도내(道內)의 인민이 양식을 싸가지고 서울에 올라가서 종사(從仕)하기가 어려우니, 곡식을 소재지의 고을 창고에 바치게 하여 서울에서 바꾸어 받게 할 것.’이라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회환(回換)256) 하면 반드시 폐단이 생길 것이니, 허락하지 않는 것이 편합니다."
하였다.
제11조는, ‘이제 평양(平壤)·영변(寧邊)·의주(義州)·강계(江界) 등의 고을에서는 지인(知印)·주사(主事)·육방(六房)·대부(隊副)·대장(隊長) 등의 거관 체아직(去官遞兒職)을 혁파(革罷)하여 전공(前功)을 헛되게 버리게 되었으므로 진실로 가여우니, 청컨대 예전대로 두거나 그렇지 않으면 산관(散官) 벼슬을 제수할 것.’이라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예전의 수대로 하는 것이 편합니다."
하였다.
제12조는, ‘관군(館軍) 등이 대소 사객(大小使客)을 맞이하고 보낼 때에 사람과 말의 음식물과 사료를 여러 고을에서 이바지하지 아니하니, 적당하지 못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구례(舊例)에 따라 사람과 말의 음식물과 사료를 주도록 하소서."
하였다.
제13조는, ‘참마(站馬)의 분전(分田)은, 전에는 상등(上等)은 전지(田地) 9결(結)을 주고, 중등(中等)은 7결, 하등(下等)은 5결을 주었었는데, 지금은 상등은 7결, 중등은 5결 50부(負), 하등은 4결로 하였으니, 적당하지 못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이미 법을 세웠으니, 고치지 않는 것이 편합니다."
하였다.
제14조는, ‘이 먼저 합배(合排)257) 에 왕래하는 사객(使客)의 초료(草料)와 죽반(粥飯)은 군자(軍資)를 써서 지공(支供)하였는데, 지금은 비록 공수전(公須田)을 두었으나 아직 절급(折給)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여러 군호(軍戶)에서 거두어 지공하니, 적당하지 못하다.’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합배는 다른 역(驛)의 예(例)와 같지 아니하니, 예전대로 군자(軍資)를 써서 지공하소서."
하였다.
제15조는, ‘여러 고을의 공물(貢物)을 고르지 못하게 나누어 정하였으니, 각각 생산하는 바를 옮겨서 정할 것.’이라는 일이었고, 제16조는, ‘강변의 여러 고을은 노루와 사슴이 드물고 적은데, 내지(內地)의 예(例)로써 나누어 정하였으므로, 부득이 강을 건너서 사냥해 잡으니, 심히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번성할 때까지 노루와 사슴의 공물을 정하지 말게 할 것.’이라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상정소로 하여금 다시 정하게 하소서."
하였다.
제17조는, ‘여러 고을에서 농삿달을 논하지 말고 진법(陣法)을 연습하게 할 것.’이라는 일이었다. 신숙주 등이 의논하기를,
"백성의 생활이 회복될 때까지 한하여 다른 도(道)와 같이 농삿달에는 진법을 익히지 말게 하소서."
하였다. 어서(御書)로 모두 이르기를,
"좋다."
하고, 즉시 해사(該司)에 내려서 시행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8책 34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기(軍器) / 재정-공물(貢物) / 재정-국용(國用)
- [註 253]조정(助丁) : 입역(立役)하는 정군(正軍)의 집을 도와주던 여정(餘丁)을 말함. 즉 봉족(奉足).
- [註 254]
월과(月課) : 각 지방에서 매달마다 군기(軍器)를 만들어 바치던 것을 말함.- [註 255]
준징(准徵) : 죽은 말에 준하여 값을 징수함.- [註 256]
회환(回換) : 장사아치가 변방 지방에 군량미(軍糧米)를 공급하고 환(換)을 받아오면 근기(近畿) 지방에서 미곡(米穀)을 지급하던 제도.- [註 257]
합배(合排) : 조선 초기에 함길도나 평안도의 군사적인 요지에 특별히 설치한 우역촌(郵驛村). 매 합배마다 15호(戶)를 붙였으며, 경작할 땅이 없기 때문에 그 민호에게는 요역(徭役)을 면제하였음.○先是, 綾城君 具致寬回自平安道, 條民弊以進。 上令院相、議政府、六曹參判以上, 議便否, 至是議啓。 第一條: 前此騎步兵冬節防戍, 一朔而遞, 今則四朔相遞, 依舊冬則一二朔相遞, 夏則勿赴防戍, 農作事。 高靈君 申叔舟、領議政韓明澮、寧城君 崔恒、仁山君 洪允成、昌寧君 曺錫文、戶曹判書盧思愼、刑曹判書姜希孟、禮曹判書任元濬、兵曹判書朴仲善、吏曹判書洪應、工曹判書梁誠之、兵曹參判愼承善、戶曹參判鄭蘭宗、工曹參判成允文、禮曹參判李承召、刑曹參判尹岑等議: "二朔相遞, 合氷時赴防。" 第二條: 軍士助丁, 以率居奴婢、雇人及土田幷計不便事。 叔舟等議: "請仍舊。" 第三條: 遼東迎護送軍, 幷輸通事私齎貿易雜物不便事。 叔舟等議: "近來檢察陵夷, 請令司憲府申明。" 第四條: 今詳定歲貢軍器, 皆收民間不便事。 叔舟、明澮、恒、允成、錫文、思愼、仲善、蘭宗等議: "兵器自有方物進上, 又有軍器寺年例造作, 積久自多, 且年比不登, 徭役又繁, 本邑月課及上納軍器所造之物, 一切斂民, 日益凋弊, 本道限二年姑停, 他道亦減五分之一。" 第五條: 無馬軍士, 分給島馬, 若老而物故者, 準徵不便事。 明澮議: "前此自願受官馬者, 其馬或老或死, 皆隨直易換充用, 公私皆便, 請依舊。" 第六條: 三道節度使, 復合一道事。 叔舟、明澮、恒、允成、錫文、思愼等議: "西道節度使兼義州牧使, 東道節度使兼寧邊府使。" 第七條: 赴防軍士, 兩度從征, 加資及當番敍用時告身, 竝不得受不便事。 叔舟等議: "令兵曹速給。" 第八條: 甲士等雖當番, 須受遞兒職, 方許給祿, 請依舊當番, 則擧皆給祿事。 叔舟等議: "令詳定所考祿數, 兩界依舊。" 第九條: 預差甲士等, 雖有軍功, 或仕滿而不得受實甲士職不便事。 叔舟等議: "令兵曹速考施行。" 第十條: 道內人民, 裹糧就京, 從仕爲難, 令納粟于所在邑倉, 換受于京事。 叔舟等議: "回換必生弊, 勿許爲便。" 第十一條: 今革平壤、寧邊、義州、江界等邑, 知印、主事、六房、隊副、隊長等去官遞兒職, 虛棄前功, 誠可憐悶, 請依舊, 不爾則敬官職除授事。 叔舟等議: "依舊數爲便。" 第十二條: 館軍等, 大小使客迎送時人馬料, 諸邑不供不便事。 叔舟等議: "從舊例給人馬料。" 第十三條: 站馬分田, 在前上等給田九結, 中等七結, 下等五結, 今者上等七結, 中等五結五十負, 下等四結不便事。 叔舟等議: "已立法, 勿改爲便。" 第十四條: 前此合排往來使客草料粥飯, 用軍資支供, 今者雖置公須田, 尙不折給, 故收諸軍戶支供不便事。 叔舟等議: "合排非他驛例, 依舊用軍資支給。" 第十五條: 諸邑貢物不均分定, 各以所産移定事。 第十六條: 江邊諸邑獐鹿稀少, 例以內地分定, 不得已渡江獵獲, 甚不可。 請限阜盛, 勿定獐鹿事。 叔舟等議: "令詳定所更定。" 第十七條: 諸邑不論農月習陣事。 叔舟等議: "限民生蘇復, 幷他道農月勿習陣。" 御書皆曰: "可。" 卽下該司, 行之。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8책 34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기(軍器) / 재정-공물(貢物) / 재정-국용(國用)
- [註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