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조실록 46권, 세조 14년 6월 18일 병오 4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대납·의창·형·노비법·교화·병융에 관한 사헌부 대사헌 양성지의 상소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양성지(梁誠之)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공손히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요즈음 하늘의 경계(警戒)로 인하여 교지를 내려 구언(救言)하시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근면하게 하는 도(道)를 다한 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등은 대죄(待罪)하고 있는 언관(言官)으로서 삼가 조목별로 시폐(時弊)를 올리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예감(睿鑑)하시어 채택하소서.

1. 대납(代納)의 설치는 본시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도와서, 공사(公私)에 적절하고 편리하게 하며 민정(民情)을 따르고 국용(國用)을 건지는 소이(所以)입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대전(大典)》에는, ‘백성이 대납(代納)을 구하여서 값을 갚는 자가 있으면, 관(官)에서 들어주어 수급(收給)하도록 하되, 어긴 자는 장(杖) 1백 대에, 값과 물건을 몰관(沒官)하고, 수령은 3년동안 서용(敍用)하지 않는다.’ 하고, 또 그 해의 풍흉(豊凶)을 보아 물건에 정한 값이 있게 하였으니, 법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며 명령이 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이를 들어서 행하면 진실로 폐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령(守令)이란 자는 부상(富商)에게 구부리고, 권세(權勢)에 제어되는 무리이라서 다만 민정(民情)이 원하는 바의 쌀·콩과 초목(草木) 등류와 같이 백성이 쉽게 판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대납을 원하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강제로 불러다가 문권(文券)을 만들어 다 대납하게 하되, 값을 징수할 즈음에는 관(官)에서 거두고 주는 것이 아니라 대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촌락(村落)을 횡행(橫行)하여 뜻대로 수렴(收斂)하게 하니, 발가벗기고 종아리를 때리는 등 이르지 않는 바가 없어, 집에 있는 것을 다하여도 오히려 넉넉하지 못하면 책임을 친린(親隣)에게까지 미치게 합니다. 이 때문에 대소 인민이 오오(嗷嗷)360) 하며 알몸으로 배를 주리고 조석(朝夕)을 보전하지 못하는데도, 홀로 상고(商賈)의 무리만은 풍족하게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앉아서 그 이익을 누립니다. 부자일수록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일수록 더욱 가난하니, 그 전하의 박시 자민(博施字民)361) 하는 뜻에 어떻겠습니까?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이래로, 정사에 부지런하게 다스림을 도모한 것이 한 가지 일이라도 백성에게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은명(恩命)이 여러 번 내렸는데도 백성이 입지 못하고 실지로 혜택을 입은 자는 대납의 연고자가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이르기를, ‘이미 민정(民情)을 물었고, 징수하는 값에 법이 있어 어긴 자는 죄를 당하는데 무슨 폐단이 있겠느냐?’ 하면, 신 등은 생각하건대 아름다운 먹이[芳餌] 아래에서는 물고기가 피할 수 없고, 이익이 중한 아래에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중리(重利)를 좋아하는 자는 권호(權豪)이고 상고(商賈)이며 수령(守令)이고, 민생(民生)을 사랑하는 자는 오직 전하 한 몸 뿐이니, 누가 경(輕)한 죄를 두려워하여 중(重)한 이익을 버리겠으며, 전하의 어진 마음을 능히 몸받아서 법을 좋게 쓰는 자가 있겠습니까? 신 등은 듣건대 그림자를 싫어하여 달리는 것은 그늘에 처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니, 대납하는 것은 불평하는 데 그 폐단을 없애려 함은 어려울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영구히 대납하는 법을 없애어 민폐(民弊)를 근절하소서.

1. 의창(義倉)·사창(社倉)을 설치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창은 지금도 행하는데 사창은 혹은 행하고 혹은 행하지 않으니, 어찌 폐단이 없는 것은 오래 존재하나 폐단이 있는 것은 오래 가기 어려운 연고가 아니겠습니까? 대개 사창(社倉)은 촌락 사이에 흩어 두고 여러 사장(社長)에게 위임하니, 그것을 흩을 적에는 자기와 친하고 친하지 못한 것과 은혜와 원망으로써 다소(多少)를 정하고, 환과 고독(鰥寡孤獨)은 혹 주지 않으며, 그것을 거둘 적에는 자가(自家)에서 수확(收獲)한 나머지로 힘이 혹 미치지 못하면, 마을을 같이 하고 우물을 같이 하는 무리로 하되 또 따르지 못하게 하니, 금년에 다 거두지 못하면 명년에도 또 다 거두지 못하여, 계권(契卷)만 헛되이 돌아오고 끝내 실지로 쌓인 것은 없으며, 그것을 지킬 적에는 공가(公家)의 곡식이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보고, 임의(任意)로 출납(出納)하여 혹은 바꾸고 혹은 사사로이 도둑질합니다. 또 인력(人力)을 펴지 않고 창고의 문단속을 게을리하여 도적을 불러들이며,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쌓인 것이 모손(耗損)을 초래하여, 마침내 힘으로 변상(辨償)할 수 없을 것을 알면 흔적을 없애려고 꾀하여, 반드시 장차 그 창고를 불사르고 이르기를, ‘도둑이 불을 질렀다.’하고, 그렇지 않으면 제휴(提携)하여 도산(逃散)한 뒤에야 마니, 연변(沿邊)의 백성은 혹 완급(緩急)이 있으면 모두 성(城)에 들어와 지키는데, 어찌 유독 백성의 생명이 매인 바를 촌락(村落)에다 두고서 도적의 자산으로 삼겠습니까? 만약에 이르기를, ‘사창(社倉)은 나라에 유익(有益)하고, 백성에게 폐(弊)가 없다.’고 한다면, 근일에 전라도(全羅道)에서 번고(反庫)362) 할 때에, 사창의 곡식을 허모(虛耗)한 것이 적지 않아 지키는 자가 변상할 수 없는 것이 많았으니, 이것은 이미 그렇다는 명확한 증험입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수령(守令)은 관부(官府)의 위엄이 있고 사령(使令)이 넉넉하게 있어, 때를 맞추어 그것을 염산(斂散)하고 굳게 그것을 수호(守護)할 만하며, 의창(義倉)은 실로 만세토록 바꾸지 못할 좋은 법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의창을 다시 세워서 백성의 여망을 위로하소서.

1. 형(刑)이란 성인(聖人)이 부득이 한 것이고, 가장 용심(用心)하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공경하고, 공경하라, 오직 형벌은 신중히 할 것이다.’ 하고, 전(傳)에 이르기를, ‘죽은 자는 다시 살 수 없고, 끊어진 자는 다시 이어질 수 없다.’고 하였으니, 형벌을 혹 남용하는 것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리 전하께서는 지극한 덕으로 사는 것을 좋아하시고 불쌍히 여기며 가엽게 여기시어, 남형(濫刑)을 금(禁)한 것이 영전(令典)에 나타나 있는데도, 중외(中外)의 관리(官吏)가 성상(聖上)의 흠휼(欽恤)하는 어지심을 몸받지 아니하고, 혹은 사사로운 분노로 인하여, 혹은 공사(公事)로 인하여, 법을 빙자하고 그릇되게 남용하여 무고(無故)하게 죽고 상한 자가 간혹 있으니, 전하께서 남형(濫刑)의 금지를 중하게 한 것이 비록 죄를 용서하지 못할 자를 용서하였더라도 어찌 시폐(時弊)를 구(救)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은 듣건대 대저 사람이 백길[百仞]의 연못에 임하여 곁을 걸어다녀도 진실로 근심이 없는 자가 있지만, 그러나 시험하지 않은 자는 그것으로 인하여 떨어질까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유사(有司)가 죄인(罪人)에게도 또한 그러하니, 법에 의방하여 용형(用刑)하는 자가 실정을 얻을 만한데, 오히려 감히 못하는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혹 남용하여 실수할까 두려워함에서입니다. 공사(公事)를 하는데 누구와 사사로운 짓을 하며, 법을 사랑하는데 누구와 몸을 사랑하겠습니까마는, 사람마다 서로 경계하여 용형(用刑)을 꺼리고 그 1태(笞)의 실수와 더불어 남형의 금지에 저촉된다면, 차라리 석방하여 다스리지 않고 고의로 내보낸 죄를 달게 받을 것입니다. 이로 인연하여 도적(盜賊)도 또한 그 까닭을 알고, 비록 장적(贓迹)이 드러났더라도 끝내 책임을 스스로 이끌어지지 않아서, 악(惡)을 징계하는 그물이 허소하여 간사한 도적이 날로 성하여 백주(白晝)에 대도(大都)에서도 혹 절도가 발생하니, 고촌(孤村)이나 벽항(僻巷)에서라면 누가 꺼려서 하지 않겠습니까? 양민(良民)이 해(害)를 입는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없으니, 신 등의 생각으로는, 저가 분개로 인하여 법을 빙자하여 혹은 목석(木石)이나 금인(金刃)을 쓰더라도 잔혹하게 상해한 것을 다스리지 않은 자는, 《대전(大典)》에 따라 다스리어 용서하고 원면(原免)하지 않으며, 그 다른 도적을 신문(訊問)할 때에 장물이 나타나고 실정이 드러났는데도 유사(有司)가 혹 태장(笞杖)하는 데 실수한 자는 한결같이 본율(本律)에 따라 시행(施行)하면, 유사(有司)가 마땅히 형벌을 의논함에 몸을 해치지 않는 것을 알아서 그 심력(心力)을 펼 것이고, 도적을 없애는 것도 혹 이에 말미암을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留意)하소서.

1. 교화(敎化)는 국가의 급무(急務)이며, 풍속(風俗)은 천하의 대사(大事)인데, 이루기는 어렵고 패(敗)하기는 쉬우니, 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인(聖人)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장인(匠人)이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주초[礎]에다 기둥[柱]을 받고 기둥에다 대들보[樑]를 이어, 상하가 서로 의지하여야 집은 오래갈 것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받들어, 존비(尊卑)가 서로 이어받아야 나라가 이에 편안할 것이므로 전하께서는 어디에다 호소할 데가 없는 이를 긍휼(矜恤)하여 언로(言路)를 환히 열었고, 혹은 탐주(探籌)363) ·격고(擊鼓)하며, 혹은 직접 나아와 진소(陳訴)하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다함을 얻게 하였으니, 어찌 원망을 머금고 굴욕을 안고서 신원(伸冤)하지 못한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간사하고 아첨하는 소인배(小人輩)가 대체(大體)에 어두워서 항상혜혜연(盻盻然)364) 하게 그 위를 엿보아, 흠을 찾고 흉터를 구하여 한가지 실수를 얻으면 팔을 저어 가면서 서로 미워하니, 비록 자기의 원망이 아니더라도 가지고서 고소(告訴)하여 상(賞)을 받는 자료로 삼으니, 밖에서는 수령(守令)을 안에서는 백집사(百執事)까지도 보기를 그 아래의 구적(仇敵)과 같이 여길 뿐 아니라, 마시고 먹고 말하는 데까지도 오히려 또 의심하고 저해하니,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 따라서 사공(事功)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고(告)하는 것이 실상이더라도 이미 대체(大體)를 상(賞)하였는데, 더구나 무망(誣罔)하고 교사(矯詐)하여서 동요하는 자이겠습니까? 옛 사람이 고알(告訐)365) 을 중하게 한 소이가 어찌 그 하정(下情)을 막으려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대체(大體)를 유지(維持)하여 능멸하는 데 이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만약에 종이 그 주인을 고소하고 아내가 그 지아비를 고소하며, 아비가 아들을 믿지 못하고 형이 아우를 믿지 못하면, 풍속이 한 번 패(敗)하여 다시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관리가 탐오(貪汚)하고 백성을 가혹하게 하는 등의 일을 스스로 원통함이 있는 자가 호소하고 유사(有司)가 규찰하면, 어찌 타인의 고소를 기다리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이제부터는 자기의 원억(冤抑)을 제외하고는 고발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서, 인심을 편안히 하고 풍속을 돈독하게 하소서.

1. 우리 국가의 노비(奴婢)의 법(法)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며 사대부(士大夫)가 의지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전(相傳)할 즈음에 계권(契券)이 명백하지 못하면 쟁송(爭訟)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관(官)을 설치하여 나누어 다스리니, 무릇 전계(傳係)하려는 자는 반드시 관에 고하여 서경(署經)366) 한 연후에야 간위(姦僞)가 의탁할 바가 없었습니다. 대저 전지(田地)는 사람의 명맥(命脈)이며, 노비(奴婢)는 선비의 수족(手足)이라 경중(經重)이 서로 같으니, 편벽되게 폐(廢)할 수 없습니다. 율(律)에 세계과할(稅契過割)의 글이 있는데도 율(律)을 쓰는 것은 바로 금일의 법전이니, 전지(田地)는 이미 세계(稅契)가 있는데 어찌 노비에만 그렇지 못하여 쟁송의 단서를 열게 합니까? 사람은 다투어 거짓 문서를 만들어서 만(萬)에 하나라도 요행을 바라니, 강약(强弱)이 서로 송사하면 강한 자가 얻게 되고, 귀천(貴賤)이 서로 쟁송하면 귀한 자가 이기게 되니, 누가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붙들어서 원통하고 억울함을 펴게 하겠습니까? 형세가 장차 소첩(訴牒)이 구름처럼 쌓이어 시비(是非)가 뒤섞이면, 관리는 문서를 잡고서 심취(心醉)하고, 간호(姦豪)는 세도를 의탁하여 모사(謀士)를 초빙할 것이니, 어찌 적은 폐단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노비(奴婢)의 문권도 또한 전지(田地)에 의하여 예전대로 관부를 경유하게 하여, 간위(姦僞)를 막고 송사의 단서를 근절하게 하소서.

1. 병융(兵戎)은 나라의 대사(大事)이니, 그 병기(兵器)는 날카롭고 또 많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편안하게 살면서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병기(兵器)를 날카롭게 하여 불우(不虞)를 경계할 것을 생각하시고, 공궁(貢弓)을 가설(加設)하여 대관(大官)에게 수백을, 소관(小官)에게 수십을 그 해의 상수(常數)로 삼으시니, 염려하는 것이 매우 원대합니다. 그러나 수효로써 상고하건대 5, 6의 집의 1궁(弓)을 바치는 것에 해당하니, 1궁(弓)에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몇 마리 짐승의 힘줄[筯]을 써야 하며, 뿔[角]은 더욱 집집마다 얻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습니다. 수령은 문안(文案)을 들어 징수하기를 독촉함이 성화(星火)보다 급하고, 백성은 판비할 수가 없으면 포화(布貨)를 집에서 거두고 호구에서 수렴하는데도 오히려 변상할 수 없으면 편달(鞭撻)이 따르게 되니, 만약에 백성에게 다른 부역이 없고, 오로지 활로만 공부(貢賦)를 한다면 오히려 옳겠습니다. 저 조세(租稅)와 공부(貢賦)에다 공사(公私)의 부채(負債)를 추수(秋收)한 소득으로는 십 분의 일을 상환하지 못하는데, 또 어느 겨를에 판비하기 어려운 활을 갖추어서 매 해의 상공(常貢)으로 삼겠습니까? 만약에 이르기를, ‘공물(貢物)은 곧 수령의 편의한 바에 따라 비축하는 것이니, 백성에 관계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신 등은 생각하건대 수령에게 소용되는 것은 공름(公廩)인데 남은 저축이 없고, 부리는 자는 이졸(吏卒)인데 정수(定數)가 있습니다. 이 밖에 소용되는 것은 모두 민력(民力)에서 나오는데, 하물며 활이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이런 것을 수령에게 붙여 한결같이 모두 백성에게서 긁어내어, 그 폐단이 이와 같은 데에 이르렀으니, 어찌 우리 전하께서 법을 세운 본래의 뜻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특히 이 폐단을 제거하여서 백성의 폐해를 없애소서.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구언(求言)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것이 어려움이 되며, 청언(聽言)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움이 됩니다. 전하께서 구언(求言)하기를 목마른 것 같이 하여, 중요하지 않은 데 이르러서도 또한 다 말할 수 있게 하니, 누가 즐겨 마음에 품은 것이 있는데도 진달하지 않겠습니까? 말한 것이 한 가지 일이 아니고, 폐단을 논한 것이 한 가지 단서가 아니나, 그러나 그 가운데에 입은 다르더라도 한결같이 담론할 한 가지의 일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고인(古人)의 말에 있기를, ‘많은 무리의 의논에서 족히 인정(人情)을 볼 것이며, 반드시 행할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고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군정(群情)을 굽어 살피시어, 나라 사람이 다 폐단이라고 하면 반드시 그 폐단이 되는 소이를 구하고, 나라 사람이 모두 옳다고 하면 반드시 그 옳게 여기는 소이를 구한 연후라야, 옳은 것은 행하고 옳지 못한 것은 버릴 것입니다. 장차 폐단을 물리쳐야 백성이 편안하고, 백성이 편안하여야 마음이 화락하고, 마음이 화락하여야 기운이 화합하고, 기운이 화합하여야 형상이 화하고, 형상이 화하여야 천지(天地)의 기(氣)도 또한 화하여, 모든 복(福)된 사물이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하였다. 당시에 집의(執義) 이극돈(李克墩)이 이러한 상소(上疏)를 받들어 올리니,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고, 이극돈으로 하여금 그 상소를 읽게 하여 들으시더니, 고알(告訐)의 조목(條目)에 이르러서 임금이 여러 재추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고알(告訐)이 그른 것이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마는, 생각하건대 나라에는 상경(常經)이 있고 권도(權道)가 있다. 근자에 권도를 써서 원통하고 억울함을 신원한 자가 자못 많았으나, 그러나 경구(經久)한 계교는 아니니, 경 등은 다만 보도록 하라. 금후로는 맹세코 들어주지 않겠다."

하였다. 나계문(羅季文)의 처(妻) 윤씨(尹氏)가 읍소(泣訴)하여 신원(伸冤)을 얻은 뒤로부터 소민(小民)이 조금이라도 결망(缺望)함이 있으면 즉시 소매를 걷어올리고 스스로 호소하여 분운(紛紜)을 이기지 못하니, 임금도 또한 미워한 까닭으로, 특별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46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8책 19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재정-공물(貢物) / 재정-창고(倉庫) / 신분-천인(賤人) / 군사-군기(軍器)

  • [註 360]
    오오(嗷嗷) : 뭇사람이 슬퍼하는 모양.
  • [註 361]
    박시 자민(博施字民) : 널리 은혜를 베풀고 백성을 사랑함.
  • [註 362]
    번고(反庫) : 창고에 있는 물건을 뒤적거려 조사함.
  • [註 363]
    탐주(探籌) : 세조 12년(1466)에, 임금이 민간의 이익되고 손해되는 점과 시정(時政)의 잘되고 잘못된 점을 듣고자 했으나, 인민들이 능히 스스로 아뢸 수 없음을 염려하여 주서(注書)와 사관(史官)에게 명하여 날짜를 돌려가면서 광화문(光化門)밖에 나가, 말하려고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비를 뽑게 하였음. 뽑힌 사람은 그 말하는 바를 기록하여 아뢰도록 하고, 임금이 친히 물어서 결정 조처하였음.
  • [註 364]
    혜혜연(盻盻然) :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모양.
  • [註 365]
    고알(告訐) :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남의 범죄 사실을 관청에 알림.
  • [註 366]
    서경(署經) : 임금이 관리를 임명할 때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에서 그 인선(人選)에 동의하여 신임관의 고신(告身)에 서명하던 일.

○司憲府大司憲梁誠之等上疏曰:

恭惟主上殿下, 頃因天戒, 下敎救言, 思所以盡敬天勤民之道。 臣等待罪言官, 謹條上時弊, 伏惟睿鑑財擇。 一, 代納之設, 本爲有無相資, 公私適便, 所以順民情而濟國用也。 謹按《大典》, 民有求代納而酬價者, 聽官收給之, 違者杖一百, 價物沒官, 守令三年不敍。 且視年之豐凶, 物有定價, 法非不美, 令非不嚴, 擧此而行, 固若無弊。 然守令者, 類爲富商所俛, 權勢所制, 獨民情所願, 至如米、豆、草木之類, 民所易備, 而不願代者, 亦皆勒招(文卷)〔文券〕 , 盡令代納。 收價之際, 官不收給致, 令代納之人, 橫行村落, 縱意收斂, 裸剝鞭笞, 無所不至。 罄室所有, 而猶不足焉, 則責及親隣。 以是大小嗷嗷, 赤身枵腹, 朝夕不保, 而獨商賈之徒, 豊衣美食, 坐享其利。 富者益富, 貧者益貧, 其於殿下博施字民之意, 爲何如也? 殿下臨御以來, 宵旰圖治, 無一事不在於民, 恩命屢下, 而民不被實惠者, 得非代納之故耶? 若曰: "旣問民情, 收價有法違者抵罪, 何弊之有?" 則臣等以爲, 芳餌之下, 魚不得避; 重利之下, 人不畏死。 愛重利者, 權豪也, 商賈也, 守令也; 愛民生, 惟殿下身而已。 孰有畏輕罪, 而捨重利, 能體殿下之仁心, 而善用法者乎? 臣等聞, 惡影而走, 不如處陰, 代納不平, 而欲其無弊難矣。 伏望永除代納之法, 以絶民弊。 一, 義倉社倉之設久矣。 然義倉至今行之, 而社倉或行或否, 豈非無弊者久存, 而有弊者難久故耶? 蓋社倉, 散置村間, 委諸社長, 其散之也, 以己親踈恩怨, 爲之多少, 而鰥寡孤獨, 或不與焉。 其斂之也, 自家(收獲)〔收穫〕 之餘, 力或不及, 同閭共井之輩, 令又不從, 今年未畢收, 明年又未畢收, 契卷空還, 而了無實積。 其守之也, 公家之粟, 視爲己有, 任意出納, 或換易或私竊。 且人力不敷, 慢藏招盜, 歲月旣久, 積致耗損, 終知力不能償, 則謀欲滅跡, 必將焚其庫廩曰: "盜火之也。" 不然則提携逃散而後已。 沿邊之民, 脫有緩急, 皆入城守, 豈獨可以民命所繫, 置之村落, 以資盜賊哉? 若曰: "社倉有益於國, 無弊於民。" 則近日全羅道反庫之時, 社倉之穀, 虛耗不貲, 守之者多不能償, 此已然之明驗也。 臣等以爲, 守令有官府之威, 有使令之足, 可以時其斂散, 固其守護, 而義倉實萬世不易之良法。 伏望復立義倉, 以慰民望。 一, 刑者聖人所不得已焉, 而最爲用心者也。 《書》曰: "欽哉欽哉! 惟刑之恤哉。" 傳曰: "死者不可復生, 斷者不可復續。" 刑之或濫, 豈不戚乎? 肆我殿下, 至德好生, 哀矜惻怛, 濫刑之禁, 著在令典, 而中外官吏, 不體聖上欽恤之仁, 或因私憤, 或因公事, 憑法枉濫, 無故死傷者, 間或有之。 殿下所以重濫刑之禁, 雖赦不宥者, 豈非救時之弊而然耶? 臣等聞, 凡人臨百仞之淵, 側邊而行, 固有無恙者, 然而不試者, 恐其因此而隕墜也。 有司之於罪人亦然, 擬法用刑, 情可得矣, 而猶不敢者, 恐其因此而或失於濫也。 爲公孰與爲私, 愛法孰與愛身, 人人相戒, 以用刑爲諱, 與其失於一笞, 以觸濫刑之禁, 寧縱釋不治, 甘受故出之罪。 緣此盜賊, 亦知其故, 雖露贓迹, 終不引咎, 懲惡網踈, 姦寇日熾, 白晝大都, 尙或竊發, 孤村僻巷, 誰憚而不爲哉? 良民受害, 莫此爲甚。 臣等以爲, 彼因憤憑法, 或用木石金刃, 非理殘傷者, 依《大典》治之, 赦不原免, 其他盜賊訊問之時, 贓現情露, 而有司或失於笞杖者, 一從本律施行, 則有司當知議刑之不爲己害, 而得以展布其心力矣。 盜賊之弭, 或由於斯, 伏望殿下留意焉。 一, 敎化國家之急務, 風俗天下之大事, 而難成易敗, 可不重歟? 聖人之治天下, 猶匠之構屋也。 礎以承柱, 柱以戴樑, 上下相持, 家可久矣。 上以使下, 下以奉上, 尊卑相承, 國乃安矣。 殿下矜恤無告, 洞開言路, 或探籌、擊鼓, 或直詣陳訴, 使民得以自盡, 豈有含怨抱屈, 而不伸者乎? 然憸小之輩, 昧於大體, 常盻盻然伺其上, 覓疵求瘢, 得一失則棹臂反目, 雖非己冤, 持以告訴, 以爲受賞之資。 外而守令, 內而百執事, 視其下不啻如仇敵, 至於飮食言語, 尙且疑沮, 其能上令下從, 以濟事功哉? 雖所告是實, 已傷大體, 況誣罔矯詐, 以動搖者哉? 古人所以重其告訐, 豈欲其下情之壅也? 乃維持大體, 不使至於陵慢耳。 若奴告其主, 妻訴其夫, 父不信子, 兄不信弟, 風俗一敗, 不可復救矣。 彼官吏貪汚虐民等事, 自有冤者訴之, 有司糾之, 何待他人之告訴哉? 伏願自今除自己冤抑外, 勿許告擧, 以安人心, 以敦風俗。 一, 我國家奴婢之法, 其來尙矣, 而士大夫倚以爲生者也。 然相傳之際, 契券不明, 則爭訟所由起也。 是以設官分理, 凡欲傳係者, 必告官經署, 然後姦僞, 無所托焉。 夫田地, 人之命脈; 奴婢, 士之手足。 輕重相等, 不可偏廢。 律有稅契過割之文, 而用律乃今日之典, 則田地旣稅契矣, 何獨於奴婢不然, 以開爭訟之端哉? 人競爲僞文, 以希萬一之幸, 强弱相訟, 則强者得之; 貴賤相爭, 則貴者勝之, 孰能抑强扶弱, 以伸冤抑哉? 勢將訴牒雲委, 是非混淆, 官吏執牘而心醉, 姦豪倚勢而聘謀, 豈小弊哉? 伏望奴婢之券, 亦依田地, 仍舊經官, 以杜姦僞, 以絶訟端。 一, 兵戎國之大事, 其器不可不利且多也。 殿下居安思危, 思所以利兵器戒不虞, 加設貢弓, 大官數百, 小官數十, 歲以爲常, 慮甚遠也。 然以數考之, 五六之家, 應貢一弓, 一弓所入, 必用數獸之筋, 而角尤爲家家難得之物也。 守令擧案徵督, 急於星火, 民不能備代, 以布貨家抽戶斂, 尙不能償, 鞭撻隨之。 若民無他賦, 專以弓爲貢, 則猶之可也。 彼租稅貢賦, 公私負債, 秋成所得, 什不償一, 又何暇備難備之弓, 以爲每歲之常貢哉? 若曰: "貢物乃守令便宜所備, 不干於民。" 則臣等以爲, 守令所用者公廩也, 而無餘儲, 所使者吏卒也, 而有定數。 此外所須, 皆出民力, 況於弓乎? 朝廷以是責付守令, 一皆剝出於民, 其弊至於如此, 豈我殿下立法之本意哉? 伏望特除此弊, 以除民瘼。 臣等竊謂, 求言非難, 聽其言爲難; 聽言非難, 行其言尤爲難。 殿下求言如渴, 至使間散, 亦得盡言, 孰肯有所懷, 而不之達乎? 所言非一事, 論弊非一端, 然其中必有異口而同談一事者。 古人有言曰: "衆多之議, 足見人情, 必有可行。" 伏望殿下俯察群情, 國人皆曰弊也, 則必求其所以爲弊; 國人皆曰可也, 則必求其所以爲可。 然後可者行之, 其不可者去之。 將見弊祛而民安, 民安而心和, 心和而氣和, 氣和而形和, 形和而天地之氣亦和, 諸福之物, 莫不畢至矣。

時, 執義李克墩奉進此疏, 上御思政殿引見, 令克墩讀其疏而聽之, 至告訐條, 上顧謂諸宰曰: "告訐之爲非, 予豈不知? 第以爲國, 有經有權。 近用權道, 冤抑得伸者頗多, 然非經久之計, 卿等第觀之。 今後誓不聽受也。" 自羅係文尹氏泣訴得伸之後, 小民稍有缺望, 卽攘臂自訴, 不勝紛紜, 上亦厭之, 故特從之。


  • 【태백산사고본】 17책 46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8책 19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재정-공물(貢物) / 재정-창고(倉庫) / 신분-천인(賤人) / 군사-군기(軍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