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관찰사가 변방 동정을 치계하니 그 대책을 변방 지방관에 유시하다
평안도 관찰사 오백창(吳伯昌)이 치계(馳啓)하기를,
"진응사(進鷹使) 성윤문(成允文)의 영래군(迎來軍)110) 영솔(領率)의 임무를 띤 의주 군관(義州軍官) 임귀지(林貴枝)가 와서 말하기를, ‘이달 18일에 행군(行軍)하여 통원보(通遠堡)에 이르러, 중국인[唐人] 이해(李海)의 집 북쪽에서 도적들이 결진(結陣)하여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만났는데, 도적의 선봉(先鋒) 1인이 화살을 뽑아 쏘므로 우리들도 또한 화살 1대와 신기 화전(神機火箭)을 아울러 쏘았더니, 도적이 물러서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고려(高麗) 사람이고, 나는 이두리(李豆里)의 휘하(麾下) 낭사화(浪思和)이니, 감히 싸울 것이 아니다. 다만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고, 인하여 술을 요구하며 함께 마시면서 말하기를, 「해서위(海西衛)의 1천여 명의 군사가 백탑(白塔)에 둔치고 있고, 모련위(毛憐衛)의 1천여 명의 군사가 연산(連山)에 둔치고 있으며, 건주위(建州衛)의 5백여 명의 군사가 통원보(通遠堡)에 둔치고 있으므로 길이 심히 막혔으니, 청컨대 들어가지 마시고 돌아가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합니다."
하니, 임금이 신숙주에게 명하여 유서(諭書)를 초(草)하게 해서, 오백창과 절도사(節度使) 김겸광(金謙光)에게 유시하기를,
"지금 계본(啓本)을 보고, 동팔참(東八站)111) 의 길이 막힌 것을 이미 잘 알았다.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도적들이 갔는지 머물러 있는지를 자세히 염탐하게 한 연후에, 훌륭한 장수와 정예한 군사를 택하여 전의 숫자에 적당히 보태어 들여보내서 맞이해 오도록 하라."
하고, 의주 목사(義州牧使) 우공(禹貢)에게 유시하기를,
"우리 나라 사람은 본래 활을 매우 잘 쏘고 저들 도적들은 활을 잘 쏘지 못하여, 우리가 도적들을 대적하기란 천균(千鈞)112) 의 무게로 달걀을 깔아뭉게는 것과 같은데, 요사이 변방의 사람들이 도적들의 실정을 알지 못하고 겁을 먹고 두려워한다. 지금 군관(軍官) 임귀지(林貴枝)는 능히 〈저들의〉 반(半) 밖에 안되는 군사로써 배(倍)나 되는 수를 대적하여 도적들로 하여금 외축(畏縮)되어 피하게 하였으니, 비록 현출(顯出)한 공(功)은 없다 하더라도 그 용지(勇志)가 가상(嘉尙)할 만하다. 또 경이 사람을 쓸 줄 앎을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특별히 명해서 임귀지에게 1자급(資級)을 올리고, 또 유의(襦衣)와 궁시(弓矢) 양구(兩具)를 내려 주니, 경이 이를 전하여 주도록 하라."
하고, 또 김겸광에게 유시하기를,
"지금 관찰사가 계문(啓聞)한 것을 보니, 성윤문(成允文)의 영래군(迎來軍)이 통원보(通遠堡)에 이르러 도적을 만나 서로 싸우는데, 이두리(李豆里)의 관하(管下) 낭사화(浪思和)가 도적의 진(陣)에 있다가 화해(和解)를 수창(首唱)하였다고 하니, 만약에 이두리가 오면 마땅히 말하기를, ‘네가 전일에 빈번히 와서 변(變)을 알려 주었으니, 진실로 우리 나라에 향한 성의(誠意)를 알 수 있다. 지금 듣건대, 너의 관하 낭사화가 우리 사람들을 동팔참(東八站) 앞길에서 만났으나 감히 서로 대적해 싸우지 않았다 하니, 더욱 더 네 정성을 알 수 있다.’ 하고, 이어서 포(布)와 곡식과 소금을 주어서 그 뜻을 권려(勸勵)하라."
하였다. 이때에 오백창은 임기(任期)가 만료되어 마땅히 천전(遷轉)되어야 하였는데, 영의정 한명회가 아뢰기를,
"지금 서북면(西北面)은 일이 많고, 오백창은 본도(本道)의 정세(情勢)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니, 청컨대 그대로 유임하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만약에 오백창이 죽는다면 어찌 하겠는가?"
하니, 한명회가 대답하기를,
"죽으면 그만입니다마는, 동계(東界)·서계(西界)의 양계(兩界)와 같은 데는 마땅히 그 방면에 정통한 사람을 써서 오래 맡겨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한명회가 또 아뢰기를,
"만약에 〈오백창을〉 그대로 유임하게 하시려면 마땅히 관질(官秩)을 더하여서 그 뜻을 권려하소서."
하니, 또한 그대로 따라서 가정 대부(嘉靖大夫)로 올리도록 명하고, 이어서 오백창에게 유시하기를,
"듣건대 경은 마음을 다하여 백성들을 사랑하고 어루만져서 서쪽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다 하니, 내가 심히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그러므로, 경이 지금 고만(考滿)되었으나 그대로 유임하게 하고, 또 경이 오랫동안 노고(勞苦)한 것을 생각하여 특별히 명하여 품계(品階)를 올리도록 하였으니, 경은 내 뜻을 몸받아 더욱 더 직책을 부지런히 해서 서번(西藩)을 장실(壯實)케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6면
- 【분류】외교-야(野)
- [註 110]영래군(迎來軍) : 중국에 간 사신을 맞이하여 오는 군사.
- [註 111]
동팔참(東八站) : 압록강과 산해관(山海關) 사이에 있던 여덟 곳의 역참(驛站). 우리 나라 사신(使臣)이 중국에 왕래하던 교통로였음.- [註 112]
천균(千鈞) : 30만 근, 즉 무거운 무게.○戊子/平安道觀察使吳伯昌馳啓: "進鷹使成允文迎來軍帶領義州軍官林貴枝來言: ‘本月十八日, 行軍至通遠堡, 唐人 李海家北, 遇賊結陣以待。 賊前鋒一人, 抽矢而射, 我等亦發一矢, 幷神機火箭。 賊却立曰: 「汝是高麗人, 我是李豆里麾下浪思和, 非敢戰也, 只要相見耳。」 因索酒與飮曰: 「海西衛千餘兵, 屯于白塔; 毛憐衛千餘兵, 屯于連山; 建州衛五百餘兵, 屯于通遠堡, 道途甚梗, 請勿入歸。」’" 上命申叔舟草諭書, 諭伯昌及節度使金謙光曰: "今見啓本, 已悉東八站路梗。 可令邊將, 細探賊去留, 然後擇良將精卒, 量加前數, 入送迎來。" 諭義州牧使禹貢曰: "我國之人, 本精於射, 而賊不能射, 以我敵賊, 猶千鈞之壓卵。 近日邊人, 未知賊情, 恇怯畏縮。 今軍官林貴枝, 乃能以半敵倍, 令賊畏避。 雖無顯功, 其勇志可嘉, 又嘉卿能任人。 特命超貴枝一階, 又賜襦衣弓矢兩具, 卿其傳給。" 又諭謙光曰: "今見觀察使所啓, 成允文迎來軍, 到通遠堡, 遇賊交戟。 豆里管下思和, 在賊陣, 首唱和解。 若豆里來, 則當語之曰: ‘爾前日頻來報變, 固知向我國誠意。 今聞爾管下思和, 遇我人於東八站前路, 不敢相敵, 益知爾誠。’ 仍給布穀鹽, 以勵其意。" 時, 伯昌秩滿當遷。 領議政韓明澮啓曰: "今西北多事, 伯昌備諳本道情勢, 請仍任。" 上良久曰: "若伯昌死則如之何?" 對曰: "死則已矣。 如東、西兩界, 宜用諳鍊者久任。" 上從之。 明澮又啓曰: "若仍任, 宜增秩以勵其志。" 又從之, 命陞嘉靖。 仍諭伯昌曰: "聞卿盡心字撫, 西人賴安, 予甚嘉之。 卿今考滿, 乃令仍任, 第念卿久勞, 特命陞階。 卿體予意, 益勤乃職, 以壯西藩。"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8책 66면
- 【분류】외교-야(野)
- [註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