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종직, 안효례, 최호원이 선에 대해 격렬히 논란하다
임금이 불예(不豫)하여 여러 종친(宗親)과 재추(宰樞)가 문안(問安)하니, 인견(引見)하고 술자리를 베풀었다. 구종직(丘從直)·정자영(鄭自英)·최지(崔池)·임수겸(林守謙)·유포익(兪布益) 및 안효례(安孝禮)·최호원(崔灝元) 등을 불러 성리설(性理說)을 논란(論難)하게 하였는데, 구종직이 나와서 이르기를,
"역(易)은 복희(伏羲)가 괘(卦)를 그음으로부터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이 이를 계승하였는데 우리 세종(世宗)과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에 이르러 역도(易道)를 궁탐(窮探)하시어 뜻을 정밀히 하여 신비로운 데 들어갔으니, 능히 사성(四聖)436) 의 역(易)을 계승한 것입니다."
하였다. 구종직이 인(因)하여 안효례와 더불어 선(禪)을 담론(談論)하였는데, 안효례가 격렬히 논란하니, 구종직이 말이 막히어 두 번 절하고 조아리면서 이르기를,
"내가 이제 항복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구종직은 이미 피곤해졌으니, 최호원으로 하여금 이를 대신하게 하는 것이 가(可)하다."
하였다. 안효례가 최호원과 더불어 각각 시비(是非)를 고집(固執)하여 서로 논란하였는데, 최호원이 안효례에게 말하기를,
"너는 백정(白丁)의 손자이다."
하니, 안효례가 이르기를,
"과연 내가 백정의 손자라고 한다면 너는 곧 나의 아들이다."
하였다. 말하는 바가 모두 이런 종류였으며 성난 목소리로 서로 욕하면서도 외기(畏忌)하는 바가 없었으므로,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가 임금의 앞에 나아가 안효례의 불공(不恭)한 죄를 탄핵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 무리가 온 것은 본래 파적(破寂)을 하고자 한 것으로 책할 것이 못되니 그대로 두라."
하였는데, 안효례가 극렬히 변론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므로 양성지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꾸짖기를,
"네가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내가 마땅히 중히 탄핵하겠다."
하니, 안효례가 조금 누그러졌으나, 여러 신하들은 오히려 양성지의 탄핵이 엄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다. 신숙주(申叔舟)가 물러나 최호원에게 이르기를,
"안효례는 족히 이를 것이 못되나 너도 또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니 다시는 이와 같이 하지 말라."
하였다. 안효례는 맹례(氓隷)437) 출신으로 성리학(性理學)에 있어서도 또한 아는 바가 없었는데, 특히 구변(口辯)으로 그 설(說)을 성취시켜 임금의 웃음을 바랐던 것이며, 최호원은 문신(文臣)으로 평소에 추솔(麤率)하여 직함이 없었다. 두 사람은 모두 조금 풍수(風水)의 이치를 아는 것 때문에 지우(知遇)를 입었는데, 임금도 또한 배우(俳優)로 이들을 용납하였던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0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辛丑/上不豫, 諸宗宰問安, 引見設酌。 召丘從直、鄭自英、崔池、林守謙、兪布益及安孝禮、崔灝元等, 論難性理之說。 從直進曰: "《易》自伏羲畫卦, 文王、周公繼之, 至我世宗及我主上殿下, 窮探《易》道, 精義入神, 能繼四聖之《易》。" 從直因與孝禮談禪, 孝禮劇論, 從直語塞, 再拜叩頭曰: "吾今降矣。" 上曰: "從直憊, 可令灝元代之。" 孝禮與灝元, 各執是非相難, 灝元謂孝禮曰: "汝是白丁之孫。" 孝禮曰: "果我是白丁之孫, 則汝乃我子也。" 其所言皆類此, 厲聲相罵, 無所畏忌。 大司憲梁誠之進上前, 請劾孝禮不恭之罪。 上曰: "此輩之來, 本欲破寂, 不足數也, 其置之。" 孝禮劇辨不已, 誠之張目責之曰: "汝固如此, 我當重劾。" 孝禮稍抑然, 諸臣猶恨誠之劾之不嚴。 申叔舟退謂灝元曰: "孝禮不足道也, 君亦不得辭其責矣。 勿復如是。" 孝禮出於氓隷, 其於性理之學, 亦無所知, 特以口辯濟其說, 以希上笑。 灝元文臣也, 素麤率無守。 二人俱以稍知風水之理遇知, 上亦以俳優畜之。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0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