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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실록 1권, 예종 즉위년 9월 7일 계해 2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세자가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내리다

세조수강궁(壽康宮)으로 이어(移御)하였다. 병이 점점 위중하니, 예조 판서 임원준(任元濬)을 불러서 전교하기를,

"내가 세자에게 전위(傳位)하려 하니, 모든 일을 준비하라."

하니, 임원준이 나가서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좌의정(左議政) 박원형(朴元亨)·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산양군(山陽君) 강순(康純)·창녕군(昌寧君) 조석문(曹錫文)·우의정(右議政) 김질(金礩)·좌찬성(左贊成) 김국광(金國光)에게 고하였다. 정인지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병환이 점점 나아가시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자리를 내어 놓으려고 하십니까? 신 등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므로 임원준이 이를 아뢰니, 세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운(運)이 다하면 영웅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너희들이 나의 하고자 하는 뜻을 어기니, 이는 나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하고, 내시(內侍)로 하여금 면복(冕服)001) 을 가져오게 하여 친히 세자에게 내려 주니, 세자가 굳이 사양하였으나 할 수 없었다. 임원준이 임금의 뜻을 돌이키지 못할 것을 알고 나가서 여러 재추(宰樞)에게 고하고, 백관을 모아서 의위(儀衛)를 갖추었으며, 날이 저물자 세자가 수강궁(壽康宮) 중문(中門)에서 즉위(卽位)하였다. 백관들이 하례하고 경내(境內)를 사유(赦宥)하였는데, 그 교서(敎書)는 이러하였다.

"내가 덕이 부족한 몸으로서 일찍이 세자의 자리에 있어 오직 뜻을 공경히 이어 받들지 못함을 두려워하였는데, 성화(成化) 4년002) 9월 초7일에 부왕(父王) 전하께서 명을 내리시기를, ‘내가 병이 들어 오랫동안 정사를 보지 못하여 만기(萬幾)의 중함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에 병이 된다. 너에게 중기(重器)003) 를 부탁하고 한가롭게 있으면서 병을 잘 조리하겠다.’ 하시기에, 내가 두세 번 굳이 사양하였으나 할 수 없어서 승락하고, 이날에 마지못해 대위(大位)에 올랐다. 부왕을 높여서 태상왕(太上王)으로 하고 모비(母妃)를 왕태비(王太妃)로 하며, 오직 군국(軍國)의 중한 일은 승품(承稟)004) 하여 행하겠다. 돌아보건대 나의 작은 몸으로 큰 자리를 이어받아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오직 조심하였을 뿐인데, 여러 신하들의 한 마음으로 도움에 힘입어 어렵고 큰 명(命)을 저버림이 없기를 바란다. 이 처음 일을 당하여 너그럽고 어짐을 펴는 것이 마땅하므로, 이달 초7일 매상(昧爽) 이전으로부터 십악(十惡)005) 과 강도(强盜)를 제외하고는 모두 용서하여 면제한다. 아아! 이미 무궁한 역수(歷數)를 이었으니, 여러 신민과 함께 새로워질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6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註 001]
    면복(冕服) : 제왕(帝王)의 정복. 곧 면류관(冕旒冠)과 곤복(袞服).
  • [註 002]
    성화(成化) 4년 : 1468 세조 14년.
  • [註 003]
    중기(重器) : 임금의 자리.
  • [註 004]
    승품(承稟) : 물어서 명령에 따름.
  • [註 005]
    십악(十惡) : 《대명률(大明律)》에 정한 열 가지의 큰 죄. 《당률소의(唐律疏義)》에 의하면, 모반(謀反)·모대역(謀大逆)·모반(謀叛)·악역(惡逆)·부도(不道)·대불경(大不敬)·불효(不孝)·불목(不睦)·불의(不義)·내란(內亂)을 말하는데, 사유(赦宥)에서 제외되었음.

世祖移御于壽康宮。 疾大漸, 召禮曹判書任元濬, 傳曰: "予欲傳位世子, 其辦諸事。" 元濬出以告河東君 鄭麟趾高靈君 申叔舟上黨君 韓明澮綾城君 具致寬、左議政朴元亨仁山君 洪允成山陽君 康純昌寧君 曺鍚文、右議政金礩、左贊成金國光麟趾等啓曰: "上疾漸就平痊, 奈何遽欲釋位? 臣等以爲不可。" 元濬以啓; 世祖怒曰: "運去英雄不自由, 汝等違予志欲, 是趣予死也。" 令內侍取冕服, 親賜世子, 世子固辭不獲。 元濬知上意不可回, 出告諸宰, 會百官備儀衛, 日晡世子卽位於壽康宮中門。 百官稱賀, 赦境內。 敎曰:

予以涼德, 夙忝儲位, 唯不克祇承是懼。 乃於成化四年九月初七日, 父王殿下命云: ‘予罹疾疹, 久不視事, 載念萬幾之重, 益疚于懷。 付汝重器, 居閑養疾。’ 予固辭再三, 不獲兪允, 以是日勉登大位。 尊父王曰太上王, 母妃曰王太妃, 惟是軍國重事, 承稟乃行。 顧予微末, 叨襲丕基, 怵惕惟厲, 尙賴群臣, 同心夾輔, 無負艱大之命。 屬玆初服, 宜布寬仁, 自今月初七日昧爽以前, 除十惡及强盜外, 咸宥除之。 於戲! 旣嗣無疆之歷, 咸與有衆惟新。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6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