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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39권, 세조 12년 7월 7일 병자 2번째기사 1466년 명 성화(成化) 2년

공조 판서 구종직이 흥학조건을 올리다

공조 판서 구종직(丘從直)이 학문을 일으키는 조건(條件)을 올렸는데, 그 조건은 이러하였다.

"1 옛날에는 가숙(家塾)·당상(黨庠)·술서(術序)290) ·국학(國學)이 한 곳도 학문을 위한 것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후세(後世)에 와서 가숙(家塾)의 법이 폐지된 까닭으로 궁벽한 마을의 후생(後生) 연소(年少)는 비록 훌륭한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이 있더라도 어찌 능히 스스로 그 몽매한 것을 깨우칠 수가 있겠습니까? 신(臣)은 원하건대 주군(州郡)의 각 마을에 학문과 덕행(德行)이 있는 사람을 가려서 스승으로 삼아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자제(子弟)를 가르치도록 하고, 그 성명(姓名)을 써서 차례대로 보고하여 임금에게 아뢰도록 하되, 만약 효과와 이익이 있으면 신역(身役)을 면제해 주도록 명하고, 그 중에 더욱 훌륭한 사람은 혹은 산관(散官)의 관직을 임명한다면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공부하는 기풍(氣風)이 마을에서 일어나게 되고, 장년(壯年)이 되어 종군(從軍)하는 사람도 또한 임금을 높이고 윗사람을 사랑하는 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2. 옛날에는 창을 손에 쥐고 왕궁(王宮)을 숙위(宿衛)하는 것이 모두 사대부(士大夫)의 직책이었는데, 진(秦)나라·한(漢)나라 이래로 이 제도가 이미 폐지되어, 방패를 가지고 섬돌 밑에서 지키고 창을 쥐고 호위하는 일을, 혹은 사람을 때려 죽여서 파묻어 버리는 어리석고 사나운 무리로 둘러서게 했으니, 진실로 개탄(慨歎)할 만한 일입니다. 지금은 도총관(都摠管)과 위장(衛將)·부장(部將)이 모두 사대부(士大夫)의 직책을 겸무(兼務)하고 있으니, 이것은 삼대(三代)291) 이전의 훌륭한 법입니다. 신(臣)은 원하건대 기문(期門)292) ·우림(羽林)의 군사도 《소학(小學)》의 다섯 곳에 조(粗)293) ·통(通) 이상인 사람에게 시험하여 처음의 관작(官爵)을 허가한다면, 비록 정미(精微)한 학문의 연구에는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또한 신하가 되어 충성을 위해 죽고, 자식이 되어 효도를 위해 죽는 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3. 지금 경외(京外)에서 사유(師儒)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동배(同輩)의 저술을 답습(踏襲)하여 다행히 과거(科擧)에 합격하여 등급을 뛰어 올라 고비(皐比)294) 에 거처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신(臣)은 원하건대 향교(鄕校)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그 도(道)의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일동(一同)이 강(講)을 상고하여 등급을 나누어서 장부에 기록하여 차례대로 이들을 임용한다면, 거의 인재(人才)를 만들어 성취시키는 공로(功勞)가 있게 되고 해(亥)자와 시(豕)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노(魯)자와 어(魚)자를 분변하지 못하는 탄식은 없을 것입니다.

4. 문무(文武)를 병용(竝用)하는 것은 고금(古今)의 공통(共通)된 도리이니, 피차(彼此)에 경중(輕重)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신(臣)은 원하건대 과거(科擧)에서 선비를 뽑는 즈음에 문과(文科)에 입격(入格)한 사람 중에서 일찍이 무과(武科)의 향시(鄕試)든지 관시(觀試)295) 에 입격했던 사람이 있으면 그 분수(分數)를 다른 것에 비교하여 더 주도록 하고, 무과(武科)에 입격한 사람 중에서 일찍이 문과(文科)의 향시(鄕試)든지 관시(館試)에 입격했던 사람이 있으면 그 분수(分數)를 또한 다른 것에 비교하여 더 주도록 한다면, 문무(文武)의 재간이 다 두 가지를 겸하여 익히게 되고 한 쪽을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5. 경서(經書)와 사서(史書) 중에서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은 《소학(小學)》의 한 책에 갖추어져 있으니, 진실로 학자(學者)의 시초에서 끝까지 완성(完成)시키는 글입니다. 신(臣)은 원하건대 문과(文科)에서 강경(講經)할 때에 모름지기 《소학(小學)》으로 한 가지의 경서(經書)에 충당시킨다면 그 나아가는 바가 바르므로 군자(君子)가 되는 귀추(歸趨)를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6. 국가에서 서부(庶府)와 백사(百司)에 있어 비록 서(署)든지 국(局)이든지 소사(小司)일지라도 오히려 제조(製造)가 이를 겸하여 다스리고 있으니, 신(臣)은 원하건대 종학(宗學)296) 과 사학(四學)에 각기 제조(製造)를 두어 상시로 근실하고 태만한 실상을 상고하게 한다면 사유(師儒)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그 직책을 다하게 되고, 학도(學徒)들도 또한 태만하고 해이(解弛)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7. 공자(孔子)의 말씀에, ‘제자(弟子)는 집에 돌아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우애하며, 실행(實行)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우라.’고 했는데, 이를 해석하는 사람의 말에, ‘덕행(德行)은 본업(本業)이고 문예(文藝)는 말무(末務)이니, 덕행을 닦으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옛날 사람의 자취를 실천(實踐)한 연후에 덕행이 그제야 성취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臣)은 원하건대 과거(科擧)에서 선비를 뽑는 즈음에는 반드시 경사(經史)에 널리 통한 것을 우선으로 삼고 제술(製述)을 뒤로 삼는다면 선비의 풍습(風習)이 부박(浮薄)하고 화려함을 숭상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8. 공자(孔子)의 말씀에, ‘그대의 아는 사람만 천거하라.’고 했으니, 전 사성(司成) 신(臣) 주백손(朱伯孫)·전 사예(司藝) 신(臣) 임수겸(林守謙)·전 직강(直講) 신(臣) 이극증(李克增)·검상(檢詳) 신(臣) 이극기(李克基)·경력(經歷) 신(臣) 구치동(丘致峒)·군수(郡守) 신(臣) 김영벽(金映壁)·현감(縣監) 신(臣) 김석통(金石通)·신(臣) 방강(方綱) 등 8인은 학술(學術)이 정밀(精密)하고 심오(深奧)하므로, 모두가 남의 스승이 될 만합니다. 그들의 관작 차례에 따라서 성균관(成均館)이든지 종학(宗學)이든지 사학(四學)의 책임을 맡긴다면, 학도(學徒)들이 반드시 모두 자제(子弟)가 되기를 즐겨하고 부형(父兄)이 자제(子弟)를 소속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도 마땅히 또한 많을 것이니, 이것도 또한 학문을 일으키는 한 부분입니다."

구종직(丘從直)은 사람됨이 성품이 추솔(麤率)하여 비록 명칭은 사유(師儒)이지만 그 실상은 문리(文理)도 통달하지 못하였다. 교관(敎官)으로부터 한 해 동안에 관등(官等)을 뛰어 올라 판서(判書)에 이르니 총애(寵愛)가 날로 깊어가는데도, 구종직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는 데만 전일(專一)하여 선배(先輩)를 업신여기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9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

  • [註 290]
    당상(黨庠)·술서(術序) : 당상(黨庠)은 5백 가(家)인 당(黨)의 학교이고, 술서(術序)는 1만 2천 5백 가(家)인 술(術)의 학교임.
  • [註 291]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의 세 왕조(王朝).
  • [註 292]
    기문(期門) : 천자를 호위하는 군사.
  • [註 293]
    조(粗) : 과거를 보거나 서당에서 글을 욀 때에 성적을 매기는 등급의 하나로서 순(純)·통(通)·약(略)·조(粗)·불(不)의 다섯 등급이 있었음.
  • [註 294]
    고비(皐比) : 스승의 좌석.
  • [註 295]
    관시(觀試) : 무과(武科)의 초시(初試)로서 서울의 훈련관(訓鍊觀)에서 보이던 시험. 문과는 성균관(成均館)에서 보였는데, 이를 관시(館試)라 하였음.
  • [註 296]
    종학(宗學) : 조선조 때 왕족의 교육을 맡던 학교. 세종 10년(1428)에 베풀어서 연산군 때에 폐하였고, 중종 때에 또 베풀었다가 그뒤 다시 폐하였음.

○工曹判書丘從直進興學條件。

其一曰, 古者家塾、黨庠、術序、國學, 無一地非學。 後世家塾之法廢, 故窮村僻巷後生年少, 雖有良才美質, 安能自發其蒙? 臣願州郡各里, 擇有學行者爲之師, 俾敎近居子弟。 書其姓名, 以次而報, 轉聞于上。 如有効益, 命除身役, 其尤良者, 則或授散官之職, 則朝耕夜讀之風, 興於里巷。 壯而從軍者, 亦知尊君親上之道矣。

其二, 古者執戈戟以宿衛王宮, 皆士大夫之職。 而下, 此制旣廢, 陛楯執戟, 或環以椎埋嚚悍之徒, 良可慨也。 方今都摠管、衛、部將, 皆兼士大夫之職, 此卽三代以前之良規也。 臣願騎門、羽林之士, 《小學》五處粗通以上者, 試許初爵, 則雖未入精微之蘊者, 亦知爲臣死忠, 爲子死孝之道矣。

其三, 今京外任師儒之責者, 蹈襲儕輩之述, 幸中科第, 而躐居皐比者, 間或有之。 臣願任鄕校之責者, 令其道監司、守令, 一同考講, 分等置簿, 以次而用之, 則庶有作成之効, 而無亥豕魯魚之嘆矣。

其四, 文武竝用, 古今之通道, 不可輕重於彼此也。 臣願科擧取士之際, 於文科入格之中, 曾入武擧鄕觀試者, 則其分數視他加給; 於武擧入格之中, 有曾入文科鄕館試者, 則其分數, 亦視他加給, 則文武之才, 皆兼習而不偏廢矣。

其五, 經史之中, 嘉言善行, 具在《小學》一書, 誠學者成始成終之書也。 臣願文科講經之際, 須以《小學》備一經, 則其所趨正, 而不失爲君子之歸矣。

其六, 國家於庶府百司, 雖署局小司, 尙有提調以兼領之。 臣願宗學四學, 各置提調, 常考勤慢之實, 則任師需之責者, 庶盡其職, 而學徒亦不至於怠弛矣。

其七, 孔子曰: "弟子, 入則孝, 出則弟, 行有餘力, 則以學文。" 釋之者曰: "德行, 本也; 文藝, 末也。 欲修德行, 須踐古人之迹, 然後德乃成也。" 臣願科擧取士之際, 必以博通經史爲先, 製述爲後, 則士習不至於浮靡矣。

其八, 孔子曰: "擧爾所知。" 前司成臣朱伯孫、前司藝臣林守謙、前直講臣李克增、檢詳臣李克基、經歷臣丘致峒、郡守臣金映璧、縣監臣金石通、臣方綱等八人, 學術精深, 皆可爲人師也。 隨其爵次, 俾任成均、宗學、四學之責, 則學徒必皆樂爲子弟, 而父兄之願屬子弟者, 宜亦衆矣。 此亦興學之一端也。

從直爲人性麤率, 雖名師儒, 而其實則不達文理。 自敎官一歲間, 超至判書寵幸日深, 而從直一於迎合, 凌蔑先輩。


  • 【태백산사고본】 14책 3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9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