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길도 관찰사 오응이 여진의 변고에 대비하고 있음을 아뢰다
함길도 관찰사(咸吉道觀察使) 오응(吳凝)이 회령 절제사(會寧節制使) 어유소(魚有沼)의 정장(呈狀)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사오이(沙吾耳)에 거주하는 올량합(兀良哈)의 대이사(大伊舍)가 와서 말하기를, ‘동복(同腹) 형인 이라대(伊羅大)가 원래 벌인(伐引)에 거주하다가 지금 가족을 이끌고 옮겨와서 사오이(沙吾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고 하였고, 또 알타리(斡朶里)의 삼하(三下)와 부만호(副萬戶) 마다롱개(馬多弄介) 등이 와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본래 오음회(吾音會)에 거주했는데 경진년245) 무렵에 포주(蒲州)로 옮겼으나 안정해 살 수가 없었으므로 지금 이미 가족을 이끌고 예전의 거주지로 돌아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였고, 또 경흥진 절제사(慶興鎭節制使)의 정장(呈狀)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강(江)246) 밖에 거주하는 여진(女眞)의 상호군(上護軍) 김유유합(金留有哈)이 와서 말하기를, ‘벌인(伐引)에 거주하는 올량합(兀良哈) 등이 통기(通寄)하기를, 「심처(深處) 구주(具州)의 올적합(兀狄哈)이 해마다 침략(侵掠)하는 까닭으로 우리들이 안정해 살 수가 없어서 지금 들어와 귀부하여 화해(和解)하려고 하였는데, 인하여 목계(木契)247) 를 보내어 우리들을 부르는 까닭으로 우리들이 모두 들어와 귀부하려고 합니다.」 했습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또 종성진 판관(鍾城鎭判官) 정예손(鄭禮孫)의 정장의 해당 절목에,
"수주(愁州)에 거주하는 올량합(兀良哈)의 중추(中樞) 유상동개(柳尙同介)·유요시로(柳要時老)와 도만호(都萬戶) 유주린개(柳州麟介) 등이 와서 말하기를, ‘일리(一里)에 거주하는 올량합(兀良哈)과 동량북(東良北)·벌인(伐引)·아치량이(阿赤良耳)·상가하(尙家下)·두문(豆門)·훈춘(訓春) 등지에 거주하는 올량합(兀良哈) 등이 우미거 올적합(亐未車兀狄哈)과 더불어 강화(講和)하려고 하여 군사 1천 5백여 명을 거느리고서 가하라(加下羅) 등지에 들어와 귀부하였습니다.’ 하므로 신(臣)이 여러 진보(鎭堡)에 명령하여 군사를 정돈하여 변고(變故)에 대비(待備)토록 하고, 아울러 평안도(平安道)에도 치보(馳報)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9권 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21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관방(關防)
○咸吉道觀察使吳凝, 據會寧節制使魚有沼呈啓: "沙吾耳住兀良哈 大伊舍來言: ‘同生兄伊羅大, 元居伐引, 今挈家移居沙吾耳。’ 且斡朶里 三下及副萬戶馬多弄介等來言: ‘吾等本居吾音會, 庚辰年間徙蒲州, 不得安居, 今已挈家還舊居。’" 又據慶興鎭節制使呈啓: "江外住女眞卜護軍金留有哈來言: ‘伐引住兀良哈等通言曰: 「深處具州 兀狄哈, 每年侵掠, 故吾等未得安居。 今欲入歸和解, 因送木契招吾等, 故吾等皆欲入歸。」’" 且鍾城鎭判官鄭禮孫呈: "該愁州住兀良哈中樞柳尙同介ㆍ柳要時老、都萬戶柳州麟介等來言: ‘一里住兀良哈及東良北、伐引、阿赤良耳、尙家下、豆門、訓春等處住兀良哈等, 欲與亏未車兀狄哈講和, 率兵一千五百餘名, 入歸加下羅等處。’ 臣令諸鎭堡, 整兵待變, 幷馳報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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