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복산의 사장에서 사신을 마중하다. 강옥이 중인 조카를 환속시킬 것을 청하다
밤 4고(鼓)에 동가(動駕)하여 홍복산(洪福山)의 사장(射場)에 이르렀다. 백관(百官)이 호종(扈從)하니, 명하여 사관(史官)만은 수종(隨從)하지 말게 하였다.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를 보내어, 강옥(姜玉) 등에게 말하게 하기를,
"이제 산(山)에 있으면서 비가 점점 심하나, 그러나 이미 포위(布圍)하고 명령을 대기하고 있으니, 다만 두 대인이 비를 무릅쓰느라 노고스러울까 염려된다."
하니, 강옥이 말하기를,
"진룡(眞龍)인 천자(天子)가 거동(擧動)하면 반드시 풍우(風雨)가 있는 것이니, 노배(奴輩)가 감히 비를 무릅쓰는 것을 꺼리겠습니까? 마땅히 즉시 나아가겠습니다."
하고, 김보가 말하기를,
"일찍이 듣건대 전하가 거동하시는데 바람이 없으면 비가 내린다고 하더니, 오늘의 비도 또한 전하(殿下)를 위함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먼저 홍복산(洪福山)의 동봉(東峯)에 올라가 강옥 등이 오기를 기다려, 교상(交床)에 앉아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묻기를,
"금강산(金剛山)은 어떻던가?"
하니, 강옥 등이 대답하기를,
"낭떠러지로 된 봉우리[崖峯]가 험준하고 가파랐으나, 다행히 등 덩굴을 의지하여 휘어잡고서 올라가, 부처[佛]에게 절하고 법문(法文)을 들으니, 깨끗하게 진세(塵世)의 일이 없어지고 오직 한 조각의 착한 마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술자리를 베푸니, 사슴을 잡은 자가 잇달아서 이르므로, 명하여 할선(割鮮)하여 술을 수차례 돌리었다. 김보가 노루·사슴 네 마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궁시(弓矢)를 차고 도보(徒步)로 달려 산을 내려가니,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 권맹희(權孟禧)가 아뢰기를,
"김보가 탄 말은 성질이 사나와서 혹 넘어질까 두렵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을 보내고, 또 신숙주·윤자운에게 명하여 술을 가지고 함께 사슴을 따르게 하였다. 김보가 혹은 걸어서 달리고 혹은 말을 타고 쫓거늘, 강옥이 임금에게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은 한가지로 황제의 명(命)을 받았으니, 부사(副使)가 탈선하여 넘어지는 일이 있으면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두려우니, 청컨대 전하께서 소환(召還)하소서."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사신(使臣)이 하는 바를 내가 저지할 것이 아니니, 청컨대 대인이 중지하게 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나도 또한 금지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우리 족속(族屬)이 모두 직임을 배수(拜受)하였으나, 다만 조카가 중[僧]이 되었으니, 원컨대 전하께서 구휼(救恤)하여 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릇 사람이 중이 되면 이미 불제자(佛弟子)가 된 것이니, 비록 군부(君父)라 하더라도 그 뜻을 빼앗을 수가 없다. 만약에 스스로 환속(還俗)한다면 직임을 제수하여도 가(可)할 것이다."
하였다. 강옥이 말하기를,
"조카 중[僧]은 그 아비가 일찍 죽고 어미는 다른 데로 시집가서 의지할 데가 없어 바로 중이 되었을 뿐, 처음부터 본심은 아니었습니다. 또 우리 형제 2인은 나는 시인(寺人)256) 이고 아우는 일찍 죽었으니, 조카가 머리를 기르지 않으면 죽은 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내 마땅히 직임을 제수하겠다."
하였다. 강옥이 포위(布圍)한 것을 바라보고 감탄하기를,
"이 같은 한여름에는 초목(草木)이 무성하고 빽빽하여 타위(打圍)하기가 가장 어려운데, 몰아 내리는 것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함이 없고, 한 줄기 길[路]과 같습니다."
하였는데, 김보가 한 마리의 꿩을 쏘아 잡아서 돌아와 구워 바치니, 인하여 술을 돌리고는 바로 파(罷)하였다. 거가(車駕)가 주정 악전(晝停幄殿)257) 으로 환어(還御)하여 잔치를 베푸고, 날이 저물어서야 환궁(還宮)하였다. 도승지(都承旨) 권감(權瑊)을 태평관(太平館)에 보내어 〈사신을〉 문안하게 하고, 이날 잡은 짐승이 많았으므로, 병조 좌랑(兵曹佐郞) 김양완(金良琬)에게 명하여 사슴 20마리, 노루 2마리, 아록(兒鹿) 17마리를 가지고 강옥(姜玉) 등에게 나누어 주게 하니, 강옥 등이 기뻐하여 즉시 포(脯)를 만들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4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8책 185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
○庚午/夜四鼓, 動駕, 至洪福山射場。 百官扈從, 只命史官勿從。 遣高靈君 申叔舟, 語姜玉等曰: "今在山雨漸甚, 然已布圍奉待, 但慮兩大人冒雨勞苦。" 玉曰: "眞龍天子擧動, 必有風雨, 奴輩敢憚冒雨? 當卽進去。" 輔曰: "曾聞殿下擧動, 無風則雨, 今日之雨, 亦爲殿下。" 上先登洪福山東峰, 以待玉等至, 坐交床行茶禮。 問曰: "金剛山何如?" 玉等答曰: "崖峯險巇, 幸賴藤蔓攀緣而上, 拜佛聞法, 淨無塵事, 唯有一片善心而已。" 上命設酌, 獲鹿者絡繹而至, 命割鮮, 酒數行。 輔見獐、鹿四走, 佩弓矢徒步走下山。 京畿觀察使權孟憘啓曰: "輔所乘馬性惡, 恐或蹉跌。" 上送馬, 又命叔舟、尹子雲, 持酒與鹿隨之。 輔或步走, 或乘馬馳逐, 玉言於上曰: "吾二人, 同承帝命, 副使脫有蹉跌, 則恐非美事, 請殿下召還。" 上曰: "使臣所爲, 非予所沮, 請大人止之。" 答曰: "吾亦不能禁也。" 又曰: "吾族屬皆拜職, 但姪子爲僧, 願殿下恤之。" 上曰: "凡人爲僧, 則已爲佛弟子, 雖君父不可奪其志。 若自還俗, 則可除職。" 玉曰: "姪僧其父早歿母適他, 無所聊賴, 乃爲僧耳, 初非本心也。 且吾兄弟二人, 我則寺人, 弟乃早歿, 姪不長髮, 則與死者無異。" 上曰: "然則予當除職。" 玉望見布圍, 嘆曰: "如此盛夏, 草木茂密, 打圍最難, 而驅下無斷續, 如一條路也。" 輔射獲一雉而還, 灸而獻之, 因行酒乃罷。 駕還御晝停幄殿, 設宴, 日暮還宮。 遣都承旨權瑊于大平館問安。 是日獲禽多, 命兵曹佐郞金良琬, 齎鹿二十、獐二、兒鹿十七, 分贈玉等, 玉等悅, 卽令作脯。
- 【태백산사고본】 17책 4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8책 185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