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과 시험에서 급제자의 등급에 대하여 논의하다
하동 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봉원 부원군(蓬原府院君) 정창손(鄭昌孫)·영의정(領議政) 신숙주(申叔舟)·좌의정(左議政) 구치관(具致寬)·우찬성(右贊成) 박원형(朴元亨)·좌참찬(左參贊) 최항(崔恒)·예조 판서(禮曹判書) 원효연(元孝然)·참판(參判) 임원준(任元濬)·참의(參議) 김수령(金壽寧)·좌승지(左承旨) 이파(李坡)·동부승지(同副承旨) 허종(許琮) 등을 독권관(讀券官)으로 삼고, 문과 급제(文科及弟)를 시험하였는데, 임금이 친책(親策)하기를,
"어진이를 구(求)하는 시책(試策)은 오로지 경륜(經綸)085) 을 하기 위함이니 만약 필묵(筆墨)086) 의 날카롭고 둔(鈍)한 것만을 논한다면 하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대개 요(堯)임금과 걸(桀)임금은 성품은 한가지였으나 성패(成敗)는 달랐고, 한(漢)나라와 당(唐)나라는 시대는 달랐으나 치란(治亂)한 것은 같았으며, 배구(裵矩)087) 는 한 사람인데도 충성과 망령됨이 달랐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임금으로 누가 나라를 잘 다스려 편안히 하려고 하지 않겠으며, 세상에 어찌 어진 인재가 있지 않겠는가? 다스리려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으면 등용(登庸)의 길은 항상 좁아서, 위로는 진질(疢疾)088) 하려는 생각이 없고 아래로는 뛰어나게 분발할 뜻이 없으며, 임금은 교화를 베풀 수가 없고 신하는 교지를 받들 수가 없으며, 선비는 있으되 심상(尋常)한 데에 습관되어, 몸을 먼저 하고 집을 먼저 하며 벗을 먼저 하여 나라를 뒤로 하고, 망하게 되면 나라를 먼저 하고 벗을 먼저 하며 집을 먼저 하여 몸을 뒤로 하니, 그렇다면 어진이를 구하는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조정에 있는 선비는 모두 일찍이 과거(科擧)에 급제한 자인데도, 이러한 병폐를 면하게 할 자가 있지 않으니, 어찌하여 나의 암매(暗昧)함을 밝혀 주지 않으며, 어찌 하여 대신(大臣)들은 고식적(姑息的)으로 세월을 보내는가? 어찌하여 사풍(士風)은 날로 게으르고 조행이 없으며, 어찌하여 어진 인재는 실로 한 사람도 없는가? 어찌하여 천운(天運)의 대서(代序)가 그러하며, 어찌하여 막혔으며, 어찌하여 급[絞]하며, 어찌하여 간악한가? 그 술책이 있으면 조목마다 대답하라."
하였다.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니, 왕세자(王世子)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정창손·신숙주·구치관·박원형·이조 판서(吏曹判書) 양성지(梁誠之)·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이석형(李石亨)·인순부 윤(仁順府尹) 한계희(韓繼禧)·도승지(都承旨) 노사신(盧思愼)·좌부승지(左副承旨) 윤필상(尹弼商)·우부승지(右副承旨) 오백창(吳伯昌)이 수가(隨駕)하였다. 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병조 판서(兵曹判書) 윤자운(尹子雲)·참판(參判) 송문림(宋文琳)·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행 호군(行護軍) 남질(南軼)·우승지(右承旨) 신면(申㴐) 등을 무거 참시관(武擧參試官)으로 삼고, 명하여 무거인(武擧人) 등에게 먼저 사후(射侯)하게 하고, 다음에 기사(騎射)089) 하게 하여 김계정(金繼貞) 등 28인을 뽑았다. 임금이 종친과 재추와 더불어 술자리를 베풀고, 야인(野人) 김사롱합(金沙弄哈) 등 6인을 불러 술을 먹이고, 명하여 신숙주에게 말하게 하기를,
"내가 오늘 마침 무거(武擧)를 시험보므로 여기에 이르러 너희들을 보려고 불렀다."
하고, 날이 저물어서 환궁하였다. 정인지 등이 진사(進士) 정휘(鄭徽)의 대책(對策)을 가지고 제1등(第一等)으로, 성진(成晉)을 제3등(第三等)으로 헤아렸는데, 성진의 책문(策文)은 자못 기이한 기상이 있었다. 임금이 성진을 제1등으로 뽑고 묻기를,
"정휘(鄭徽)는 어느 것이 성진(成晉)보다 나으냐?"
하니, 정인지 등이 말하기를,
"정휘는 해성(解省)090) 에서 모두 장원(壯元)을 하였으니, 또한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과연 재주있는 자로구나, 응분의 관계(官階)091) 를 받는 것이 옳다."
하고, 이어서 2자급(資級)을 뛰어 올렸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3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72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
- [註 085]경륜(經綸) : 천하(天下)를 다스림.
- [註 086]
필묵(筆墨) : 문장.- [註 087]
배구(裵矩) : 당(唐)나라 문희(聞喜) 사람. 문장(文章)을 잘 하였음. 북제(北齊)에서 벼슬살며 고평왕(高平王)의 문학(文學)을 돕다가 수(隋)나라가 되자 이부 시랑(吏部侍郞)에 누천(累遷)되었으며, 서역(西域) 경략(經略) 때에는 토곡혼(吐谷渾)을 쳐부수고, 황제를 따라 요(遼)나라를 정벌하여 그 노고로 우광록 대부(右光錄大夫)가 되었으나 곧 황제의 뜻에 거슬려 관직에서 물러났음. 후에 우문화(宇文化)가 참위(僭位)하자 하북도 안무 대사(河北道安撫大使)가 되었으며, 얼마 있다가 당(唐)나라에 귀화하여 민부 상서(民部尙書)에 누천되었음.- [註 088]
진질(疢疾) : 열병. 어렵고 힘드는 일을 해내기 위하여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것을 가리킨 말.- [註 089]
○丙戌/以河東府院君 鄭麟趾、蓬原府院君 鄭昌孫、領議政申叔舟、左議政具致寬、右贊成朴元亨、左參贊崔恒、禮曹判書元孝然、參判任元濬、參議金壽寧、左承旨李坡、同副承旨許琮等爲讀券官, 試文科及第, 上親策曰: "求賢試策, 專爲經綸, 若論筆墨之利鈍, 不如勿焉。 蓋堯、桀一性也, 而成敗殊, 漢、唐異代也, 而治亂同, 裵矩一人也, 而忠侫別, 其故何也? 君誰不欲治安世, 何無有賢材? 欲治之心不切, 登庸之路常窄, 上無存疢之慮, 下無挺奮之意, 君不能施化, 臣不能奉敎, 爲士者存, 則習於尋常, 先身先家, 先友後國, 喪則先國, 先友先家後身, 然則求賢之志安在? 今在朝之士, 皆嘗登第者也, 而未有免此病者, 豈予之暗昧不照歟, 豈大臣之姑息度日歟? 豈士風之日偸無操歟, 豈賢才之實無一人歟? 豈天運之代序然歟, 豈壅歟, 豈絞歟, 豈慝歟? 其有術乎, 逐條以對。" 幸慕華館, 王世子與孝寧大君 (補)〔𥙷〕 、臨瀛大君 璆、永膺大君 琰、昌孫、叔舟、致寬、元亨、吏曹判書梁誠之、判漢城府事李石亨、仁順府尹韓繼禧、都承旨盧思愼、左副承旨尹弼商、右副承旨吳伯昌隨駕。 以上黨府院君 韓明澮、兵曹判書尹子雲、參判宋文琳、淸城君 韓終孫、行護軍南軼、右承旨申㴐等, 爲武擧參試官, 命武擧人等先射侯, 次騎射, 取金繼貞等二十八人。 上與宗宰設酌, 召野人金沙弄哈等六人饋酒, 命叔舟語之曰: "子於今日適試武擧, 到此欲見汝等召之。" 及暮還宮。 麟趾等以進士鄭徽對策擬第一, 成晋第三, 晋策頗有奇氣。 上擢晋第一, 問曰: "徽孰與晋" 麟趾等曰: "徽於解省皆作壯元, 亦難得也。" 上曰: "是果才者。 可於應受官階。" 仍超二級。
- 【태백산사고본】 13책 3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72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
- [註 086]