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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47권, 세조 14년 9월 7일 계해 1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세자가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하다

임금의 병이 크게 더하니, 예조 판서(禮曹判書) 임원준(任元濬)을 불러 안에 들게 하고 전지(傳旨)하기를,

"내가 장차 세자(世子)에게 전위(傳位)하겠으니, 그에 대한 모든 일을 판비(辦備)하라."

하니, 임원준이 나와서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연성군(延城君) 박원형(朴元亨)·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산양군(山陽君) 강순(康純)·창녕군(昌寧君) 조석문(曹錫文)·상락군(上洛君) 김질(金礩)·좌찬성(左贊成) 김국광(金國光)에게 고(告)하니, 정인지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병이 점점 평전(平痊)되어 가는데, 어찌 갑자기 석위(釋位)하고자 하십니까? 신(臣) 등은 불가(不可)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였으므로, 임원준이 아뢰니, 임금이 성을 내며 이르기를,

"운(運)이 간 영웅(英雄)은 자유(自由)롭지 못한 것인데, 너희들이 나의 뜻을 어기고자 하느냐? 이는 나의 죽음을 재촉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니, 정인지 등이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임금이 환관(宦官)으로 하여금 경복궁(景福宮)에서 면복(冕服)을 가지고 오게 하여, 친히 세자(世子)에게 내려 주고 즉위(卽位)하게 하였다. 임원준이 임금의 뜻을 돌이키지 못할 것을 알고 나와서 여러 재추(宰樞)들에게 고하고 의위(儀衛)를 갖추었다. 세자가 드디어 수강궁(壽康宮) 중문(中門)에서 즉위하고서 백관(百官)의 하례(賀禮)를 받고 반사(頒赦)하였다. 그 교서(敎書)에 이르기를,

"나는 양덕(涼德)455) 으로써 일찍이 저위(儲位)456) 를 욕되게 하며 오직 잘 공손히 계승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였더니, 성화(成化) 4년457) 9월 7일에 부왕 전하(父王殿下)께서 명하여 이르기를, ‘내가 병에 걸리어 오래도록 정사(政事)를 보지 못하였는데, 만기(萬機)의 중함을 생각하니, 마음에 더욱 근심되어 너에게 중기(重器)458) 를 부탁하고, 한가히 거처(居處)하며 병을 치료하겠다.’고 하시었으므로 나는 두번 세번 굳이 사양하였으나 유윤(兪允)을 얻지 못하고, 이날 마지못하여 수강궁(壽康宮)에서 대위(大位)에 올랐다. 부왕(父王)을 높이어 태상왕(太上王)이라 이르고, 모비(母妃)를 왕태비(王太妃)라 이를 것이며, 오직 군국(軍國)의 중요한 일은 명을 받들어 행할 것이다. 나의 미말(微末)함을 돌아보건대 외람되게 비기(丕基)를 이어받았으나,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오직 힘쓰고 오히려 군신(群臣)이 마음을 함께하여 협보(夾輔)하는 데에 힘입으면 어렵고 큰 명(命)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에 초복(初服)459) 에 관인(寬仁)함을 선포(宣布)하니, 이달 9일 새벽 이전부터 모반(謀反)·대역(大逆)·모반(謀叛), 자손(子孫)으로서 조부모(祖父母)나 부모(父母)를 구매(敺罵)한 것, 처첩(妻妾)으로서 지아비를 모살(謀殺)한 것, 노비(奴婢)로서 주인을 모살한 것, 고독(蠱毒)·염매(魘魅)한 것, 고의로 살인(殺人)을 한 것과 다만 강도(强盜)를 범한 자를 제외(除外)하고, 이미 발각되었거나, 아직 발각되지 아니하였거나 이미 결정했거나, 아직 결정하지 아니하였거나 모두 이를 용서하여 면제한다. 아아! 이미 무강(無强)한 역사를 이어받았으니, 모든 유중(有衆)460) 과 더불어 유신(惟新)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10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註 455]
    양덕(涼德) : 엷은 덕.
  • [註 456]
    저위(儲位) : 세자의 지위.
  • [註 457]
    성화(成化) 4년 : 1468 세조 14년.
  • [註 458]
    중기(重器) : 임금의 자리.
  • [註 459]
    초복(初服) : 처음으로 정치를 잡고 교화를 베풂.
  • [註 460]
    유중(有衆) : 백성.

○癸亥/上疾大漸, 召禮曹判書任元濬入內, 傳曰: "予將傳位世子, 其辦諸事。" 元濬出以告河東君 鄭麟趾高靈君 申叔舟綾城君 具致寬上黨君 韓明澮延城君 朴元亨仁山君 洪允成山陽君 康純昌寧君 曺錫文上洛君 金礩、左贊成金國光麟趾等啓曰: "上疾漸就平痊, 乃何遽欲釋位? 臣等以爲不可。" 元濬以啓, 上怒曰: "運去英雄不自由, 汝等欲違予志? 是欲促我死也。" 麟趾等罔知所爲。 上已令宦官, 取冕服於景福宮, 親賜世子, 令卽位。 元濬知上意不可回, 出告諸宰, 備儀衛。 世子遂卽位於壽康宮中門, 受百官賀, 頒赦。 其敎曰:

予以涼德, 夙忝儲位, 惟不克祇承是懼。 乃於成化四年九月初七日, 父王殿下命云: "予罹疾疹, 久不視事, 載念萬幾之重, 益疚于懷, 付汝重器, 居閑養疾。" 予固辭再三, 不獲兪允, 以是日勉登大位於壽康宮。 尊父王曰太上王, 母妃曰王太妃, 惟是軍國重事, 承稟乃行。 顧予微末, 叨襲丕基, 怵惕惟厲, 尙賴群臣同心夾輔, 無負艱大之命。 屬玆初服, 宜布寬仁。 自今月初九日昧爽以前, 除謀反、大逆、謀叛、子孫敺罵祖父母父母、妻妾謀殺夫、奴婢謀殺主、蠱毒魘魅、謀故殺人、但犯强盜外, 已發覺未發覺, 已結正未結正, 咸宥除之。 於戲! 旣嗣無强之歷, 咸與有衆惟新。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10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