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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41권, 세조 13년 2월 25일 신유 3번째기사 1467년 명 성화(成化) 3년

기성군 유자환의 졸기

오성군(筽城君) 유자환(柳子煥)이 졸(卒)하였다. 유자환영광(靈光) 사람으로서 처음 이름은 유자황(柳子晃)이었는데, 예종(睿宗)의 휘(諱)를 피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신미년(辛未年)081)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임신년(壬申年)082) 에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에 제배(除拜)되었는데, 이때에 세조(世祖)가 내난(內難)을 평정(平定)하고 모든 군사를 호령(號令)하니, 유자환이 승지(承旨) 박원형(朴元亨)을 보고 말하기를,

"국가의 대사(大事)는 군사에 있는 것인데, 왕자(王子)가 어찌하여 전장(專掌)할 수 있는가? 오늘날의 일은 승정원에서 마땅히 병조(兵曹)와 더불어 함께 의논해서 행하여야 된다."

하여, 좌우(左右)의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였다. 세조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주서(注書)가 사기(事機)를 알지는 못하나, 그 말이 비범(非凡)하다."

하고, 큰 그릇으로 여기었는데, 마침내 정난 공신(靖難功臣)에 참여하게 되었다. 세조가 일찍이 말하기를,

"유자환이 정난(靖難)할 때에 나에게 이르기를, ‘마음대로 군사를 소집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가히 송백(松栢)과 같은 절조(節操)가 있는 자라 이를 만하다."

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서 동부승지(同副承旨)와 도승지(都承旨)에 이르렀다가 곧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제수되고 기성군(箕城君)에 봉하여졌는데, 다시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전임되었으며, 전라도 관찰사로 외방에 나갔다가 임기가 만료되지 아니하여 소환되어 자헌 대부(資憲大夫)에 승격되었는데, 병으로 인하여 졸(卒)하였다. 유자환은 관후(寬厚)하고 아량(雅量)이 있었으며, 아랫사람에게 겸손 공근(謙遜恭謹)히 하고 사람을 접(接)할 때에 정성스럽게 하여 사람들이 명예(名譽)를 훼손시키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문장(文章)과 정사(政事)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으며, 평생 동안 생 것과 찬 것을 먹지 아니하여 기열(氣熱)이 있어서 코피를 흘려 빈사 상태(濱死狀態)에 이르렀어도 찬 것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유자환미시(微時)083) 에 어미의 상(喪)을 당하여 장사지내는 것을 뜻과 같이 못하여 매양 말이 이에 미치면 눈물을 흘리며 울었는데, 임종(臨終)할 때에 그 서제(庶弟) 유자광(柳子光)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개장(改葬)하려고 하였으나 하지 못하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내가 죽은 뒤에 나를 선조(先祖)의 무덤 곁에 장사지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안(移安)하면 내가 죽어서 눈을 감을 것이다."

하고, 말을 마치고 죽었다. 시호(諡號)를 문양(文襄)이라 하였으니, 충신(忠信)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일로 인하여 공(功)이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한다. 그 처(妻) 윤씨(尹氏)는 재상(宰相) 윤형(尹炯)의 딸인데, 성품이 질투가 심하고 사나우며 방탕(放蕩)하여, 유자환이 살아 있을 때부터 이승(尼僧)과 몰래 교결(交結)하고, 유자환이 졸(卒)함에 미쳐서도 슬픈 빛이 조금도 없었으며, 친속(親屬)들이 널[柩]을 받들고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윤씨는 몸차림을 마치 따라가려는 것처럼 하였으나, 발인(發引)하는 날 저녁에 몰래 도망하여 가지 아니하고, 마침내 머리를 깎고 이승(尼僧)이 되어 여러 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러 중[僧]을 면대(面對)하여 경(經)을 받거나 유숙(留宿)하여 성언(聲言)하기를,

"죽은 남편을 위하여 복(福)을 드리는 것이다."

하였으나, 실은 마음을 쾌락(快樂)하게 하려고 횡행(橫行)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2면
  • 【분류】
    인물(人物)

  • [註 081]
    신미년(辛未年) : 1451 문종 원년.
  • [註 082]
    임신년(壬申年) : 1452 문종 2년.
  • [註 083]
    미시(微時) : 한미하거나 미천하여 보잘것없던 때.

筽城君 柳子煥卒。 子煥, 靈光人。 初名子晃, 避睿宗諱, 改今名。 登辛未文科, 壬申拜承政院注書。 時, 世祖平定內難, 號令諸軍, 子煥目承旨朴元亨曰: "國之大事在兵, 王子豈得專之? 今日之事, 承政院當與兵曹, 共議行之。" 左右竦然。 世祖聞之, 笑曰: "注書不知事機, 然其言非凡。" 因大器之。 遂參靖難功臣。 世祖嘗曰: "子煥在靖難時, 謂予不可擅召軍士, 可謂有松栢操者矣。" 累官至同副承旨、都承旨, 尋拜吏曹參判, 封筽城君。 轉司憲府大司憲, 出爲全羅道觀察使, 未滿召還, 陞資憲。 以病卒。 子煥寬厚有雅量, 謙恭下人, 接人以誠, 人無毁譽。 然短於文章政事。 平生不食生冷, 氣熱鼻衄濱死, 猶不近冷。 子煥微時遭母喪, 葬不如意, 每語及流涕。 臨沒囑庶弟子光曰: "我欲改葬先母未就, 夫復何言? 我死之後, 葬我於先祖塋側, 移安先母, 吾死瞑目矣。" 言訖而卒。 諡文襄: 忠信愛人, 文; 因事有功, 襄。 其妻尹氏, 宰相之女也。 性妬悍放蕩, 自子煥生時, 潛結尼僧。 及卒, 略無戚容。 親屬奉柩下鄕, 裝束, 若將隨往者, 發引之夕, 潛逃不往。 遂剃髮爲尼, 遍遊諸山, 面對諸僧, 受經或留宿, 聲言爲亡夫薦福, 而實欲快意橫行矣。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2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