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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47권, 세조 14년 9월 6일 임술 3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계유년의 난신에 연좌된 사람들을 방면하다

계유년(癸酉年)450) 의 난신(亂臣)에 연좌(緣坐)된 사람으로 외방 종편(外方從便)한 자인 대정(大丁)의 숙부(叔父) 김타내(金他乃), 정관(鄭冠)의 숙부(叔父) 정순우(鄭純祐), 안우(安祐)의 서얼(庶孽) 조카 즉금오무지(則金吾無只), 장귀남(張貴南)의 숙부(叔父) 장말손(張末孫), 봉여해(奉汝諧)의 서얼 숙부(叔父) 봉덕생(奉德生), 황선보(黃善寶)의 조카 황장생(黃張生)·숙부(叔父) 황신(黃信), 황의헌(黃義軒)의 조카 황말동(黃末同)·황옥중(黃玉中)·황근중(黃謹中)·황철수(黃哲守), 정효전(鄭孝全)의 조카 정흥생(鄭興生), 조순생(趙順生)의 조카 조섬(趙銛), 정분(鄭苯)의 조카 정세존(鄭世存)·정옥수(鄭玉守)·정효동(鄭孝同)·정옥동(鄭玉同), 박계우(朴季愚)의 조카 박팽로(朴彭老), 김연(金衍)의 조카 김의동(金義同), 조완규(趙完圭)의 조카 조가마이(趙加麻耳)·조삼원(趙三元), 조번(趙藩)의 조카 조영달(趙永達), 식배(植培)의 조카 마질동(馬叱同)·개질동(介叱同)·우질동(牛叱同)·영산(永山)·명산(命山), 중은(仲恩)의 조카 개질동(介叱同), 원구(元矩)의 숙부 원미(元美)·원익달(元益達), 고덕칭(高德稱)의 조카 고중규(高仲規)·고석동(高石同)·고만동(高萬同)·고광대(高光大), 김종서(金宗瑞)의 조카 김영덕(金永德)·김무적(金無適)·김명찰(金明察), 윤처공(尹處恭)의 조카 윤상좌(尹上佐)·윤제(尹濟)·윤빈(尹濱), 이명민(李命敏)의 조카 이맹준(李孟準)·이은동(李銀同)·이은철(李銀哲)·이흥조(李興祖)·이영조(李榮祖)·이철동(李哲同)·이환승(李煥昇)·이연동(李年同)·이말손(李末孫)·이오을(李吾乙)·이미동(李未同)·이잉질동(李芿叱同)·이중동(李仲同), 이현로(李賢老)의 숙부(叔父) 이순지(李順之), 이경유(李耕㽥)의 조카 이유한(李維漢)·이말동(李末同)·이계동(李季同)·이엄(李儼)·이석동(李石同)·이말동(李末同)·이세중(李世中)조충손(趙衷孫)과 공신(功臣)의 집에 급부(給付)되어 계집종이 된 자인 장귀남의 누이 학비(鶴非)·말비(末非), 황선보의 누이 소사(召史), 조완규의 누이 정정(精正), 중은의 누이 귀덕(貴德), 원구(元矩)의 누이 심이(心伊), 양옥(梁玉)의 누이 의비(義非), 김유덕(金有德)의 누이 막장(莫莊), 황귀존(黃貴存)의 누이 후존(厚存)·윤존(閏存)과 여러 고을에 안치(安置)된 자인 원구의 조카 원효손(元孝孫), 고덕칭(高德稱)의 조카 고맹규(高孟規), 최노(崔老)의 누이 내은이(內隱伊)·내은덕(內隱德)병자년(丙子年)451) 난신(亂臣)에 연좌된 사람으로 내외방(內外方)에 종편(從便)한 자인 조청로(趙淸老)의 숙부(叔父) 조수산(趙壽山)·조강산(趙江山), 조카 조우질동(趙牛叱同)·조천동(趙千同), 하위지(河緯地)의 조카 하포(河浦)·하분(河汾)·하귀동(河龜同), 이휘(李徽)의 서얼 숙부(叔父) 이재(李才), 권저(權著)의 조카 권손건(權孫件)·권이동(權伊同)·권막동(權莫同), 이호(李昊)의 조카 이영석(李永石), 박중림(朴仲林)의 조카 박사제(朴斯悌)·박사평(朴斯枰)·박사정(朴斯禎)·박성년(朴成年)·박철수(朴哲守)·박개질동(朴介叱同), 박쟁(朴崝)의 조카 박경손(朴敬孫)·박겸문(朴謙文)·박신문(朴信文)·박수문(朴守文)·박사문(朴思文), 송석동(宋石仝)의 숙부 송인(宋仞), 김문기(金文起)의 서얼 숙부(叔父) 김구수(金仇守)·김개질지(金介叱知), 성승(成勝)의 조카 성만년(成萬年)·성조년(成兆年)·성억년(成億年), 유성원(柳誠源)의 조카 유종금(柳種今)·유연생(柳年生)·유수좌(柳守佐)·유문산(柳文山), 이지영(李智英)의 서얼 숙부 이유(李遺)·이의(李義)성연(成燃)·성소(成炤)·안조술(安祖述)·최맹한(崔孟漢)·최계한(崔季漢)과, 공신(功臣)의 집에 급부(給付)되어 계집종이 된 자인 권저의 누이 소사(召史), 허조(許慥)의 누이 소근(小斤)·소사(召史), 이유기(李裕基)의 서얼 누이 효전(孝全), 최면(崔沔)의 누이 막비(莫非), 권저의 서얼 누이 소사(召史)와, 을유년(乙酉年)452) 난신에 연좌된 사람 안에서 여러 고을에 안치된 자인 김처의(金處義)의 조카 김서각(金犀角)·김문손(金文孫)·김용각(金龍角), 숙부 김효충(金孝忠), 서얼 숙부 김의송(金義松), 최윤(崔潤)의 조카 최효동(崔孝同)·최철산(崔哲山)·최철동(崔哲同)·최수정(崔水丁), 봉석주(奉石柱)의 숙부 봉안당(奉安唐)과, 관비(官婢)로 정속(定屬)된 자인 최윤의 서얼 누이 수덕(水德),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서 종[奴]이 된 자인 김처의의 조카 김삼각(金三角)·김인각(金麟角)·김삼동(金三同)·김범이(金凡伊)·김귀각(金龜角)·김종각(金終角) 최윤의 서얼 조카 최춘동(崔春同)·최소산(崔小山)임실(任實)에 부처(付處)된 오응(吳凝), 의주(義州)에 충군(充軍)된 문상덕(文尙德)과, 관노(官奴)로 해남(海南)에 영속(永屬)된 이강(李崗), 함열(咸悅)에 영속된 이한(李閒), 대흥(大興)에 정속(定屬)된 유소(劉昭), 충주(忠州)에 정속된 최윤(崔倫)과 유인(流人)으로 광양(光陽)이종근(李宗根), 순천(順天)안극돈(安克頓), 영해(寧海)배효사(裵孝思)진주(晉州)에 부처된 나유선(羅裕善)을 방면하였다. 이때에 세자(世子)가 임금의 병이 심하여 근심하고 걱정하며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계유년(癸酉年)453) 이래의 난신의 숙질(叔姪)과 자매(姉妹)의 연좌자(緣坐者) 무릇 2백여 인을 의논하여 방면한 것이다. 좌의정(左議政) 박원형(朴元亨)의 공신 비첩(功臣婢妾) 의비(義非)도 또한 방면한 중에 들어 있었으므로 박원형이 자못 불평(不平)을 품고 동부승지(同副承旨) 한계순(韓繼純)에게 말하기를,

"의비는 본래 천인(賤人)에 속하였으므로 방면해도 또한 천인(賤人)이요, 방면하지 아니한다 해도 또한 천인이며, 하물며 이 계집종[婢]은 곧 나의 공신 녹권(功臣錄券)에 기록된 비자(婢子)이겠는가? 그를 대신하여 또한 충급(充給)에 응(應)할 것이니, 청컨대 이러한 뜻을 주달(奏達)하라."

하였으나, 한계순이 묵연(默然)하니, 좌찬성(左贊成) 김국광(金國光)한계순에게 말하기를,

"이 일을 어찌하여 처음에 도모하지 아니하였는가? 지금 비록 즉시 계달(啓達)하지 아니하고 황표(黃標)로 의비(義非)란 두 글자를 덮어 붙여 전지(傳旨)를 내리더라도 방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나, 한계순이 또 묵연하더니, 상량(商量)하기를 오랫동안 하다가 의비란 두 글자 곁에 빈 황표(黃標)를 붙이고 박원형의 말한 바를 주달(奏達)하니, 세자가 이르기를,

"오늘 아침에 봉원군(蓬原君)454) 이 이르기를, ‘연좌된 자가 비록 본래 천인에 속하였다고 하더라도 본주(本主)에게 방환(放還)하는 것이 또한 성상의 은총입니다.’라고 하였으며, 일이 이미 의논하여 정해졌는데 되돌려 달리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하고, 드디어 듣지 아니하였다. 정창손의 공신 노비도 또한 방면된 자가 있었으나 정창손은 대략 개의(介意)하지 아니하였다. 의비는 처음에 박원형의 재종숙(再從叔)의 첩(妾)이었는데, 이미 연좌되자 박원형이 드디어 공신비(功臣婢)로 점유하여 첩을 삼아 두 아들을 낳았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8책 209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註 450]
    계유년(癸酉年) : 1453 단종 원년.
  • [註 451]
    병자년(丙子年) : 1456 세조 2년.
  • [註 452]
    을유년(乙酉年) : 1465 세조 11년.
  • [註 453]
    계유년(癸酉年) : 1453 단종 원년.
  • [註 454]
    봉원군(蓬原君) : 정창손.

○放癸酉年亂臣緣坐人外方從便者, 大丁金他乃鄭冠純祐安祐孼姪則金吾無只張貴南末孫奉汝諧孼叔德生黃善寶張生ㆍ叔黃信黃義軒末同玉中謹中哲守鄭孝全興生趙順生趙銛鄭苯世存玉守孝同玉同朴季愚彭老金衍義同趙完圭加麻耳三元趙藩永達植培馬叱同介叱同牛叱同永山命山仲恩介叱同元矩元美益達高德稱仲規石同萬同光大金宗瑞永德無適明察尹處恭上佐尹濟尹濱李命敏孟準銀同銀哲興祖榮祖哲同煥昇年同末孫吾乙未同芿叱同仲同李賢老順之李耕㽥維漢末同季同李儼石同未同世中; 及趙衷孫給付功臣家爲婢者, 張貴南鶴非末非黃善寶召史趙完圭精正仲恩貴德元矩心伊梁玉義非金有德莫莊黃貴存厚存閏存; 諸邑安置者, 元矩孝孫高德稱孟規崔老內隱伊內隱德。 丙子年亂臣緣坐人內外方便從者, 趙淸老壽山江山牛叱同千同河偉地河浦河汾龜同李徽孼叔李才權著權孫件伊同莫同李昊永石朴仲林斯悌斯枰斯楨成年哲守介叱同朴崝敬孫謙文信文守文思文宋石同宋仞金文起孼叔仇守介叱知成勝萬年兆年億年柳誠源柳種今年生守佐文山李智英孼叔李遺李義成燃成炤安祖述崔孟漢崔季漢; 給付功臣家爲婢者, 權著召史許慥小斤召史李裕基孼妹孝全崔沔莫非權著孼妹召史。 乙酉年亂臣緣坐人內, 諸邑安置者, 金處義犀角文孫龍角、叔孝忠、孼叔義松崔潤孝同哲山哲同水丁奉石柱安唐; 官婢定屬者, 崔潤孼妹水德; 待年爲奴者, 金處義三角麟角三同凡伊龜角終角崔潤孼姪春同小山任實付處吳凝義州充軍文尙德、官奴永屬海南 李崗咸悅 李閒、定屬大興 劉昭忠州 崔倫、流人光陽 李宗根順天 安克頓寧海 裵孝思晋州付處羅裕善。 時, 世子以上疾劇, 憂懼不知所爲, 議放癸酉以來亂臣叔姪姊妹之緣坐者凡二百餘人。 左議政朴元亨功臣婢妾義非, 亦在放中, 元亨頗懷不平, 謂同副承旨韓繼純曰: "義非本系賤人, 放之亦賤, 不放亦賤。 況此婢乃我功臣錄券付婢子也, 其代身亦應充給, 請申此意。" 繼純默然, 左贊成金國光繼純曰: "此事何不圖之於初? 今雖不卽啓達, 以黃標蔽付義非二字而下傳旨, 則不妨。" 繼純又默然, 商量者久之, 於義非二字傍付空黃標, 以元亨所言申之。 世子曰: "今朝蓬原君云: ‘緣坐者雖本系賤人, 放還本主, 亦上恩也。’ 業已議定, 不可回異。" 遂不聽。 昌孫功臣奴婢, 亦有放者, 昌孫略不介懷。 義非者, 初爲元亨再從叔妾, 旣被緣坐, 元亨遂占爲功臣婢作妾, 生二子。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8책 209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