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에서 개성부에 토관을 설립할 것을 건의하다
이조(吏曹)에서 아뢰기를,
"개성부(開城府)는 본래 향리(鄕吏)가 없고 사신(使臣)이 왕래하는 도회지(都會地)이니, 평양(平壤)·함흥(咸興)에 의하여 토관(土官)444) 을 설립하여, 개성 도부사(開城都府司)에 도부(都府) 1인 정(正)5품, 승(丞) 1인 종(從)6품, 주부(注簿) 2인 정8품, 전빈서 주부(典賓署注簿) 1인 정7품, 직장(直長) 1인 종8품, 녹사(錄事) 2인 종9품, 군기서 주부(軍器署注簿) 1인 종7품, 녹사(錄事) 2인 종9품, 영작원 판관(營作院判官) 1인 종7품, 녹사 2인 종9품, 전주서 직장(典酒署直長) 1인 종8품, 녹사 1인, 권무 사창서 직장(權務司倉署直長) 1인 종8품, 녹사 2인, 권무 사옥서 직장(權務司獄署直長) 1인 종8품, 녹사 1인, 권무(權務) 인흥부(仁興部)·예안부(禮安部)·지안부(智安部)·신평부(信平部)에 각각 사(使) 1인 종6품, 녹사 1인, 권무 지인(權務知印) 20명은 예전대로 하고, 전리(典吏) 35명은 주사(主事)로 개칭하고, 그 서반직(西班職)은 병조(兵曹)로 하여금 의논하여 정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3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7책 712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444]토관(土官) : 조선조 때 평안도와 함길도의 변방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큰 고을에 따로 설치하였던 지방 관아의 벼슬. 《세종실록》 지리지를 보면 평양(平壤)·경원(慶源)·회령(會寧)·온성(穩城) 4곳에 동반(東班)·서반(西班) 합하여 모두 6백 34인을 두었음.
○吏曹啓: "開城府本無鄕吏, 而使臣往來都會之地, 依平壤、咸興, 設立土官, 開城都府司, 都府一正五品, 丞一從六品, 注簿二正八品, 典賓署注簿一正七品, 直長一從八品, 錄事二從九品, 軍器署注簿一從七品, 錄事二從九品, 營作院判官一從七品, 錄事二從九品, 典酒署直長一從八品, 錄事一, 權務司倉署直長一從八品, 錄事二, 權務司獄署直長一從八品, 錄事一, 權務仁興部、禮安部、智安部、信平部各使一從六品, 錄事一, 權務知印二十, 仍舊。 典吏三十五, 改稱主事, 其西班職, 則令兵曹議定。" 從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3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7책 712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