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례와 최호원이 정자영과 더불어 《어정주역구결》에 대해 서로 논란하다
임금이 정인지(鄭麟趾)·정창손(鄭昌孫)·신숙주(申叔舟)·홍윤성(洪允成)·심회(沈澮)·홍달손(洪達孫)·최항(崔恒)·김질(金礩)·노사신(盧思愼)·성임·윤사흔(尹士昕)·윤필상(尹弼商)·김수령(金壽寧)·남이(南怡)·이영은(李永垠)·구종직(丘從直)·김예몽(金禮蒙)·정자영(鄭自英)·최호원(崔灝元)·안효례(安孝禮) 등을 불러 좌우로 나누어 《어정주역구결(御定周易口訣)》을 의논케 하였다. 안효례와 최호원은 정자영과 더불어 다시 서로 논란(論難)하였는데, 안효례 등은 어정 구결(御定口訣)을 따랐고, 정자영은 양촌(楊村) 권근(權近)의 구결(口訣)을 따랐는데 심한 변론으로 잠시 시간이 흘렀다. 안효례는 그의 설(說)을 다하고자 하였으나 궁(窮)하자 잡(雜)되게 증류(證類)를 끌어들여 종횡(縱橫)으로 반복하면서 입에서 말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말이 자못 기모(欺侮)하니, 정자영이 성을 내며 이르기를,
"네가 말하는 바가 비록 옳다고 하더라도 내 귀에는 심히 그르게 들린다. 또 나는 일찍이 양촌(楊村)에게 배웠는데, 그 설(說)이 정씨(程氏)와 합하였으므로 마음으로 옳게 여기었다. 안효례와 같은 자는 가르침을 받은 바가 없으니 그가 양촌의 설(說)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마땅하다. 최호원은 그가 처음에 양촌의 설을 배웠는데, 이제 성훈(聖訓)에 의지하니, 만약 스스로 깨달은 자라고 하며, 나를 군색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마음으로는 그윽이 불복(不服)할 것이다."
하니, 안효례가 이르기를,
"양촌(陽村)의 설(說)이 어찌 다 옳겠는가? 박사 선생(博士先生)이 처음에는 속학(俗學)을 배우다가 이제 성훈(聖訓)에 힘입어 이미 발몽(發蒙)431) 하였는데 어찌 옛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만약 도(道)가 아니라면 어찌 3년을 기다리겠는가?’라 하였는데, 자식과 아비에 있어서도 오히려 그러하니 하물며 스승과 제자의 사이이겠는가?"
하였으며, 정자영은 이르기를,
"양촌(陽村)의 설이 어찌 다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또 내가 먼저 배운 말도 이미 마음에 들어 있으나 갑자기 변(變)하는 것이 불가(不可)하여 그대로 좇는 것이다."
하니, 구종직이 이르기를,
"성훈(聖訓)이 진실로 옳은데, 정자영이 그 설(說)을 고집(固執)하는 것입니다. 신(臣)이 평소에 이미 일찍이 힐난하였으니, 정자영이 그른 것이며, 안효례의 인용한 바도 또한 부당(不當)한 것이 있습니다."
하니, 안효례가 묵연(默然)하였으므로, 여러 재추(宰樞)들이 두 사람의 설을 가지고 아뢰니, 임금이 이르기를,
"잘못은 정자영에게 있다."
하고 이어서 술을 내려 주었다. 구종직과 정자영은 모두 경학(經學)으로 현달(顯達)하였으나, 구종직은 아첨하고 학문은 박식하였으며, 정자영은 마음이 곧고 학문이 고루(固陋)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05면
- 【분류】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
- [註 431]발몽(發蒙) : 사리에 어두운 것을 명백히 밝힘.
○上召鄭麟趾、鄭昌孫、申叔舟、洪允成、沈澮、洪達孫、崔恒、金礩、盧思愼、成任、尹士昕、尹弼商、金壽寧、南怡、李永垠、丘從直、金禮蒙、鄭自英、崔灝元、安孝禮等, 分左右, 論《御定周易口訣》。 孝禮、灝元, 與自英更相論難, 孝禮等從御定口訣, 自英從陽村 權近口訣, 劇辯移時。 孝禮欲極其說以窮之, 雜引證類, 縱橫反覆, 口不停說, 語頗欺侮。 自英恚曰: "汝等所言雖是, 而於吾耳甚非。 且吾早學陽村, 其說與程氏合, 故心以爲是。 如孝禮者, 無所師受, 其未知陽村之說宜矣。 灝元其初學陽村之說, 而今憑聖訓, 若自悟者, 欲以窘我, 心竊不服。" 孝禮曰: "陽村之說, 豈盡爲是? 博士先生, 初受俗學, 今賴聖訓, 旣已發蒙, 何不去舊就新? 古人云: ‘如其非道, 何待三年?’ 子之於父尙然, 況於師弟子之間乎?" 自英曰: "陽村之說, 豈盡非是? 且予先學之言, 已入於心, 不可遽變而從之。" 從直曰: "聖訓眞是, 而自英固執其說。 臣於平居, 已嘗詰之, 然自英則非矣, 孝禮所引, 亦有不當者。" 孝禮默然, 諸宰將二人之說以啓, 上曰: "誤在自英。" 仍賜酒。 從直、自英, 俱以經學顯, 從直心阿而學博, 自英心直而學固。
-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05면
- 【분류】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