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대왕의 존호와 시호를 속히 정할 것을 전교하다
원상(院相) 영성군(寧城君) 최항(崔恒)과 도승지 권감(權瑊)에게 전교하기를,
"대행 대왕의 존호(尊號)를 미처 올리지 못하고 갑자기 승하하시니, 추도(追悼)하는 마음이 망극하여 이제 시호(諡號)를 속히 올리고자 한다. 예전에는 달을 지나서 시호를 정하였는데, 이는 비록 아들이 그 어버이를 죽은 것으로 하지 아니하는 뜻이나 이미 염빈(斂殯)을 하였으니, 이제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속히 존시(尊諡)를 올리는 것이 태비와 나의 지극한 소원이다."
하니, 최항이 대답하기를,
"옛 제도를 상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그것을 속히 의정부 당상과 일찍이 정승을 지낸 이와 육조(六曹)의 참판 이상을 불러서 회의하라."
하니, 드디어 의논하여 계달하기를,
"묘호(廟號)는 신종(神宗)·예종(睿宗)·성종(聖宗) 중에서, 시호는 열문 영무 신성 인효(烈文英武神聖仁孝)로, 혼전(魂殿)은 영창(永昌)·장경(長慶)·창경(昌慶) 중에서, 능호(陵號)는 경릉(景陵)·창릉(昌陵)·정릉(靖陵) 중에서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보고 권감으로 하여금 묻게 하기를,
"승천 체도(承天體道) 네 글자는 본래 존호(尊號)인데, 내게 이르기를 그대로 한다고 하였다가 이제 없앴으니, 이는 나를 꾀는 것이다. 저번에 내가 한계희(韓繼禧)에게 이르기를 자수(字數)를 제한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제 여덟 자로만 제한하였으니, 내가 어리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는가?"
하니, 좌우에서 모두 삭연(索然)103) 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좌의정 박원형(朴元亨)이 아뢰기를,
"승천 체도 네 글자는 헛된 것 같기 때문에 신이 참으로 의논하여 없앴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행 대왕께서 재조(再造)104) 한 공덕은 일국의 신민으로 누가 알지 못하겠는가? 묘호(廟號)를 세조(世祖)라고 일컬을 수 없는가?"
하니,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 등이 아뢰기를,
"여덟 글자는 신 등이 감히 제한한 바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 조종(祖宗)의 시호가 모두 4자·6자·8자에 그쳤기 때문에 이를 모방하여 의논한 것입니다. 세조는 우리 조종에 세종(世宗)이 있기 때문에 감히 의논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漢)나라 때에 세조가 있고 또 세종이 있었는데, 이제 세조로 하는 것이 어찌 거리낌이 있겠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이는 신 등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한계희가 재차 신 등에게 이르기를, ‘어찌 여덟 자로 한정할 것인가?’ 하였으나, 상교(上敎)라고 전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성상의 뜻을 알지 못하였으니, 대죄(待罪)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한계희가 또 아뢰기를,
"신이 명백하게 전하지 못하였으니, 신도 대죄하겠습니다."
하였다. 한참 있다가 중관(中官)에게 술을 대접하도록 명하고 다시 의논하여 고쳐서 계달하게 하였다. 시호를 ‘승천 체도 지덕 융공 열문 영무 성신 명예 인효 대왕(承天體道至德隆功烈文英武聖神明睿仁孝大王)’으로 하고, 묘호는 ‘세조(世祖)’로 하여 권감이 계달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인효(仁孝) 위에 의숙(懿肅)을 더하고, 능호(陵號)는 태릉(泰陵)으로, 전호(殿號)는 영창(永昌)으로 하라."
하고, 인하여 대죄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8책 27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傳于院相寧城君 崔恒及都承旨權瑊曰: "大行大王尊號, 未及加上, 遽爾賓天, 追悼罔極, 今欲速上諡號。 古者踰月而定諡, 此雖人子不死其親之意, 然旣已斂殯, 今復何言? 速上尊諡, 此太妃及予之至願也。" 恒對曰: "當考古制。" 傳曰: "其速召議政府堂上、曾經政丞、六曹參判以上, 會議以啓。" 遂議啓: "廟號曰神宗、睿宗、聖宗, 諡號曰烈文英武神聖仁孝, 魂殿曰永昌、長慶、昌慶, 陵號曰景陵、昌陵、靖陵。" 上覽之, 令瑊問曰: "承天體道四字, 本尊號也, 而謂予曰仍之, 乃今除去, 是誘我也。 向予謂韓繼禧曰: ‘勿限字數。’ 今乃只限八字, 以予爲幼沖而若是耶?" 左右皆索然, 無以對。 左議政朴元亨啓曰: "承天體道四字, 似爲虛也, 故臣實議除。" 上曰: "大行大王再造功德, 一國臣民, 夫誰不知? 廟號不得稱爲世祖乎?" 河東君 鄭麟趾等曰: "八字則臣等非所敢限。 我國祖宗諡號, 率用四字、六字、八字而止, 故倣此而議。 世祖則我朝有世宗, 故未敢擬議。" 上曰: "漢時旣有世祖, 又有世宗, 今稱世祖何妨?" 僉曰: "此則臣等未及思之。 且繼禧再謂臣等曰: ‘何限八字?’ 然不以上敎傳之, 故未會上意, 請待罪。" 繼禧亦曰: "臣未明白宣傳, 臣亦待罪。" 俄而命中官饋酒, 令更議之改啓。 諡曰承天體道至德隆功烈文英武聖神明睿仁孝大王, 廟號曰世祖。 瑊以啓, 上曰: "仁孝上加懿肅, 陵號曰泰陵, 殿號曰永昌。" 仍命勿待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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