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지에게 궤장을 하사하니 정인지가 전(箋)을 올려 사례하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에게 궤장(几杖)025) 을 내려 주니, 정인지가 전(箋)을 올려 사례하였다. 전(箋)에 이르기를,
"건곤(乾坤)의 대도(大度)026) 가 곡진(曲盡)하게 군생(群生)에 미치어 초목(草木) 같은 하찮은 자질이 잘못 우악(優渥)한 은혜를 입었으니, 마음 속으로 보답할 것을 맹세하고 뼈에 새겨 어찌 잊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신의 성품이 본래 어리석고 학식(學識) 또한 천박(淺薄)한데, 정난(靖難)하는 데에 수종(隨從)하였고, 다행히 일월(日月)의 여광(餘光)에 의하여 능연각(凌煙閣)에 초상(肖像)이 그려지고, 함께 영원히 변치 않을 산하(山河)의 맹세를 하였으나 국[羹]을 조리(調理)하는 방법도 깨우치지 못하고 전석(專席)의 높은 자리에 헛되이 참여하여 하는 일 없이 인원수만 채우고, 낙낙(諾諾)027) 하며 반식(伴食)028) 으로 백발(白髮)이 거울 속에 비치도록 항상 소찬(素餐)029) 의 기롱(譏弄)을 받을까 혐의(嫌疑)하였는데, 녹야(綠野)의 당중(堂中)에서 감히 70세의 나이를 넘길 것을 기약하였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상방(尙方)의 제조(製造)가 누항(陋巷)의 거처(居處)에까지 미치고 성사(星使)030) 의 내림(來臨)이 있으시어, 천위(天威)의 지척(咫尺)에서 거닐 때에 버티고 섰을 때도 버티게 되었으니, 진실로 구장(鳩杖)031) 의 지팡이에 늙은 몸을 의지하게 되었으며, 기대어 편안하고 앉아서 편안하게 되었으니, 오궤(烏几)032) 의 안석(案席)에 노구(老軀)의 여생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영광(榮光)이 여리(閭里)에 빛나고, 기쁨이 가정(家庭)에 넘칩니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무슨 공로로 특별히 우례(優禮)를 입었겠습니까? 이는 대개 주상 전하의 덕(德)이 천지(天地)와 같으심을 만나 은혜가 만물의 생성(生成)을 흡족하게 하시고, 멀리는 제왕(帝王)의 굉규(宏規)를 좇으시며, 가까이는 조종(祖宗)의 의범(懿範)을 준수하시어, 마침내 잔약(孱弱)한 자질로 하여금 큰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신은 삼가 마땅히 초심(初心)을 다시 닦아서 신의 말절(末節)을 영원히 변치 아니하여, 상유(桑楡)033) 의 만경(晩景)에 비록 선력(宣力)034) 의 노고(勞苦)를 다하지는 못할지라도, 해바라기가 햇볕을 향하는 것처럼 더욱 더 축수(祝壽)의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하였다. 옛 제도에 문무관(文武官) 1품으로서 나이가 70이 된 자에게 궤장(几杖)을 내려 주어 늙은 몸을 의지하게 하였는데, 이 법이 중간에 폐하여졌다가 이때에 이르러 겸 예조 판서(兼禮曹判書) 박원형(朴元亨)이 건의하여 다시 회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8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25]궤장(几杖) : 안석과 지팡이.
- [註 026]
대도(大度) : 큰 도량(度量).- [註 027]
낙낙(諾諾) : 순종하는 모양.- [註 028]
반식(伴食) : 유능한 관리.- [註 029]
소찬(素餐) : 공(功)도 없이 관록(官祿)을 먹음.- [註 030]
성사(星使) : 사신(使臣).- [註 031]
구장(鳩杖) : 비둘기 장식이 붙은 노인의 지팡이.- [註 032]
오궤(烏几) : 검은 칠을한 안석.- [註 033]
상유(桑楡) : 저녁 해가 뽕나무나 느릅나무 위에 걸려 있음. 즉 인생의 황혼을 이르는 말.- [註 034]
선력(宣力) : 힘을 다하여 주선함.乾坤大度, 曲遂群生; 草木微資, 謬霑殊渥。 矢心圖報, 銘骨何忘? 伏念臣性本惷愚, 學且淺薄。 隨從靖難, 幸依日月之餘光; 繪畫凌烟, 得與山河之永誓。 未曉調羹之術, 空參專席之尊。 悠悠備員, 諾諾伴食。 白髮鏡裏, 常嫌素餐之譏。 綠野堂中, 敢期稀齡之過? 矧玆尙方之造, 乃及陋巷之居。 星使來臨, 天威咫尺。 行而柱立而柱, 實賴鳩杖之扶衰; 憑亦安坐亦安, 試信烏几之送老。 光動閭里, 喜溢家庭。 顧惟何功, 特荷優禮? 玆蓋伏遇主上殿下德侔覆載, 恩洽生成。 遠述帝王之宏規, 近遵祖宗之懿範。 遂令孱質, 獲被洪私。 臣謹當更礪初心, 永堅末節。 桑楡晩景, 雖未輸宣力之勞; 葵藿傾陽, 庶益殫祝壽之懇。
舊制, 文武官一品年七十者, 賜几杖以扶老。 此法中廢, 至是, 兼禮曹判書朴元亨建議復之。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8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