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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41권, 세조 13년 1월 4일 신미 1번째기사 1467년 명 성화(成化) 3년

농우 도살 금지에 관한 대사헌 양성지의 상소문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가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하늘이 만백성을 낳아서 먹을 것으로 목숨을 삼게 하고, 땅이 오곡(五穀)을 기르되 소[牛]로써 대신 경작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무고(無故)하게 〈소를〉 살육(殺戮)하지 말라.’ 하였고, 율문(律文)에도 육축(六畜)을 잡아 죽이면 죄가 된다고 논(論)하였습니다. 지난해 이래로 외방(外方)의 농우(農牛)가 도살되는 것이 예전보다 배나 되고, 경중(京中)의 저자 안에서 하룻동안에 소를 사는 것이 수십 마리를 내리지 않는데, 이것은 모두 도살한 것을 쓰니, 이익을 취하는 데 가장 후(厚)하여 풍속(風俗)을 이루었습니다. 신이 남산(南山) 밑에 살고 있어서 남산의 소나무에 대한 일을 직접 목격하여 이를 반복해서 언급하여 청하는 바입니다. 남산의 소나무는 도읍으로 정한 이후로 70여년 동안이나 가꾸고 길러서 무려 백만(百萬)여 주(株)나 되었는데, 처음에는 거리의 아들들과 골목의 부녀자들이 삭정이[枯枝]나 솔가리[枯葉]를 몰래 져다가 불을 때었고, 중간에는 큰 창고(倉庫)를 짓기 위하여 말라 죽은 나무라고 칭탁하여 베어냈으며, 나중에는 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귀천(貴賤)을 불문하고 대낮에 떼를 지어 생나무를 바리로 실어다가 간혹 집을 짓는 자가 있었고, 한갓 집만 지을 뿐만 아니라, 수레로 실어다가 기와를 굽는다는 소리가 온 나라 안에 들렸습니다. 이렇게 벌채하였으므로 소나무는 거의 다 없어졌고, 겨우 남은 것이라곤 인가(人家)의 동산 안에 있는 수천 주(株)뿐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남산의 소나무는 진실로 없어서는 안되지만, 설혹 없다손 치더라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중외(中外)의 소[牛畜]는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데 자산(資産)이 되니,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저 큰 창고는 곡식을 들여다가 저장하는 그릇이고, 소는 곡식을 생산하는 도구입니다. 만약에 곡식을 생산하는 소가 없다면, 곡식을 들여다 저장하는 창고가 있더라도 이를 장차 무엇에 쓰겠습니까? 옛날에는 백정(白丁)과 화척(禾尺)이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경외(京外)의 양민(良民)들도 모두 이를 잡으며, 옛날에는 흔히 잔치를 준비하기 위하여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 안에서 판매하기 위하여 이를 잡고, 옛날에는 남의 소를 훔쳐서 이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에서 사서 이를 잡습니다. 백정은 일정한 수(數)가 있으나 양민은 그 수가 무한(無限)하며, 잔치는 일정한 수가 있으나 판매하는 것은 끝이 없으며, 남의 것을 훔쳐서 잡는 것은 일정한 숫자가 있으나 소를 사서 잡는 것은 무궁(無窮)하니, 일정한 수효가 있는 소를 무궁한 날에 끝없이 잡는다면, 반드시 남산의 소나무와 같이 다 벤 다음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에는 소를 잡는 도적[宰牛賊]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거골장(去骨匠)’이라 칭하고, 여염(閭閻)의 곳곳에 잡거(雜居)하면서 소를 잡아도 대소(大小) 인리(隣里)에서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에 고기를 쓸 일이 있어서 저자에서 구하려고 하면, 값을 가지고 가서 구하면 얻지 못함이 없습니다. 신이 듣건대, 백성들의 마음이 안정(安定)되어 이를 풍속이라고 이르니, 이러한 풍습이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크게 형벌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그치지를 않을 것이니, 이제부터 풍습이 바르게 될 때까지 한(限)하여 우선 군법(軍法)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무릇 소를 잡은 사람은 도둑질하여 잡았거나 사서 잡았거나를 불문하고 수종(首從)003) 을 가리지 말고 모두 다 즉시 사형에 처하되, 그 처자(妻子)와 전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소를 잡는 것을 고(告)한 자는 재산(財産)으로써 상(賞)을 주되, 벼슬로 받기를 자원(自願)하는 자는 세 자급(資級)을 뛰어서 서용(敍用)하고, 그 와주(窩主)004) 를 용납하여 머무르게 한 자는 가사(家舍)를 관가에 속하게 하며, 사대부(士大夫)는 장(杖) 1백 대에 영원히 벼슬에 서용(敍用)하지 말고, 서인(庶人)은 장 1백 대를 때려 전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삼절린(三切隣)과 정실(情實)을 알고도 소를 판 사람이나 정실을 알고 고기를 먹은 자도 역시 상항(上項)의 예(例)에 따라 시행하고, 경중(京中)의 관령(管領)과 외방(外方)의 권농(勸農)으로 그 정실을 알고도 검거(檢擧)하지 않았거나 관가에 고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장 1백 대를 때려 전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소서. 만약에 이와 같이 한다면, 거의 소를 잡는 풍속이 아주 달라져 농우(農牛)가 절종(絶種)하는 데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성주(聖主)께서 위에 계시고, 어진 신하들이 아래에 있어 언로(言路)가 가히 통(通)한다고 이를 만한데, 천일지하(天日之下)005) 에 도성(都城)의 소나무가 모두 베어져 남은 것이 없고, 또 농우(農牛)가 도살(屠殺)되어 장차 절종(絶種)에 이르게 되었으니, 신은 매양 통분(痛憤)함을 이기지 못하여 차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어서 감히 망령된 언사(言辭)를 무릅쓰고 우러러 천총(天聰)을 더럽히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자(聖慈)로 광망(狂妄)하고 참람(僭濫)됨을 용서하여 주시면 민생(民生)에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명하여 상정소(詳定所)에 내리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6면
  • 【분류】
    농업-축산(畜産) / 농업-임업(林業) / 정론(政論)

  • [註 003]
    수종(首從) : 수범자와 종범자.
  • [註 004]
    와주(窩主) : 도둑 따위를 거느리는 주인격이 되는 우두머리.
  • [註 005]
    천일지하(天日之下) : 대낮을 이르는 말.

○辛未/大司憲梁誠之上書曰:

臣竊惟天生萬民, 以食爲命; 土養五穀, 以牛代耕。 故《禮記》稱無故不殺, 律文論宰殺有罪。 去年以來, 外方農牛, 屠殺倍古。 京中市裏, 一日買牛, 不下數十, 皆用屠宰, 得利最厚, 以成風俗。 臣居南山之下, 目擊南山松木之事, 請以是反覆比之。 南山之松, 自定都以後, 培養七十餘年, 無慮百萬餘株。 初則街童巷婦, 竊負枯枝枯葉而爨之; 中則因造大倉, 稱枯株而伐之; 終則近山之人, 無問貴賤, 白晝成群, 駄載生株, 或有造家者焉。 非徒造家, 車載燔瓦之聲, 流聞國中。 以此伐之幾盡, 纔餘人家園中數千株而已。 臣愚以爲南山松木, 固不可無, 亦或可無。 中外牛畜, 耕食所資, 決不可無者也。 夫大倉, 納穀之器也; 牛畜, 生穀之具也。 若無生穀之牛, 則雖有納穀之倉, 將安用哉? 昔者白丁、禾尺宰之, 今則京外良民皆宰之; 昔者多以爲筵宴之備而宰之, 今則以市裏販賣而宰之; 昔者盜於人而宰之, 今則買於市而宰之。 白丁有數也, 而良民無數; 筵宴有數也, 而販賣無窮; 盜殺有數也, 而買殺無窮。 以有數之牛, 行無窮之殺於無窮之日, 必如南山之松, 盡伐而後已矣。 昔爲宰牛賊, 今稱去骨匠。 閭閻處處, 雜居爲之, 大小隣里, 專不爲怪。 如有用肉之事, 如取諸市, 持價而往, 求無不獲。 臣聞衆心安定, 謂之俗, 此風已成矣。 非大施刑罰, 無以止之。 自今限風俗歸正, 始依軍法施行。 凡宰牛人, 勿問盜殺買殺, 不分首從, 俱卽處死, 妻子全家徙邊。 告者以財産賞給, 自願受職者, 超三資敍用。 其容止窩主, 家舍屬公。 士夫則杖一百, 永不敍用。 庶人則杖一百, 全家徙邊。 三切隣, 及知情賣牛, 知情食肉者, 亦依上項施行。 京中管領, 外方勸農, 知情不檢擧告官者, 亦杖一百, 全家徙邊。 如是然後, 庶幾宰牛之風一變, 而農牛不至於絶種矣。 方今聖主在上, 賢臣在下, 言路可謂通矣, 而天日之下, 都城之松, 盡伐無餘。 又農牛宰殺, 將至於盡。 臣每每痛憤, 不忍含默, 敢冒妄訐之誚, 仰塵天聰。 伏惟聖慈, 恕其狂僭, 民生幸甚。

命下詳定所。


  • 【태백산사고본】 15책 4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6면
  • 【분류】
    농업-축산(畜産) / 농업-임업(林業)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