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영·구종직·유희익 등에게 《주역》을 논하게 하다
이조(吏曹)·병조(兵曹)의 당상(堂上)·낭관(郞官)에게 명하여 어전(御前)에 들어와 전주(銓注)하게 하고,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 정자영(鄭自英), 직강(直講) 구종직(丘從直)·유희익(兪希益), 주부(注簿) 유진(兪鎭)을 불러서 모두 앞에 나와 《주역》을 논하라고 명하였다. 전교하기를,
"네 사람이 의리를 정(精)하게 아니, 내가 은총으로 대접하여 여러 선비를 권려하고자 한다. 내가 《역전(易傳)》을 보니 《정전(程傳)》은 잘 통하나 《주전(朱傳)》은 혹 막히니, 주희(朱熹)가 정자(程子)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대단히 멀다. 내가 그러므로 《정전》으로 구결(口訣)을 정하였다."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어정 구결(御定口訣)을 가지고 서로 논변하게 하였다. 정자영·유희익은 장구(章句)에만 구애되고, 유진은 조금 능히 대답하나 임금의 뜻을 어기기 어려워서 주희(朱熹)를 정자(程子)의 아래가는 사람이라 하고, 구종직은 취하여 망령되게 대답하고, 정자영을 주희의 위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구종직은 늙어서 그렇지 다른 뜻은 없다. 그러나, 너희들이 각각 소업(所業)에 부지런하여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으니,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
하고, 드디어 구종직·정자영 등에게 옥관자(玉貫子)를 갖춘 망건(網巾) 각각 하나씩을 주고, 제수하여 당상(堂上)으로 삼고, 또 유희익의 자급을 더하고, 유진은 병조 좌랑(兵曹佐郞)에 제수하였다. 말하기를,
"유진은 우소(迂疏)한 선비가 아니니, 오랫동안 성균관에 둘 수 없다."
하고, 각각 술을 올리도록 명하고, 또 사복(司僕) 등을 불러 술을 먹였다. 장가로(將家老)·등안길(藤安吉)에게 명하여 합내(閤內)에 들어와서 술을 올리도록 명하고, 전교하기를,
"이 무리는 격외(格外)의 사람들인데 투화(投化)하여 왔으니 마땅히 이렇게 후대한다. 너희들은 각각 종류 중의 임사(任使)할 만한 자를 유인하여서 투화하여 오라."
하였다. 인하여 정자영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을 편안히 하고 적을 제어할 수 있느냐?"
하니, 정자영이 대답하기를,
"작은 백성의 괴로움은 정령(政令)이 번거롭고 부세(賦稅)가 중한 데에 있습니다. 지금 수령들이 성상의 뜻을 받들지 않고 백성에게 폐해를 끼칩니다. 참으로 능히 정부(政府)·육조(六曹)의 당상(堂上)을 모두 그 적합한 사람을 얻으면 감사·수령도 또한 모두 적합한 사람이 얻어져서 저절로 민폐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37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70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왕실-경연(經筵)
○命吏兵曹堂上、郞官, 皆入御前銓注, 召成均館司藝鄭自英、直講丘從直ㆍ兪希益、注簿兪鎭, 命皆就前, 論《易》。 傳曰: "四人精曉義理, 吾欲寵遇, 以勸諸儒。 予觀《易傳》 《程傳》甚通, 《朱傳》或疑。 朱不及程大遠, 予故以《程傳》定口訣。" 使人將御定口訣, 互相論辨。 自英、希益拘於章句, 鎭稍能對, 然重違上旨, 謂以朱熹爲程子下輩人, 從直醉妄對, 至以自英擬於朱熹之上。 上笑曰: "從直老而無意。 然汝等各勤所業, 老而不倦, 予甚嘉之。" 遂賜從直、自英等玉貫子具網巾各一事, 拜爲堂上, 又加希益資, 拜鎭兵曹佐郞。 曰: "鎭非迂儒, 不可久置成均" 命各進酒, 又召司僕等饋酒。 命將家老、藤安吉入閤內進酒, 傳曰: "此輩格外人也, 投化而來, 當如是厚遇。 汝等其各誘引種類可任者, 投化已來。" 仍問自英曰: "何以安民制敵?" 自英對曰: "小民之苦, 在政煩賦重。 今守令不奉上意, 以貽民弊。 誠能政府、六曹堂上皆得其人, 則監司、守令亦皆得人, 而自無民弊矣。"
- 【태백산사고본】 13책 37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70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