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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38권, 세조 12년 4월 15일 을묘 3번째기사 1466년 명 성화(成化) 2년

《시경》에 대해 대신들이 쟁론하다

임금이 새로 정한 《시경(詩經)》의 구결(口訣)을 보고, ‘《관관저구(關關雎鳩)》’의 구결에 이르러서 임금이 말하기를,

"옳지 못한 것이 있다."

하니, 여러 신하가 모두 말하기를,

"《시경》은 음영(吟詠)을 근본으로 하였으니, 무방할 듯합니다."

하였는데, 병조 참판 구종직(丘從直)은 말하기를,

"진실로 성상의 뜻과 같습니다."

하였다. 유생(儒生)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함에 미쳐서 공자맹자에 말이 미치자, 임금이 구종직에게 묻기를,

"맹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맹자는 현자(賢者)가 아닙니다."

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희롱하는 말로 맹자는 미진(未盡)한 곳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런 대답을 한 것이다. 임금이 또 어제(御製) ‘《비빙가(飛氷歌)》’를 내어서 말하기를,

"어떠하냐?"

하니, 구종직이 찬사를 드리기를,

"《비빙가》’는 《시경(詩經)》 3백 편(篇)이 여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였다.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가 나와 말하기를,

"구종직은 소견대로 아니하고 매사에 성상의 뜻을 맞추려고 합니다. 처음 《시경》에서 성상의 뜻에 아부하고, 또 맹자를 어질지 못하다고 하였으며, 또 ‘《비빙가》’를 《시경》 3백 편보다 낫다고 했으니, 그 말이 모두 아첨에서 나와서 구차히 합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조정 신하가 이를 본받으면 나라 일이 날마다 그릇될 것이니, 청컨대 죄를 주소서."

하였다. 임금이 두 사람에게 명하여 앞에 나와서 다시 옳고 그름을 힐난하게 하니, 양성지가 말하기를,

"맹자는 백대의 스승인데 구종직이 갑자기 어질지 못하다고 하니, 이로써 아첨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구종직이 성내어 말하기를,

"아첨은 신하의 큰 죄인데 신이 어찌 감히 하겠습니까? 신이 맹자를 어질지 못하다고 이른 까닭은, 맹자가 말하기를, ‘저는 부(富)로써 하는데 나는 인(仁)으로 하며, 저는 작(爵)으로써 하는데 나는 의(義)로써 하니, 내가 어찌 저를 두려워하랴!’ 하였고, 또 말하기를, ‘바라보아도 인군(人君) 같지 아니하고 나아가도 두려운 바를 보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어찌 인신(人臣)으로서 말할 바이겠습니까? 이제 양성지가 신을 아첨한다고 하니, 신이 양성지와 더불어 어찌 감히 같은 조정에 있겠습니까? 청컨대 성상께서는 과죄(科罪)하소서."

하고, 인하여 고두(叩頭)하니,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경은 대사헌과 더불어 굳이 다투는가?"

하였으나, 구종직이 말을 다해 다투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어찌 능히 문자(文字)로써 이길 것인가?"

하였다. 구종직이 지리하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끌어 스스로 변명하기 때문에 임금이 문자로써 말하였다. 또 말하기를,

"대사헌은 일국의 기강(紀綱)인데, 경이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또 양성지에게 이르기를,

"구종직은 대신인데, 면척(面斥)함이 옳은가?"

하니, 양성지가 대답하기를,

"신은 직무가 사헌부에 있기 때문에 감히 탄핵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고, 강개(慷慨)히 다투어 변론하니, 구종직이 말이 막혔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은 화해하라."

하고, 인하여 술을 내려 주었다. 그러나 임금이 양성지를 옳게 여기고 구종직의 아첨함을 그르게 여겼다. 이 먼저 구종직정자영(鄭自英)과 더불어 임금 앞에서 쟁론(爭論)하였는데, 구종직공자맹자를 옳지 못하다고 하였으므로 정자영과 다투어 두 사람이 떠들기를 오래 하다가 이미 자리에 나아가서도 다투기를 오히려 그치지 아니하였다.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김수령(金壽寧)이 자리에 있다가 구종직에게 말하기를,

"참판은 소시적에 무슨 글을 읽었으며, 무엇을 스승으로 삼았는가? 공자·맹자를 옳지 않다고 하면 따로 스승으로 삼는 바가 있는가?"

하니, 구종직이 말하기를,

"가령 내가 공자의 문하(門下)에서 나왔더라도 오히려 그 옳고 그름을 다투어 논할 것인데, 어찌하여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가?"

하니, 김수령이 말하기를,

"가령 참판이 공자의 문하에서 나왔더라도 오히려 그 옳고 그름을 능히 논하겠으면, 나는 참판 밑에 있으면서 홀로 한 마디 말을 못하겠는가?"

하고, 정자영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보덕(輔德)이 주상 앞에 있으면서 어찌하여 이처럼 떠드는가?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가슴속의 경위(涇渭)227) 는 사람이면 누가 없겠는가?"

하니, 두 사람이 잠잠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8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8면
  • 【분류】
    정론(政論) / 어문학-문학(文學) / 인물(人物)

  • [註 227]
    경위(涇渭) : 옳고 그름을 판단함.

○上覽新定《詩口訣》。 至‘《關關睢鳩》’口訣, 上曰: "有所未可。" 諸臣皆曰: "《詩》本吟詠, 似亦無妨。" 工曹參判丘從直曰: "誠如上旨。" 及講儒生經書, 言及。 上問從直曰: "孟子何如人也?" 對曰: "孟子非賢者也。" 上嘗戲言孟子有未盡處, 故有是對。 上又出御製《飛氷歌》, 曰: "何如?" 從直讃曰: "《飛氷歌》, 三百篇不能及也。" 大司憲梁誠之進曰: "從直, 不以所見, 每事承迎。 初於《詩》阿上意, 又以孟子爲不賢, 今又以《飛氷謌爲》過於三百篇。 其言皆出於阿諂, 以求苟合。 廷臣效此, 國事日非矣。 請罪之。" 上命二人就前, 更詰是非。 誠之曰: "孟子, 百世之師也。 從直遽以爲不賢, 是以謂之阿諂也。" 從直怒曰: "阿諂, 人臣之大罪, 臣豈敢爲? 臣之所以謂孟子爲不賢者, 孟子曰: ‘彼以其富, 我以吾仁; 彼以其爵, 我以吾義。 吾何畏彼哉!’ 又曰: ‘望之不似人君, 就之不見所畏焉。’ 此何等語也? 豈人臣之所言也? 今誠之以臣爲諂, 臣與誠之, 豈敢同朝? 請上科罪。" 因叩頭。 上笑曰: "卿與大司憲固爭?" 從直極口爭之。 上曰: "卿豈能以文字取勝乎?" 從直多引支辭蔓語以自辨, 故上以文字言之。 又曰: "大司憲, 一國綱紀。 卿何敢如是?" 又謂誠之曰: "從直, 大臣也。 面斥之可乎?" 誠之對曰: "臣職在憲府, 不敢不劾。" 慷慨爭辨, 從直語塞。 上曰: "卿等和解。" 因賜酒。 然上是誠之而非從直之諛矣。 先是, 從直鄭自英, 爭論上前。 從直爲非是, 自英爭之, 二人喧鬨良久, 旣就坐, 爭猶未已。 僉知中樞院事金壽寧在坐, 謂從直曰: "參判少時, 讀何書, 以何爲師? 以爲非是, 則將別有所師乎?" 從直曰: "使吾生於門, 猶且爭論其是非, 何言不可?" 壽寧曰: "使參判生門, 尙能論其是非, 以我在參判之下, 獨不得一言乎?" 顧謂自英曰: "輔德在上前, 何喧鬨若是乎? 雖不言胸中涇渭, 人誰不有?" 二人默然。


  • 【태백산사고본】 14책 38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8면
  • 【분류】
    정론(政論) / 어문학-문학(文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